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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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신종환/ 공무원  쓰기에 앞에 지선이 다가옴에 따라 정당에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을 제한하는 공문이 매주 접수됨에 따라 글에서 인물과 그 발언 등의 구체적 언급이 제한됨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알려드린다.  대선이 지나고 다시 지선을 앞두면서 지나간 몇몇 선거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어떤 선거도 교체가 완료되기 전에 지금처럼 많은 소음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문이든 텔레비전이든 보도되는 내용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저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연이어 보도된다.  하지만 매체에 나서 말하는 사람들을 제도정치권과 직접 얽힌 사람들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그릇된 가치관을 가졌을지언정 국민 일각의 의향을 파악하는 감각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감각이 그들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토론회에서 특정 행위가 비문명이라고 당당하게 칭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런 말이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해줄 거란 확신을 느끼게 했을 거란 근거 없는 생각이 들면 두려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몇 년간 힘들었고, 이제 불편 속에서 옆자리 사람의 고통을 더듬어내기보다는 자기가 겪어온 고통에 몰두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상기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 같다. 2015년 1월에 개봉한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동료들은 주인공 산드라가 해고되면 1,000유로를 받을 것이며 보너스를 거절하면 산드라가 복직하니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산드라는 그런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복직을 선택해달라고 하는데 의외로 적지 않은 동료들이 고민하거나 거절하고, 결과적으로는 진다. 1,000유로는 당시나 지금이나 대략 130만 원 정도로 환산된다. 당시로서는 마음속에 똘레랑스라는 단어의 발생지이며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스 사람들이 매년도 아니고 한번 지급되는 130만 원에 동료를 자를지 말지 고민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연출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또 동료들의 명암을 보고 결국 잘리고 마는 산드라는 좀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내일을 기약한다. 같이 영화를 보고 논하시던 선생님은 그래서 ‘내일을 위한 시간’은 ‘내 일을 위한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나름 풀어보면 자살을 시도할 만큼 현실에서 낙관적인 면을 발견하지 못하고, 또 발견하고 싶지도 않았던 산드라의 마음에 현실은 완전히 나쁘다고도 좋지도, 사람들도 전부 악인도 선인도 아니며, 그 사실을 자신이 스스로를 위해 보낸 시간 속에서 선명하게 발견되었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안 좋은 예감은 안 좋을 일을 크게 보게 하고 좋은 일이나 징조를 가려버리고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것 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게 우울한 징조에 포섭되지 않을 경험과 상상력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지만, 그 작동방식이 이진법처럼 죽거나 강해지거나 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실제로는 고통이 나를 대부분 죽이고, 간혹 죽은 줄 알았는데 기진맥진 살아서 강한 건지 강해져서 산 건지 모호한 상태로 살아남아 강해질 가능성을 붙는다. 산드라가 마음속에서 겪을 일이 그렇지 않을까 나의 삶의 부분과 비교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견뎌낸 고통에 한 점 한 점 살을 발라가고 또 한 점 한 점 잃음을 반복하면서 단단함을 얻을 수도 있겠지.  앞서 말한 것처럼 당분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견뎌낼 수 있는 고통보다는 견뎌낼 수 없는 고통이 더 많이 찾아올 거란 예감이 들고 그 예감이 우울을 부른다. 우울한 전망을 버티기 위해서는 작은 기쁨을 발굴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도구 중 하나는 별것 아닌 일에 기뻐하고 떠벌이는 것이다. 실제로 별것 아니고 창피하기까지 해서 대부분 하지 않기에 내가 먼저 떠들어 본다. 이미 매번 인권연대에 글을 써서 보낼 때 크게 민망하고 미안하고 부끄럽기에.  작년 말부터 공무원노조 속초시지부에서는 청년부원 둘에게 청년 사업을 하라고 채근했다. 배운 게 풀칠이라고 할 줄 아는 건 모임을 만드는 일이라 주변 동료들에게 영화 모임을 하자고 찾아가 애걸복걸했다. 술 생각 날 때는 종환아 형님 주사님 오빠 하며 찾아오던 사람들이 으악 노조원이다! 를 외치며 전부 도망가서 모임 명단은 구멍 난 잠자리 채집통처럼 비어 있었다. 그러나 매 기수 신규직원들이 교육을 받을 때마다 신문지 사이 광고지처럼 끼어 노조 교육을 하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온 각설이 같은 마음으로 채근하여 5월에 십여 명의 노조원이 노조사무실에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본 소감을 나누고 뒤풀이를 하기로 동의했다. 이런 이끼 같은 작은 일이 앞으로의 날들에 습기를 붙잡고 자라 힘들 때 비빌 언덕이 되기를 기원한다. 작은 일을 크게 떠들고 세세하게 기억해야지.
