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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차 수요대화모임(06.08.23) - 후세인 람말(주한 레바논 대사) 강연 자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15
조회
403
[편집자주] 8월 수요대화모임은 후세인 람말(Hussein Rammal) 주한 레바논 대사와 함께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폐허로 변한 레바논의 상황을 살펴보고 희망을 찾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후세인 람말 대사는 반복되어 왔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의 역사를 짚고,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이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이 아닌 ‘레바논’에 대한 공격이었으며,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인 남부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지름길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역할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이날 강연의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강연록으로 대신합니다.

후세인 람말 대사는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소박하기 그지없는 인권연대 교육장을 기꺼이 찾아주셨고,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열과 성을 다해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또 한양대 이희수 교수는 사회자를 자청해 참석자들과 대사와의 대화를 이끌어 주셨고, 참석자들은 수용인원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에어컨조차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공간에서 오랜 시간동안 진지하게 함께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많은 분들이 레바논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모금된 금액은 추후 레바논 대사관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43차 수요대화모임(06.08.23) 강연 자료]
후세인 람말(Hussein Rammal) 주한 레바논 대사

안녕하세요.

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인권실천시민연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레바논과 최근 레바논 사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주 61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이한 것에 대해 한국 국민들에게 축하의 말 올리고 싶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 많은 고통을 당했기에 더욱 의미 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 레바논 또한 이웃 국가인 이스라엘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어 과거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레바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레바논은 한국의 경기도 면적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입니다. 중동의 산맥 국가로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레바논은 북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인접해있고 남쪽으로는 1948년 이전까지 팔레스타인 이였던 이스라엘과 접해있습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여러 문명의 교차로이며 기독교, 이슬람 외 여러 소수 종교 집단을 포함해 17개의 종교 집단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2006년 실시된 통계조사에 의하면 레바논 총 인구는 39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인구의 약 90%가 도시에 분포해 있으며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수도인 베이루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도시들 중 베이루트는 예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주요 관문이었으며 동양과 서양 문화의 독특한 조화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최근, 레바논은 그 지역에서 번영을 누렸으며 레바논 경제와 기반시설을 복구하기 위한 작업이 널리 시행되어 왔습니다. 그에 대한 결과가 최근 들어서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베이루트 복구 작업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레바논의 리조트들로 날로 증가하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레바논은 "중동의 파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국 대부분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안정을 되찾은 시기에 지난 7월 12일 이스라엘-헤즈볼라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최근 UN 안전 보장 이사회에 의해 발표된 결의안 1701이 채택되면서 정전된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로 굉장한 군사와 민간인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사회 기반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왔으며 난민들이 대량 발생했습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의 대립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스라엘이 수립되어 많은 팔레스타인들이 레바논으로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48, 1967, 그리고 1973년, 세 번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생하면서 11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웃 국가 레바논으로 이주해 오늘날에는 그 수가 35만 명에 이릅니다.

아랍-이스라엘간의 충돌은 약 85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정치적인 긴장과 끝임 없는 전쟁 상태로 이어졌으며 그 시작은 벨포르(Belfor) 선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Belfor선언은 당시 외무부 장관을 지녔던 벨포르 장관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팔레스타인 내에 유대 민족 국가의 수립을 약속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본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고 유대인들이 들어서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적극 제공한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곧 아랍-이스라엘간의 충돌은 유대 민족국가로서의 근대 이스라엘의 수립과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와 관련해 일어난 충돌이었습니다.

충돌 상황 속에 발생했던 대표적인 전쟁들로는 레바논이 간접적으로 참가했던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1967년 6일 전쟁, 그리고 1973년 Yom Kippur 전쟁이 있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과 레바논, 두 국가 간의 대립으로 발생한 전쟁들로는 1978 리타니 전쟁, 1982년 레바논 전쟁, 1996년 카나 대량 학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일어난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사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으며 그 외에 여러 작은 충돌들도 있었습니다.

