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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석미화(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코로나와 ‘나’(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25 14:28
조회
285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처음엔 몰랐다. 그것이 내 삶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발 보도로 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그때만 해도 ‘우한 폐렴’으로 통하던 이 바이러스성 질환이 우한을 넘어 중국 전체로, 중국을 넘어 세계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2020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편견을 유도할 수 있는 특정 지명이나 동물 이름을 피하도록 한 원칙에 따라 'Corona Virus Disease 2019'를 줄인 'COVID-19', 즉 ‘코로나19’로 이름을 바꾼 후 부쩍 그것이 내게 가까이 왔다. 어쩌면 선후가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 확산이 그 이름을 불러왔는지, 그 이름을 달고 바이러스가 더 퍼졌는지 말이다.


 시작은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의 문의부터였다.
 내가 일하는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민간인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각종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평화교육 프로그램으로 베트남 호치민시와 한국군 주둔지였던 다낭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평화기행을 진행하고 있는데, 2월 말에 출발예정이던 평화기행 참가자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며 베트남은 안전한 지 전화를 해 온 것이다. 비상이 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업과 코로나19를 연결하지 못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배포하는 일일공지를 체크하고, 베트남 언론사 기자와 베트남 당국의 정보를 입수하여 코로나19에 대한 베트남의 대응을 매일 살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당국의 강력한 통제 아래 1월 24일 중국 우한과 베트남 간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하고, 이어 28일엔 중국 내 감염 지역에서 입국하는 중국인 여행객의 비자발급을 중단했다. 안전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평화기행을 강행할 순 없었다. 허가, 수속, 일정 조율을 마치고 출발을 기다리던 2월 평화기행 두 건이 취소됐다.


 그때만 해도 바이러스의 파장은 거기까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2월말 대구지역 신천지 집회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제 통제 대상은 ‘중국’이 아닌 ‘한국’이 되었다. 2월 25일 베트남은 대구·경북지역 거주자 또는 14일 이내 이 지역을 다녀온 자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내놨다. 곧이어 증상을 불문하고 대구·경북 지역 체류가 확인된 입국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시설격리에 들어갔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이 시기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세계 곳곳이 한국인에 대한 입국절차를 강화하거나 금지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갔다. 베트남 대학생들이 참여해 중부 한국군 피해 마을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선물하는 ‘V프로젝트’ 개장식이 무기한 연기됐다. 평화 활동가 양성을 위해 지난해 3월 베트남으로 갔던 한베평화재단 장학생은 코로나19로 학교가 휴업에 들어가자 1년의 장학기간을 마치지 못한 채 귀국 일정을 앞당겼다. 미리 비행기 표를 예매해두었으나 그마저 취소되고, 한국행 비행기를 간신히 잡아타고 부랴부랴 들어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못 나누고, 상상했던 귀국길과는 다른 정신없는 야반도주였다나. 1년의 마무리가 코로나19로 엉망이 되었다. 원래는 베트남에서 진행해야할 인턴 활동은 기약 없이 한국에서 시작됐다.



지난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영국 런던에서 여객기를 타고 입국한 승객들이
진단 검사를 받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장학생이 전한 베트남의 분위기는 또 다른 국면이었다.
 베트남이 대구·경북 입국자에 대해 강화된 조치를 시행한 시기, YTN은 ‘다낭에서 격리된 우리 국민들’(2월 25일자)이라는 제목으로 현지 상황을 보도했다. 이 보도는 현지 교민의 감정적 주장을 여과없이 담아 베트남 문화를 비하하고 현지 상황을 과장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재단의 장학생은 한국인에 대해 달라진 베트남 분위기와 이 기사로 폭발한 베트남 사람들의 분노를 전했다. 그에 따르면 “기사가 나오고 며칠 동안 한국과 베트남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혐오하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검증되지 않은 악의적인 뉴스와 글들이 빠르게 퍼졌다. 나는 한국과 베트남 양쪽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베트남 친구들의 SNS에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향해 단 악플이 하나씩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올라왔다”고 한다. 이것이 앞으로 재단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감조차 잡을 수 없다.


 19일 0시부터 해외입국자에 대한 특별입국절차가 시작됐다. 앞으로 해외입국자에 대해 자가격리 의무화 등 강화된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현재 브라질에 있는 가족이 조만간 입국을 앞두고 있어 이 조치를 따르게 될 텐데, 그렇다면 나도 함께 자가격리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코로나19의 교훈은 한마디로 코로‘나’라는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했다. 바이러스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