2022-04-27 | hrights | 조회: 677 | 추천: 3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원인이 땅?  최근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사를 다뤘다. 기원전 수십 세기를 거슬러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왜 싸우는지를 역사적으로 되짚으며 그 이유를 결국 ‘땅’이라고 결론지었다. 이-팔 분쟁의 원인이 양측이 믿는 종교 때문이거나 하마스(Hamas)의 테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인 국내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방송의 결론은 분명 진일보하고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난 후 마음 한켠에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쟁원인이 ‘땅’이라는 결론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폭력과 차별을 감춘 채 분쟁의 종식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사실관계를 희석했다. 다분히 강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내고 승자의 논리로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을 해석하는 오류를 낳게 했다.  #1976년 3월 30일  1976년 3월 11일, 3차 중동 전쟁(1967년)을 통해 팔레스타인 전역과 골론고원, 시나이반도까지 삼킨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정착지 확장을 위해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의 아랍인 토지 약 2000 헥타(ha)를 강제수용하겠다고 발표한다.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의 주민들, 해외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총파업과 함께 시위에 합류하였다. 위기감을 느낀 이스라엘 정부는 수천 명의 경찰과 군 헬기를 동원하여 주민들의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3월 30일 시위대를 향한 이스라엘의 발포로 시위대 6명이 숨졌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수백 명이 연행당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최초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점령에 맞서 한마음으로 저항하였기에 이날을 ‘팔레스타인 땅의 날(Palestine Land Day)’로 지정하였고, 국제적으로 최초의 ‘인티파다(민중봉기)’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매년 3월 30일에는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점령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유대 정착민에 의해 방화된 차량, 나블루스 자루드 마을, 사진출처: Middle East Monitor, Nedal Eshtayah- Anadolu Agency  #2022년 3월 30일  아디의 여성지원센터가 위치한 팔레스타인 중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나블루스(Nablus), 이 도시 주변 마을주민들은 수천 년 전부터 올리브나무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 30일 나블루스 남부의 알 루반 마을(Al-Lubban ash-Sharqiya)의 170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인근에 거주하는 유대인 정착촌(국제사회는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이라 규정함) 주민에 의해 파헤쳐 졌다. 또한, 같은 날 나블루스의 자루드(Jalud) 마을에서는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에 의해 4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차가 불에 탔고, 주민들 집 담벼락에 혐오 글귀가 남겨졌다. 근처의 부린(Burin), 부르카(Burqa)마을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하여 수십 대의 차량이 파괴되었다. 이 피해 마을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을 인근에 유대인 정착 마을이 있고 지속적으로 정착촌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인 정착촌의 폭력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기관은 없다. 이스라엘 군인은 유대 정착촌 주민들의 폭력을 방조하거나 폭력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연행하고 처벌한다. 이것이 2022년 ‘땅의 날’ 팔레스타인의 현실이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반인도적 범죄’  올해 2월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관련 대응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분리정책)에 해당한다”는 28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의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역시 작년 4월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스라엘 정책이 국제법상 아파르트헤이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주장을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고 하며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현지에 여러 차례 방문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현재의 이-팔 분쟁의 원인은 ‘땅’에서 시작하지만, 현실 분쟁의 원인은 그 땅을 불법적이고 부정의하게 빼앗기 위한 폭력이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만든 이스라엘의 법과 제도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법과 제도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만 할 뿐 별다른 제재나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국제적인 언론 역시 이스라엘 정부의 일상적 차별과 범죄에는 시선을 두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 측에 의한 범죄와 폭력에 대해서는 대서특필한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의 이-팔 분쟁의 원인을 설명할 때 기원전 수십 세기 전 유대 민족의 역사 속 이야기들로 인용하며 결국에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두 민족과 종교’라며 현실을 퉁친다. 현재의 이-팔 분쟁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기원전 수 세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지? 오늘도 벌어지는 유대 정착촌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폭력이 이-팔 분쟁의 원인은 아닌지?
2022-04-07 | hrights | 조회: 852 | 추천: 10
홍세화/ 대학생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이번 대선을 치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대선 결과에 따른 반응이 아니다. 대선의 과정 속에서 여실히 느낀 것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혐오가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이다.  우리 사회에 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몇 년 전부터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정해둔 선을 기준으로 그 선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네 편 내 편을 가르며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것 같았다. 혐오는 구분 짓기를 만들어내고, 구분 짓기는 언어를 통해 고착화되었다. ‘맘충’, ‘급식충(잼민이)’, ‘틀딱’, ‘김치녀’, ‘한남충’ 등 다양한 혐오 표현은 인터넷의 많은 곳에서 자연스레 ‘그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무분별한 혐오 표현의 생성과 사용이 문제라고 느낀 것은 재작년부터이다. 2020년에 청소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청소년들이 관심이 많은 ‘유튜브’를 활용하여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업로드까지 해보는 유튜브 동아리를 작년까지 운영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동아리를 운영하며 알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혐오 표현이 기존에는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서만 사용되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유튜브, 틱톡 등의 발달로 인해 청소년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혐오 표현이 생겨난 배경 등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혐오 표현을 자연스레 내뱉으며 그저 자신보다 연장자인 사람들, 심지어는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형 누나들에게도 ‘틀딱’이라 표현하는 등 혐오 아닌 혐오를 일삼고 있었다.  혐오 표현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은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인터넷상에서 시작된 ‘여혐’, ‘남혐’은 내 또래 친구들에게는 이미 많이 스며들어 일상생활에서도 단순히 ‘밥을 사지 않는다’, ‘얻어먹는다’ 등의 사소한 이유들로 “쟤는 한남충이다”, “쟤는 김치다” 등의 표현을 서슴없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러한 혐오 표현들이 온라인을 넘어 일상생활 속으로까지 스며드는 것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뱅크 혐오와 갈등은 예부터 정치적 도구의 일환으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호남지역과 영남지역 간의 지역감정을 조성하여 두 지역민들 사이 갈등을 부추겨 정치의 판으로 이용해왔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그에 한술 더하여 이른바 ‘성별 갈라치기’로 대선이 전개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대선이 가까워질 때 즈음 대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 타임(에타)’에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바탕으로 여성과 남성, 서로를 향한 혐오 글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진절머리가 나 그 앱을 대선 기간 동안 삭제해두기도 했다. 최근 들어 혐오의 시대라고 느낄 만큼 혐오가 만연한 이유는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이 사회 구성원인 개개인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이에 대한 분노 표출 대상은 실체가 없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 표출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로 표출을 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번 대통령 당선인께서는 0.73%의 표차로 신승을 거두며 당선 소감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내겠다고 하셨다. 대선의 성별 갈라치기 양상을 만들어낸 장본인께서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 말의 진실성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부디 본인 말씀대로 국민 통합을 이뤄내어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이 잦아드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시길 빌어본다.