일명 "독립전쟁"으로도 알려진 1948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팔레스타인에게는 "대참사"로 일컬어지는 사건들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UN이 영국 통치 하에 있었던 팔레스타인을 두 개의 국가, 아랍과 유대 국가로 나누면서 아랍인들은 이에 반대했고 새로 수립된 이스라엘로부터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군들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과 이라크는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아랍-이스라엘간의 대립으로 일어난 여러 전쟁들의 그 시작이었으며 전쟁의 결과로 이 지역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1949년에 UN에 의해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동의 하에 국경 지대에서 그 어떠한 군사 활동도 금지되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은 10월 5일에서 10일까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간에 발생한 전쟁이었습니다. 이집트가 UN 관계자들을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지대에서 내보낸 후 국경 인근의 군사 활동을 늘리고 티란 해협으로부터 이스라엘 선박들의 접근을 봉쇄해,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이집트 측의 공격을 우려해 선제공격을 했습니다. 요르단은 이에 맞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네타냐를 공격했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사나이 반도, 서안 지구와 골란 하이츠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도 일컬어지는 1973년 Yom Kippur 전쟁은 10월 6일에서 26일까지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집트와 시리아를 앞세워 아랍 국가들이 연합하여 발생한 대립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간의 직접적인 대립에 있어서는 1978년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레바논을 침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1968년부터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습격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지역을 기지로 사용해 오던 팔레스타인들은 몰아내기 위해 침입했던 것으로 이후, 이 사건은 리타니 작전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쟁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UN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425를 채택해 레바논 영토에서 이스라엘군의 철수, 팔레스타인군의 철수, 레바논 남부 지역에 평화 유지군 배치를 요구했습니다. 처음으로 레바논 내의 UN 임시 군이 배치된 것은 결의안이 채택되고 4일 만인 1978년 3월 23일이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철수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남부 레바논 군에게 레바논 남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지지 군이 계속 머무르면서 팔레스타인 저항군 역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에게 대적하기 위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평화 기구의 군대는 이후 계속해서 레바논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스라엘은 결의안 425를 거부하고 1982년에 다시 한 번 레바논을 침입해 팔레스타인들은 공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릴리의 평화 작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역시 레바논 남부지방에서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에 공습을 하고, 나아가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까지 영역을 넓혀 그곳에서 3,000명의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브라와 샤틸라 대량학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지지를 받아 다국적 군인들이 레바논에 배치되어 팔레스타인들이 수단, 튀니지, 알제리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레바논 민간인들과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안전을 책임졌습니다.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 평화 기구 본부가 튀니지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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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람말 주한 레바논 대사의 강연 모습


1984년, 이스라엘은 또 한 번 레바논 일부 지역들에서 철수했지만 레바논 남부에 이스라엘이 4~6km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지정해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마을들을 지키기 위한 이스라엘 측의 보호 조치로 해석됩니다. 이스라엘은 "안전지대"에서 2000년 6월에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계속되는 침입에 맞서기 위해 레바논 남부 출신들로 이루어진 저항 세력인 헤즈볼라가 1982년에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2000년 이스라엘 측의 공식 철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습니다. 1982년 팔레스타인군의 철수 이후, 헤즈볼라는 본격적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쫓아내기 위해 대규모 저항 작전을 펼쳤습니다. 계속해서 무장 저항이 이루어졌고 1993년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해산 시키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1996년, 이스라엘은 또 다시 헤즈볼라를 소탕하기 위해 "분노의 포도 작전"을 펼쳤고 이 작전에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카나 마을에 배치해 있던 UN군 기지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기지에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의 전투를 피해 피신해 있던 약 800명의 레바논 시민들 중 120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인 70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1996년 카나 대량학살이었습니다.

