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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와 부정유통(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5-26 14:47
조회
664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올해 전국 지자체 발행 규모가 15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의 부정유통행위가 전국 일제단속을 통해 최근 112건이 적발됐다.


 지난 5월 13일 행정안전부는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일제 단속 결과를 발표했다. 소위 ‘깡’ 행위를 저지른 개인과 지역화폐 가맹점을 적발하고 조치한 것이다.


 지역화폐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부정유통행위는 크게 물품의 판매 또는 용역의 제공 없이 상품권을 수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너무 어려우니 쉽게 풀자면,


 10% 선할인 혜택을 받아 9만 원을 내고 10만 원의 지역화폐를 구매(교환)한 지역화폐 가맹점의 점주, 점주의 가족, 점주의 지인들이 해당 점주의 가게에서 물건을 실제 구매하지 않고, 점주는 이를 그대로 현금으로 환금할 경우 1만 원의 부당 차익을 남기는 것이 기본형이다.


 여기서 아예 물건을 팔지도 않는 유령가맹점을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한 후 음성적인 자금으로 지역화폐를 대량 구매하거나 구매대행을 시킨 후 그대로 환금하는 기업형 부정유통도 최근 발생했다. 심지어 폭력조직이 고교생을 모아 구매대행을 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 실제 매출금액 이상의 거래를 통하여 상품권을 수취하는 행위, 개별가맹점이 부정적으로 수취한 상품권의 환전을 대행하는 행위, 상품권 결제 거부 또는 상품권 소지자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등도 포함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행정안전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7월 시행된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법률에서 부정유통행위 적발 시 최고 2천만 원의 과태료 규정이 포함되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지역화폐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악재를 강력하게 차단하겠다는 의지였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이번 일제 단속 이후 부정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후속 조치이다. 무엇보다 예방적 조치가 가장 필요하다.


 지역화폐는 지류, 모바일, 카드형 결제수단이 있다. 하나의 결제수단만 도입한 지자체는 별로 없고 대부분 중복으로 사용한다. 이들 결제수단 중 모바일 또는 카드형은 발행위탁업체에서 부정사용방지시스템(FDS(Fraud Detection System)을 운영하거나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이다. 발행위탁업체 중에서는 지류-모바일-카드 모두 관리가 가능한 통합시스템을 갖춘 곳도 있다.


 부정사용방지시스템은 부정유통이 의심되는 사용자와 가맹점의 이상거래패턴을 감지하고 이를 분석하여 관리자에게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발행위탁업체가 지자체 담당자에게 실시간 오픈하고 지자체 담당자들은 항상 스크린하며 의심 대상자들에게 ‘이상거래패턴이 감지되니 주의하시기 바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면 부정유통행위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확신한다. 지역화폐 ‘깡’을 해볼 요량을 피자마자 즉각 경고 메시지가 온다면 웬만큼 간이 크지 않고서야 또 다른 엄두가 안날 노릇일 것이다.


 부정유통행위 중 가장 고약한 유령가맹점을 통한 조직적인 깡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별수 없이 현장 실사가 필요하다. 현재 등록제인 지역화폐 가맹점들을 등록 후 반드시 한차례 이상 방문하여 실제 영업을 하고 있는지, 등록신청서와 동일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확인하여 의심업체는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 지역화폐가 원활히 이뤄지는 지자체의 경우 현장지원 서포터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서포터즈들의 업무에 유령가맹점 여부확인을 포함시키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상인조직들과의 예방 노력도 필요하다. 부정유통 방지 현수막 게시 등 정기적인 계도활동을 상인회 등과 함께 한다면 이해당사자들의 책무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부정유통행위인지 잘 모를 수 있는 가맹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공지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예방보다 더 좋은 조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이것이 근원적인 문제해결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지역화폐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했던 인센티브 제공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지역화폐는 깡 행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코로나19 시국에서 골목상권에 지역화폐가 더 많이 돌게끔 정부가 파격적인 구매 할인액을 보전해주고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적절한 규모를 넘어선 높은 재정투입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변죽만 울리는 진단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도입비율도 비교하지 않고 결제수단이나 할인제공 형태별로 부정유통행위가 높거나 낮다는 분석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강조하건대 결제수단이나 할인제공 형태가 아무리 달라져도 할인 차익을 취하기 위해(그 규모가 매력적이면 매력적일수록)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제약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부정유통 현장단속을 다니며 진이 빠져버렸다. 지역화폐라는 어쩌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소상공인들은 물론 중앙·지방정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