2022-03-16 | hrights | 조회: 881 | 추천: 5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악당과 영웅의 다른 점은 그들이 인간 방패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그들 스스로를 인간 방패로 세우느냐다. (The difference between the good guys and the bad guys is whether they use human shields or make themselves human shields)  2000년대 중동에서 전쟁이 났을 때 국제 인권시민단체는 인간 방패를 자처하는 운동을 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어 나도 어린 치기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지원서도 내지 못했다. 단체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독자적으로 전쟁터에서 피하거나 보호할 수 없다. 당신을 지원하려고 두 세 명이 같이 움직이면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것에 나는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작년부터 예고된 전쟁이었다. 소련 해체 당시 핵무기 반납으로 우크라이나 보호를 약속했던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침략을 인지하고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전쟁 방지 실천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전 불가를 외치면서도 무기와 전쟁물자만 팔아먹는 형국이다. 90년대 걸프전 때는 CNN의 걸프전 실황중계를 보다가 웬만한 우리나라 방송국은 다들 우크라이나 포격을 실시간 유튜브로 라이브를 진행한다. 야만적인 관음증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불구하고 접속자는 날로 폭증한다.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대선의 손익 계산에 따라 침략자 러시아를 비난하기보다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의 무능력함을 평가하는 어정쩡한 능력주의의 관점에 있다. 러시아의 푸틴 장기집권 이후 그들은 주변국의 많은 자주와 독립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왔으나 국제 사회는 침묵했고 우리는 무관심했다. 러시아의 이런 제국주의 부활은 이미 코로나 시국에서 충분히 경고되어 왔다. 코로나에 각국의 폐쇄정책과 보호주의는 거악의 국가주의 출현을 예상할 수 있었고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라는 군사주의로 표출되었다. 이에 비해 국제 사회의 전쟁 억제 예방 목소리는 멀어져 버린 사회적 거리만큼 들리지 않는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과 미얀마의 쿠데타 저항 운동에 이어 국내의 인권시민단체 역시 이에 적극적인 대응과 국제 연대를 하지 못한 채로 안타까움에 그 주변만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써야 할 원고 앞에서 단 한 글자도 더 쓰지 못하고 몇 시간째 모니터만 보고 있다. 원래 이 지면에 쓰고자 하는 주제도 전쟁이 아니었다. 알고도 막지 않은 거대 국가의 손익 계산 앞에, 러시아의 침략전쟁으로 자국 기업의 자동차와 사발면 피해를 따지는 지금의 국내 작태에 한 줄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교육권 따위가 무슨 의미인가?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고 핫초코를 마시고 생강차를 마시고 등 뒤 창밖으로 새벽 동이 터 올 때까지 날을 지새워도 몰려오는 무력감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러시아군 공격으로 초토화된 우크라 하리코프 거리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우연히 보게 된 아침 방송에서 우크라이나 전쟁터를 가지고 증권이 더 폭락하라면서 희희낙락하는 밈을 돌리는 것을 보고 증권 방송의 어느 애널리스트가 3만 명이 접속한 라이브에서 전쟁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이 재미있으시냐 화를 내고 꾸짖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꾸짖음이 미국 대통령이나 유엔이나 나토 사령관이 러시아를 비난하는 것보다 더 준엄하게 들렸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본의 최전선에서도 인간은 있어 보였다. 실제 전쟁에서는 아이언 맨 같은 히어로는 없었다. 미션 임파서블 에단 헌트처럼 크램린 궁을 폭파 시키는 특수요원도 없었다. 어벤저스 어셈블처럼 눈물 나게 하는 연대도 공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시민들이 자국의 군인들을 멈추고 유럽 주변국이 함께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함께 보호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전쟁은 명분이 무엇이든 모든 것을 파괴한다. 특히 장애인들은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다. 심지어 그 거대한 미사일과 탱크를 향해 맞서 싸우라 하기도 어렵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숨 쉴 수 없는 무력감에도 절대로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외면해서도 안 된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러시아의 침략은 그동안 러시아의 독재에, 반인권에 우리가 모두 침묵하고 외면한 결과이다.  이제 우크라이나로 들어가서 날아오는 포탄에 평화의 인권 방패를 자처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러시아 대사관을 둘러싸고 그들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공격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지원하고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다른 나라 전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2022-03-02 | hrights | 조회: 809 | 추천: 4
정한별/ 사회복지사  말이 더해질수록 감정은 과잉된다.  2018년 여름, 홍성수가 쓴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었다. 책의 맨 첫 장에 “나의 말이 칼이 돼서 누군가에게 꽂히지 않길”이라고 적어 뒀다. 끄적거린 다짐이 무색하게도 지난 한 해는 말이 칼이 된 기억들이 제법 많았다. 다른 사람의 말이 칼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히기도 했고, 내가 뱉은 말 역시 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꽂히기도 했다. 고작 세치 혀로 꼬일 대로 꼬인 인간관계를 풀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말을 통해 진심이 전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으며, 비밀은 지켜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말이란 게 참 묘한 게, 꼬인 관계를 풀기 위해 했던 말은 되려 관계를 끊어버렸고, 진심은 왜곡되었으며, 전해져선 안 되는 말들은 과장된 채로 오해를 더욱 키웠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같이 대화하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내가, 말을 하는 일도 말을 듣는 일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말이 가진 힘, 말이 가진 무서움이 마음에 사무쳤다.