카나 학살이 발생한 다음날, UN은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휴전을 요구했습니다. 레바논, 프랑스, 미국, 시리아와 미국 간의 협정이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에게 민간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시민들을 향한 모든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협정의 목적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국 민간인들의 안전을 선포하고 앞으로 양국 간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문제들을 예방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5월, 매일 헤즈볼라의 공격을 받아오던 이스라엘군은 마침내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철수가 이루어진 이후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샤바팜스를 점령하고 있고 지뢰 위치가 표시된 지도들을 넘겨주지 않고 있으며 포로 석방을 거부해 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철수 이후 양국 사이에 UN에 의해 "블루 라인"이 지정되었습니다. 이 분계선이 지정될 당시 샤바팜스가 포함되지 않아 이스라엘은 샤바팜스가 레바논 영토임을 부정하면서 샤바팜스를 계속해서 점령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은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샤바팜스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결의안 425에 따라 지뢰 지도들을 넘겨주고 레바논 포로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UN과 이스라엘 측은 샤바팜스가 시리아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시리아와 레바논 사이에 샤바팜스가 레바논 영토라는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합의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서류들은 교환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이후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와 같은 입장에서, 이스라엘로부터 레바논 영토를 되찾기 위해 활동을 계속해 왔고 남은 포로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으며 지뢰 지도들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테러 단체로 여겨지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명백한 저항세력으로 레바논 남부레바논 사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레바논 내의 최대 종교 집단이면서 인정받은 정치 세력이기도 합니다. 현재 14명의 의원들이 있으며 2명의 장관들이 레바논 정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헤즈볼라는 2000년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 레바논 뿐 아니라 아랍과 이슬람 사회에서 더욱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레바논 영토, 영공, 영해를 침입해 왔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레바논 남부 뿐 아니라 시민들을 공격해 왔으며 헤즈볼라 지지자들을 납치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측의 행위들은 UN과 레바논에 배치된 UN 군(UNIFIL)이 영토 침입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라는 요청을 무시하는 행위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엄연히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레바논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무차별 행위들을 계속 해 온 이스라엘에 대해 헤즈볼라는 그 어떠한 공격 또는 레바논 영토에 대한 행위들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0년 이후에도, 그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지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 간의 충돌은 계속해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7월 12일 아침,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무장 차량들이 UN이 지정한 "블루 라인"을 넘어 온 것에 대응해 맞서 싸웠습니다. 이 사고로 이스라엘 병사 8명이 숨지고 포로 교환을 목적으로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레바논 포로 석방을 거부하고 대신 헤즈볼라 뿐 아니라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레바논 대부분의 기반 시설들을 파괴했습니다. 레바논 사회 기반 시설, 헤즈볼라 시설들, 민간인들에 대한 군사 작전으로 1,287명의 민간인과 병사들이 숨졌습니다. 이 통계는 여전히 잔해들 속에 묻혀 있는 시신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외 최소 5,000명이 부상당했으며 10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북부지역으로 대피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200㎢에 이르는 지역을 공격해 16,000~30,000개의 아파트와 레바논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베이루트 국제공항이 파괴되었습니다. 87개의 다리와 도시와 마을들을 잇는 96 개의 도로들, 학교와 수많은 공공시설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우유와 직물 공장들을 포함해 300개의 공장들 뿐 아니라 2000㎢에 이르는 레바논 남부 지방의 모든 마을들이 사라졌습니다. 남부에 위치한 저의 고향에서도 저의 집을 포함하여 모두 사라지고 겨우70여 채의 집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인명 피해와 극심한 파괴는 즉각적인 정전이 연기됨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은 지하 침투용 레이저 유도폭탄, 집속폭탄, 파편폭탄, 3가 인을 함유한 폭탄, 스마트폭탄(레이저 광선에 의해 목표에 유도되는), 소이탄을 포함해 다양한 폭탄들을 공격에 사용하였습니다. 항공기, 탱크 그리고 무기들을 이용해 30,000명으로 구성된 이스라엘군이 2000㎢ 이르는 지역에 걸쳐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헤즈볼라를 리타니 강 뒤로 후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한 레바논의 피해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폭력 사태를 끝내고 간접적 평화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즉각적인 정전을 위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할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해 왔습니다. 이러한 레바논 정부의 정전 제안에 대해 이스라엘측은 헤즈볼라의 해산과 무장해제, 그리고 납치된 이스라엘 군인들의 석방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었을 경우에만 고려해 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레바논 정부가 계속해서 즉각적인 휴전을 위해 UN의 원조를 호소해 왔으나 UN 안전 보장 이사회의 몇몇 핵심 국가들, 특히 미국과 영국, 이 즉각적인 휴전을 거부했습니다.

사태가 계속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7월 25일 키암에 위치한 UN군 초소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무장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캐나다, 중국과 핀란드 출신 UN 감시단원 4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사태의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소집된 로마 회담이 있기 전날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당초 감시단원들의 죽음은 계획적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 측의 요구에 따라 UN 측은 UN 감시단 초소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을 공식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격에 대한 충격을 표현하는데 그쳤습니다. 사고로 감시단원 1명을 잃은 중국 측은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공격을 엄중하게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를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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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차 수요대화모임의 전체적인 진행을 도와주신 한양대 이희수 교수님


하지만 이스라엘 공격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틀림없이 7월 30일 발생했던 카나 대량학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다른 마을들로부터 가족들이 피신해 있던 한 아파트 건물을 공격했습니다. 이 사고로 55명이 사망했고 그 중 대부분이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 외 여성들과 노인들도 이 대량학살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카나는 이미 지난 1996년 발생한 학살극으로도 기억되는 마을입니다.

UN 안전 보장 이사회는 카나 폭격에 대한 충격과 비통함은 나타냈고 15개 회원국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협정을 통해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강하게 비탄하고 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즉각 휴전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의 반대로 또 다시 휴전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과거와 최근에 발생한 카나 대량학살 그리고 UN 초소 공격을 비추어 보았을 때, 생존권이 인권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스라엘은 엄연히 레바논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국제 사회는 수천 명의 사망자, 부상자,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키고 사회 기반시설들에 대한 대대적인 피해를 낳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인 대규모 공습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헤즈볼라의 초기 공격은 명백히 이스라엘 군사기지와 병사들을 목표로 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했습니다. 헤즈볼라 공격으로 119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숨졌고 670명이 부상당한 반면에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는 1,150 이상의 시민들이 사망했습니다. 레바논 측 사망자 중 대부분이 2개월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이가 대부분이었고 그 외 여성과 노인들도 많이 숨졌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 뿐 아니라 레바논 전체를 위협하고 파괴 시키는데 있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레바논 영토와 기반시설들을 파괴시킨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들은 UN 헌장, 국제법과 국제 인도주의 법 규범들을 위반할 뿐 아니라 명백한 인권 침해 행위들입니다.