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차별 감정의 철학(2019, 김희은 역)」에서 “불쾌는 수동적 감정인 데 반해, 혐오는 능동적 감정이며,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말은 내가 누군가에게 ‘싫어할 만한 대상’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불쾌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말을 하면 할수록 처음에는 단순히 불쾌하다는 수준에 머물렀던 감정이 타인에 대한 혐오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뉴스를 통해, 한 배구선수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론들은 일제히 고인이 생전에 SNS에 남긴, ‘자신에 대한 악플을 멈춰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고인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이유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던져대던 사람들의 말이 고인을 얼마나 괴롭혀왔을까.  말을 하는 일은 쉽다.  큰 아이는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사할 때가 지나도록 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아도 밥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간식을 즐겨 먹는 편도 아니다. 대개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이는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부모가 도와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밥을 먹는 일 빼고는...  얼마 전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네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고 싶은 만큼 밥솥에서 밥을 퍼. 대신 네가 푼 밥은 꼭 다 먹어야 돼”  내가 쉽게 뱉은 말이 불러온 결과는 매우 컸다. 처음 며칠 아이는 밥을 정말 잘 먹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스스로 먹을 수 있고, 먹고 싶은 만큼 밥을 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며칠 전부터 아이는 밥을 정말 조금씩 푸기 시작했다. 아이를 그대로 둬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딸, 너무 조금 푸는 거 아니야. 그것보단 더 먹어야지”  “아빠, 아빠가 먹을 만큼만 푸고, 그것만 먹어도 된다며. 약속을 지켜야지!”  말을 하는 일은 쉬웠는데, 그 말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볍게 던진 말이 결코 가벼운 무게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사진 출처 - istock photo  한 대선후보는 지난 12월 8일 ‘장애인’의 반대개념으로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지적을 당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표현하여 다시 한번 지적을 받았다. 장애가 없는 사람을 정상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마치 장애인이 '비정상'인 것처럼 읽힐 수 있는 옳지 못한 표현이며, ‘장애우’라는 표현 역시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을 표현할 수 없으며 실제 친구가 아닌 장애인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 역시 옳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말에는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 담겨 있다. 미국의 철학자 랄프 에머슨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 한마디가 남 앞에 자기의 초상을 그려놓는다"라고 했다.  아이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쉽게 한 아빠, 가볍게 뱉은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려준 유치원생 딸, 잘못된 표현을 사용해 지적을 받은 뒤 같은 실수를 저지른 유력 대선후보. 말을 제대로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이 넘치는 요즘이다. 넘치는 말 중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말, 갈등을 줄이는 말, 관계를 회복하는 말, 위로를 주는 말, 지킬 수 있는 말이 어떤 말일지 여느 때보다 더욱 신중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은 힘이 크다.
2022-02-10 | hrights | 조회: 959 | 추천: 12
신종환/ 공무원  누가 어디에 살든 아쉽고 힘든 점 없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서울에 산다면 고정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 비용과 자가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이 막막할 사람이 많을 것이고, 경기권에 산다면 일생의 1할 이상을 지하철에서 졸거나 사람 사이에 끼어 보내거나 차가 있다면 막힌 도로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방살이의 아쉬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대도시에 비해 동네사람들의 평균나이가 수직상승한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2018년 처음 고향 속초로 돌아왔을 때 관광객이 찾는 장소를 제외하면(때때로는 이를 포함하더라도) 대부분의 장소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적었다. 내 직업인 지방직 공무원은 취업난의 반사효과로 꾸준히 20대와 30대가 들어오지만, 공무원 세계와 이와 유사한 한전 등의 유사 공직, 그리고 극소수의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젊은'이 라고 부를만한 연령대의 사람은 거의 멸종되었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래서 수년 전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는 행정오판의 결과로 옆 동네 지자체에서 청춘남녀 맺어주기라는 계획서가 결재되어 강제로 집단 미팅을 해야만 했던 상황도 있었다. 영화는 현실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마도 사실인 것 같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유관한데, 당연하지만 전반적인 인프라가 수도권에서 생활할 때보다 대단히 아쉬워진다. 주 수요층이 적으니 무언가 생겨도 조용히 망한다. 가끔 지자체 소속의 문화예술회관에서 운영하는 공연이 있지만, 취향에 맞는 공연이 아닐 확률이 높거나 공무원으로서 지원을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며, 마음에 드는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지방직 공무원의 주말은 통상적으로 출근이 우유에 붙어있는 행사상품처럼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라 한양을 가기란 다소 어렵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집 주변을 돌봐야 한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전원생활을 해보면 된다. 우리의 수가 무수하니 우리의 이름은 잡초와 벌레 낙엽 눈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러나 더 큰 고충은 위의 것들이라기보다는 위의 것들을 제외한 것들은 내 안에서 점차 풍화되어 없어졌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고궁을 나서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고궁을 나서는 대신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다시 다음 술 약속을 잡거나 잡히고, 세상을 직장, 술, 집 그리고 주가 하락이라는 RGB 값의 조합으로만 이해하는 단순한 사람이 되어간다. 게다가 너무 시시한 고민이라 글로 옮기기에도 민망하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이 '하 그림자가 없다'에서 말한 것처럼 시시한 고민이 크고 강대한 고민보다 때때로 더 큰 문제다.  갈비탕에 비계가 많다고만 평생 불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므로 주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꼬시고 협박해서 영화모임과 책모임을 했다. 다행히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몇몇 서점은 잘 꾸며지고 운영도 잘 되고 있었고, 모자란 인프라에 비해 갈 만한 술집은 적지 않은 편이라 모임은 계속 번창할 것만 같았다. 서울을 갈망하는 동창들이 순식간에 전출을 가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들은 다 가버린다.  다음 모임은 지역 선생님들이 오래 운영하던 모임에 내가 들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모임을 운영한 구력이 있어서 그런지 토론 거리도 많고 서로 흥미로운 책들을 추천하고 읽고 나누는 즐거움이 컸다. 그리고는 두 분이 육아의 세계로 사라지고 한 분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겠다고 다른 지자체로 가버리셨다. 다시 나만 남은 모임을 운영하다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시고 어느 순간 모든 책의 독서 논의 결론은 신종환 선생님은 결혼을 하지 않아서 삐딱하다는 헤어날 수 없는 논리와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나의 정보수용범위 저편에서는 변함이 없어 많은 투쟁과 좌절과 상실이 있을 거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언어와 경험과 생각이 여러 갈래로 구성되어있어야 한다는 걸 나날이 느낀다. 생각의 원자가 많아야 마찰열이 발생할 텐데 원자의 수가 적으면 차갑게 침전될 따름이다. 2월이면 친한 동창 하나가 또 강원도에서 제일 큰 도시 원주로 떠난다. 네그리는 '0'이라는 개념이 호명될 수 없기에 가장 혁명성을 품고 있다고 예전 수업에서 들은 것 같은데 고도를 기다리듯 신규회원을 기다리는 이 나날이 혁명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나날일까. 혁명의 씨앗은 차치하고서라도 열심히 버티고 있으면 누군가 등대처럼 모임을 발견하고 영주하며 같이 발전을 도모하지 않을까.  가상의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 생각을 애써 비벼 만들어지는 가상의 마찰열로 마음을 애써 덥히며 꾸역꾸역 다음 모임 책을 읽어본다. 지방소멸이란 게 이토록 시시하고 춥다.
2022-01-26 | hrights | 조회: 1013 | 추천: 9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이야기 하나, 팔레스타인 내 최대 난민촌인 발라타 캠프에서 거주하는 A.H.(여성, 30대 중반)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긴 출근길에 나선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바르칸’이라는 지역내의 사탕공장, 매일 출퇴근하는 곳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불편하다. 그녀가 일하는 ‘바르칸’은 팔레스타인내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 거주하는 마을이다. 국제법상 점령국(이스라엘)은 자국의 민간인(이스라엘인)을 점령지(팔레스타인)에 이주시켜서는 안 되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팔레스타인 내에서 이스라엘 정착 마을을 건설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착 마을을 반대하고 지속적으로 항의하지만 난민캠프에서 홀로 세 아이들을 키우는 그녀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녀는 오늘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득한 초소를 여러 개 지나야 한다. 가끔 이스라엘 군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테러 용의자로 몰며 죽이기도 하고 보안상의 이유로 검문소를 닫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녀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때론 검문소를 통과할 때 낯선 사람에게 내 집 출입을 허락받는 듯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이 빼앗아서 불법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리 정책과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매일 더 많은 땅을 빼앗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검문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이야기 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를 ‘1948년 영토’라고 칭한다. 이스라엘이 건국했던 1948년 이전에는 팔레스타인 영토였기 때문이다. ‘1948년 영토’에서 일을 하는 A.M.(여성, 50대 중반) 역시 검문소 통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당신은 우리가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하지도 못할 겁니다. 특히 검문소에 들어가고 나갈 때, 노동자들은 긴 줄을 서서 군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때때로 노동자 중 누군가가 금속 도구를 소지하고 있다면, 검문소 경고음이 울린다면 그들은 굴욕적인 신체 수색을 당해야 하고, 여성 노동자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때때로 확인을 핑계로 탈의하도록 강요합니다. 또한, 검문소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수 시간 동안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한때 우리가 주인이었던 땅에서 노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셋, 그나마 그녀들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노동허가증을 받았다. 히지만 노동허가증을 받지 못한 소위 ‘미등록’ 상태로 이스라엘 정착촌과 ‘1948년 영토’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7남매 중 장녀인 L.D.(50대 중반)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남편마저 지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2년 동안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야만 점령군이 주둔하기 전 울타리 구멍을 통해 국경을 넘을 수 있어요. 처음에는 소형 버스를 타고 우회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가고, 이후 산길을 걸어 국경의 울타리 구멍들 중 하나에 도달 할 때까지 계속 걸어요. 