한 달 이상의 전쟁 상태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회의들이 수차례 이루어진 끝에 마침내 지난 8 월 13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대한 공격 사태를 끝내는 UN 결의안에 합의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합의가 이루어진 후,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이 UN 안보리 결의안 1701 조항들에 따라 8월 14일 오전 8시 휴전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UN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안 1701의 주요 조항들에는 모든 공격을 중단하고 레바논 남부 곳곳에 군인들은 배치할 것으로 레바논 정부와 레바논의 UN 임시군에 요구하고 동시에 이스라엘군이 남부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레바논과 이스라엘에 영구적인 휴전과 장기적인 해결책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레바논 정부는 새로 채택된 결의안에 따라 15,000 의 병사들을 레바논 남부지역에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 브라질, 프랑스, 인도, 노르웨이, 필리핀 그리고 스페인 대표 12명으로 구성된 평화단체가 최근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장기적인 평화 협정은 레바논으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철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표단은 7가지 제안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에는 이스라엘 정치가와 군사 장교들이 인류에 대해 범하는 범죄들을 재판할 국제 전쟁 범죄 재판소의 설립,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 샤바팜스와 골란 하이츠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즉각적인 철수, 그리고 이스라엘 수용소에 있는 포로들의 석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전이 이루어진 가운데, 포로 교환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점령했을 당시 남기고 간 지뢰들에 대한 지도들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UN주최 하의 간접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더 나아가, 2006년 레바논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있어 온 이스라엘 측의 레바논 영토, 영공, 영해 침입을 막기 위해 회의들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현재 레바논 정부는 난민들이 그들의 집과 영토에 남아있는 폭탄들을 제거하고 집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에게 의약품, 식량, 의류, 석유 등의 인도적인 원조를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1600만 명의 레바논 동포들과 UN, 프랑스, 유럽과 아랍 국가들의 도움으로 정부는 공항, 다리, 도로, 학교 그리고 그 외 공공시설들을 재건하여 레바논의 기반시설들을 복구 시키는데 집중적으로 힘 쓸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와 아랍 에미리트 연방에서 인도적, 의료 원조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국제 사회는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과 의료 지원을 제공해 왔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사태 종결 이전에도 인도적 원조를 제공했으며 최근에는 레바논에 추가적인 지원을 공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고통 받고 있는 희생자들을 위해 $500,000를 기부했고 앞으로 $100,000 상당의 의료품들을 레바논 국민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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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후세인 람말 레바논 대사의 강연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강의에 참가한 참석자들이 번역된 강연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레바논 국민들은 많은 일을 겪어 왔습니다. 오늘날까지 수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의 침입과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레바논 국민들의 자생력은 잘 알려져 있으며, 재건과 일상생활로의 복귀 능력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원조로 레바논은 빠른 속도로 유명한 관광 도시로서의 명성을 되찾고 석유달러를 끌어들이는 은행 계좌를 복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앞으로, 레바논은 안정을 되찾아 궁극적으로는 중동지역의 평화를 추구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UN 주도하에 이루어진 간접협상이 가장 시급하다고 레바논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열린 아랍 정상회담에서 레바논을 포함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에서 물러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을 받아들이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준다면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모두 성립이 된다면 분명 이스라엘과 레바논, 나아가 아랍 국가간의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7월 12일을 시작으로 해서 레바논은 34일이라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강력한 공격으로 인해 고통 받아왔으며, 마침내 8월 14일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휴전협상이 이루어진 가운데, 지난 월요일, 이스라엘군은 또 다시 총격을 가해 헤즈볼라 단원 3명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군 측은 그들이 위협적이라 판단해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휴전에 돌입한 가운데,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상황을 "영구적인 정전"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또, 간접협상들을 통해 포로 교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철수가 단행되어야 할 것이며 지뢰 지도들을 이스라엘로부터 넘겨받아야 할 것 입니다.

최근 발생한 사태는 국제사회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인터뷰를 통해 "내 생각으로는 이스라엘에게는 레바논 전역에 그들의 대규모 폭격을 가할 그 어떠한 법적,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 사실 이스라엘 측은 10,000명에 이르는 포로들은 수용하고 있는데 레바논 또는 가자에서 이스라엘 병사 1~2명이 납치당한 것으로 레바논과 가자지구의 민간인 공격을 정당화 하고 있는데 이것은 공격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비판했습니다. 또, 이 사태와 관련해 이론 언어학 분야에 크게 공헌한 저명한 언어학자인 놈 촘스키는 이스라엘에게는 분명 자신들을 지킬 권리는 있지만 그 어떠한 국가도 점령 지역을 방어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사법 재판소가 이스라엘의 분리 벽을 비난했을 때 한 미국 고등 법원 판사조차 분리 벽에서 이스라엘 점령지들을 지키기 위해 지어진 부분은 결과적으로 국제 인도주의 법에 위반된다고 단언 했습니다. 그것은 점령지 자체가 비합법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인권실천시민연대와 한국인들이 이번 사태와 레바논에 주신 관심과 지원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권실천시민연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무궁한 번영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