그리고 구멍을 통해 이스라엘 정착마을로 들어가서 다른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가끔 점령군에게 발각이 되면 최루탄을 쏘거나 실탄을 발사하기도 합니다. ” 이러한 조건속에서도 그녀가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가족들의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넷,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더욱 특별하다. 가자지구는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완벽히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거주하는 A.J.(여성, 20대중반)는 살면서 딱 한 번 국경을 넘은 적이 있는데 이는 남동생의 심장 수술 때였다고 한다. “남동생이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가자지구 병원에서는 시행 할 수 없어 이스라엘 정부의 임시허가증을 발급받아서 라파국경(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을 통해 서안지구로 건너갔습니다. 저나 제 가족 중 한 명이 아프지 않고 우리나라(팔레스타인)의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어요. 질병을 가지는 것이 우리 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증언하면서 “경계선이나 국경은 감옥과 같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감옥 말입니다. 저는 꿈도 많고 스스로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상상 속에서만 꿈을 꿉니다. 언젠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경계를 벗어나 자유와 책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덧붙임) 해당 이야기들은 사단법인 아디가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15명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2021년 인권보고서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내용 중 일부이다. 아디 홈페이지(https://www.adians.net/issue)를 통해 전체 보고서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2022-01-12 | hrights | 조회: 792 | 추천: 8
이회림/ 경찰관  #오전 9시경 오징어 중학교 3학년 1반 복도 앞  남학생 네 명이 체구가 작아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을 빙 둘러싸고 있다.  “야~~성기훈(가명)~ 너 일로 좀 와 봐”  “왜 뭔데?”  “아니 그냥, 너 잠깐 여기 좀 들어가 보라고~”  “여기? 내가 여길 왜 들어가?”  “야! 애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들어가라니까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들어가! 들어가라고!”  “아~ 싫어. 내가 왜 들어가! 밀지 마~”  #한 달 후, 오징어 중학교 상담실 안  cctv 화면 위로 학교전담경찰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 여러분~ 지금 기훈이를 어디에 밀어 넣고 있는 거죠?”  “청소도구함요.”  “청소도구함에 왜 사람을 밀어 넣고 있는 거죠? 기훈이는 안 들어가려고 버티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는데요…. 계속 버 티니 발로 마구 차기도 하고…. 이런….  근데 지금 기훈이한테 로우킥하는 사람, 여러분들 중 누구예요?”  “아~ 그건 전데요. 걍 장난이에요. 장난~~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요? 그냥 장난이면 학생도 기훈이처럼 갇히는 역할을 한번 해보면 어때요? 발로 막 차여가면서요.”  “싫은데요.”  “왜 싫은가요?”  “.....”  “장난이라면서 갇히는 역할은 싫고 때리면서 가두는 건 괜찮나요?”  “아~~ 답답해. 기훈이는 원래 갈굼 당하는 애거든요. 우리만 그러는 거 아니거든요. 1반 애들 다 갈군다고요~~”  “원래 갈굼 당한다...? 도대체 기훈이가 갈굼 당하는 이유가 뭔가요?”  “아~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처음부터 그랬다고요. 1학년 때부터요.”  위의 내용은 최근 오징어 중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피해 학생 기훈이에 대해 가해 학생들이 입을 모아 ‘원래 갈굼 당하는 애’라고 말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 없이 처음부터 갈굼 당하는 애'라니.. 마치 기훈이는 우리 반 전체가 갖고 놀아도 되는 장난감인데요, 처음부터요' 이러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cctv 화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평범한 학교 복도의 풍경이 보입니다. 창문 아래에 붙박이로 붙은 하얀색 청소도구함도 보이구요.  그 앞에서 기훈이에게 헤드락을 건 채 웃으며 계속 무언가를 말하는 학생이 있네요. cctv 화면이라 선명하지는 않아도 웃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구분됩니다. 기훈이를 청소도구함으로 억지로 밀어 넣고 있는 다른 학생 두 명도 보입니다. 가해 학생 중 가까스로 탈출해 나온 기훈이에게 재빨리 로우킥을 날리는 학생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리고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또 다른 많은 아이들도요.  “저는 여러분들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요. 자~~먼저 이 장면에서 기훈이에게 헤드락 걸면서 웃고 있는 이 학생이 누구죠?”  cctv 영상을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멈춰가며 각자의 행동을 직접 말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가해 학생 모두 반색을 합니다. 헤드락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깨동무’를 한 것이라고 항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요? 제가 보기엔 헤드락인데요...”  “그럼 학생이 말하는 어깨동무를 나한테 한번 해 봐 줄래요? 여기 녹화된 것처럼요. 어깨동무는 쉽게 풀 수 있지만 헤드락은 푸는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거든요. 저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를 배우면서 헤드락 푸는 법을 제대로 배웠으니 맘껏 해봐도 됩니다. 자~~”  헤드락을 어깨동무라고 우기던 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내밀었더니 마지못해 어깨동무를 합니다.  “잠깐! 이 상태로 여기 영상 다시 보세요. 다시 물을게요. 이거 어깨동무인가요? 헤드락인가요”  “헤..헤드,,락이요...”  “그런데 조금 전에는 왜 어깨동무라고 말한 거죠?”  “......”  학생은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군 채 대답이 없습니다.  십 수년간 경찰 일을 해 오면서 잔인한 범죄 현장을 적지 않게 봐 왔음에도 저는 이날 본 cctv 영상이 가장 자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네 명이 한 명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많은 아이들이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모습이 너무나 잔인해 보이고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가해 학생들을 말린다거나 선생님을 부르러 뛰어가는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21년 학교폭력실태조사(※조사 기간 :2020학년도 2학기부터 2021년 4월)에 따르면 피해 경험 장소는 교실> 복도> 운동장 순, 학교 내> 학교 밖 피해 시간은 쉬는 시간> 하교 이후> 점심시간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징어 중학교의 학교폭력 사안은, 112나 117 즉 경찰에 신고된 건이 아니었고 피해 학생이 직접 담임선생님에게 알린 경우입니다. 통계 결과에서 보이듯이 피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장소인 ‘학교 내’, ‘복도’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시간상으로도 가장 빈도가 높은 ‘쉬는 시간’에 범행이 이루어졌습니다.  피해 학생 기훈이는 그날 괴롭힘을 당한 직후 담임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고 담임교사는 지체없이 cctv를 확보했습니다. 기훈이의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 수 있고, 경찰에 신고도 가능함을 안내하였습니다. 기훈이가 경찰에 신고는 원치 않는다고 하자 학교장께서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학교전담경찰관의 자문을 받아 재차 신고 의사를 확인해보라고 조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상담실에서 가•피해 학생 전부와 장시간 대면 면담을 한 결과, 이 사건을 여성청소년 수사팀에 사건 의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피해 학생의 가족분들과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가족분들은 지금이라도 경찰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기훈이의 마음도 같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기훈이와 부모님이 함께 경찰서를 방문해 부모님과 함께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하였고 이로써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학교폭력 피해가 3학년이 되어서 그 고리를 끊어내는 첫발을 떼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pngtree  피해 학생 기훈이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보육시설에 맡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중1 때부터 복싱을 배웠다는 얘기를 하길래 기훈이 눈앞에 펀치를 날리면서 ‘“이게 잽인 거지? 이건 훅이고?” 하면서 어쭙잖게 아는 척을 해 보았습니다.  “아뇨~ 그건 원투예요. 잽은 이거구요.”하면서 허공에 제대로 한 방 날려 주었습니다.  “아니~ 너는 마음만 먹으면 네 명 모두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었겠는데. 혹시 그동안 그 네 명 때리고 싶어도 참은 거 아냐?"  기훈이가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CCTV 영상을 보며 서늘해졌던 제 마음이 기훈이 얼굴에 피어난 옅은 미소 덕분에 온기를 되찾는 듯했습니다.  상담실에서 기훈이와 단둘이 편안하게 앉아 서로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이유 없이 원래 갈굼 당하는 애’로 낙인찍혀 괴롭힘당하던 기훈이가 알고 보니 복싱을 되게 잘 하는데도 과시하지 않는 ‘짱 멋진 애’로 불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
2022-01-06 | hrights | 조회: 836 | 추천: 7
홍세화/ 대학생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제는 말로만 듣던 취업 시장에 몸을 던져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숨을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부모님께서 취업과 관련하여 걱정 어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실 때면 나는 덩달아 불안해지는 마음을 감추려 괜스레 짜증 섞인 어투로 “알아서 할게.” 하고 대꾸만 할 따름이다.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달라졌다. 대학 1, 2학년 당시에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 벌어진 사랑과 전쟁, 다양한 행사와 인근 대학의 이번 축제 연예인 라인업, 미팅과 과팅에 다녀온 가슴 떨리는 이야기 등이 대화 내용의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서는 코로나로 인한 취업 시장의 변화와 위축, 꿈꿔왔던 ‘워라밸’ 실현의 어려움, 불분명한 미래로 인한 진로 걱정 등이 주로 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어린 시절과 달리 취준을 목전에 둔 지금은 꿈이고 뭐고, 그냥 나를 써주겠다는 회사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앞구르기를 세 번 하며 그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도 한다.  취업 준비에 발을 담그며 느낀 또 한 가지는 돈이 없으면 취업 준비를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다는 스펙을 쌓으려 해도 학원비, 교재비, 시험응시 비용 등이 만만치 않았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각 기업의 인적성검사, NCS 등을 공부해야 하는데 이 또한 모두 돈이다. 때문에,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가 필수이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유력한 대선후보 한 명은 ‘최저임금제를 폐지하겠다’, ‘구직앱을 제작하여 청년들의 취업난을 해결하겠다.’라는 등의 망언을 듣고 ‘정말 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쩌지...’ 하는 암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엔 민정수석의 아들이 입사지원서에 본인이 민정수석의 아들이며, 자신을 채용하면 아버지께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내용만을 써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일었다. 민정수석의 아들도 취업난에 저런 행동을 저지르는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동질감을 찰나에 느꼈으나, 이는 곧 상대적 박탈감으로 바뀌며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혹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이러한 경로로 편히 취업을 했겠다는 씁쓸함과 화가 치밀었다.  현재 취업 시장의 취준생들은 90년대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IMF 이전 경기 호황에 태어난 90년대생들은 해마다 그 인구만 60~70만을 훌쩍훌쩍 뛰어넘었었다. 그들이 자라나 지금 흔히 말하는 ‘청년’세대가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경기 호황 때와는 정반대인 저성장 시대 속에서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을 일삼으며 바늘구멍의 취업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옛말로 바꿔버렸다.  한국 역사를 통틀어 힘들지 않았던 세대가 어디 있겠느냐만, 본디 인간이란 ‘남이 칼에 찔린 고통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고 느낀다’라는 말이 있는 만큼, 취준생이 된 지금의 나는 같은 90년대생 취준생들의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글을 마무리 지은 후, 난 또다시 OPIc과 토익 책을 펼치고 인강을 재생한다.
2021-12-24 | hrights | 조회: 873 | 추천: 6
주윤아/ 교사 Ⅰ ‘안물안궁’인데 가장 많은 기사류 김나영, 패피의 완성은 몸매! 화려한 올그린룩 前 미스코리아의 위엄 ㄷㄷ; 45세 ‘역주행 몸매’ 송가인, 흰색 스키니진에도 굴욕 없는 44kg 초슬림 몸매 51세 박소현, 30년간 44사이즈 옷 입는 건강 비법은? '이다인 언니' 이유비, 얼굴+몸매+패션 3박자  이 정도의 기사 제목은 양호한 축에 속한다. 여성 연예인의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아찔, 탄탄, 잘록, 명품, 콜라병, 숨멎, 미친’ 등의 저속한 수식어로 평가하는 기사는 넘치고 넘쳐난다. 물론 남성 연예인도 ‘식스팩·11자·초콜릿 복근, 벌크업, 성난 근육, 만찢남’ 등 외모 품평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물론 대중에게 연예인은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으며 대상화되기 십상이지만 미디어들은 이들의 남다른 능력이나 숨은 노력보다는 오직 얼굴과 몸매만이 전부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기사를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 쉼 없이 생산하며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특히 갓 데뷔하여 언론 노출이 절실한 신인 아이돌, 그중에서도 걸그룹이 성적 대상화 기사의 집중 표적이 되는 듯하다. 사진 출처 - 한겨레 Ⅱ 맥락 없는 ‘♥’ 남발하는 기사류 이혜성 아나, 전현무와 결혼하면 매일 빵 만들어 줄 것 같은 빵순이 '검사♥' 한지혜, 럭셔리 숲뷰 집에 으리으리한 트리.."설치만 3시간 걸려" 노홍철, ‘이효리♥’ 이상순 만났다…제주 스쿠터 여행 "좋아, 가는 거야“ 장영란, '병원장 사모님' 열일하더니 쓰러졌네…신지 "뻗을 만했지"  제목 속의 ♥ 때문에 가끔 헷갈린다. 누가 기사의 당사자인지. 기사 주인공을 언제나 파트너와 연결지어 그들의 언행과 일상은 언제나 상대를 향해 있고, 또 그럴 때만이 본연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처럼 제목을 만든다. 하루이틀새 나타난 현상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맥락은 무시되고 제목과 기사 내용과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마치 그 사람이 00의 배우자이거나 00의 연인으로서만 존재 의미가 있는 것처럼 어느 새부터인가 이런 황당한 기사의 제목을 당연하게 작문한다. 물론 사이버 언론들이 조회 건수를 늘려 광고비를 많이 받기 위해 남발하는 어뷰징 낚시 기사의 본질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는 독자들의 성(역할)고정관념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더군다나 연예인 당사자의 정체성을 서서히 삭제해가므로 가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제목을 만드는 것에도 대략 몇 가지 패턴이 있는데 연인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나이가 적은 여자 아나운서의 경우는 기사 내용과는 무관하게 그의 유명한 중년 남자 친구의 이름을 빠뜨리는 법이 없다. 좀 더 예뻐졌다거나 다이어트에 성공이라도 하면 그는 또 분명 홀딱 반할 것이며,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여자의 그이는 복 받은 남자고, 그녀가 잘 나가는 이유는 그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기 때문으로 스토리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또 다른 패턴으로는 상대적으로 더 유명한 파트너의 이름은 반드시 언급하거나 파트너가 대중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경우는 아예 이름이 아니라 직업으로만 호명되기도 한다. Ⅲ ‘그들이 사는 세상’ 기사류 ‘사업가♥’ 이혜영, 한남동 사모님은 패션도 남달라.. 과감한 컬러 조합 진재영, 수영장 딸린 제주 집서 티타임…200억 CEO답게 럭셔리 "대문만 집 한 채 값"…'편스토랑' 한다감, 개인 산책로 갖춘 '1천평 한옥집 "163억 한강뷰" 고소영, ♥장동건과 사는 '으리으리한 전국 1위 집’ ‘100억 CEO’ 김준희, 사업 진짜 잘 되나봐.. C사 매장을 쓸어 왔네 설현, 명품에 파묻힌 근황..수백만원대 원피스+가방 '영앤 리치 정석’  성적 대상화 기사 제목 못지않게 최근 이런 류의 기사 제목도 쏟아진다. 특히나 결혼 잘?하기로 유명한 연예인들의 경우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그들의 일상이 부지런히 소개되고 있다. 수천 평의 대지에 수백 평의 대저택에서 수백 수천억의 연봉을 벌면서도 건물을 매각하여 시세 차익으로 수십억을 또 벌었다느니 하는 저세상 이야기로 24시간이 모자라게 밥벌이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박탈감과 우울감을 하루에도 수차례 안겨주고 있다. 설상가상 명품 하나 갖지 못한 우리네 삶의 서사까지 은근히 폄하하고 모욕하는 경우까지 있다. 왜 더 부지런히 살지 못했는지, 왜 고작 지금의 능력밖에 갖고 있지 못한 건지, 그보다 왜 더 잘 태어나지 못한 것인지를 말이다.  이런 기사들 따위 혹 읽게 되어도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한참 자아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이들에게 해악이고, 성인이 된 우리들의 무의식마저도 서서히 잠식해 간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무수한 관계 속에 놓여있는 데다 때로는 사회생활을 위한 가면을 1~2개씩 번갈아 쓰기도 하다 보니 나의 본래 성향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자기 자신도 긴가민가하게 된다. 그런 우리를 사회와 언론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점점 왜곡되고 굴절된 시각을 갖도록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니 그저 손 놓고 마냥 빨려 들어갈 수만은 없는 일. 건강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늘려 세상을 점점 살 만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눈에 봐도 나를 낚는 무가치한 제목은 아예 클릭하지 말자. 아무도 읽지 않아 스스로 도태되게 만들자. 대신 그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건강한 소통을 통해 다시 눈을 밝게 만들고 귀를 정화하여 원칙을 지키는 멋진 제목을 찾아 클릭하자!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과 시간을 들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기억할지어다.
2021-12-17 | hrights | 조회: 904 | 추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