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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코로나19와 특징 존재 효과, 그리고 약간의 억지(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17 10:51
조회
1040

이 윤/ 경찰관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 항공기가 격추당했다. 격추를 모면하고 간신히 기지로 귀환한 항공기들은 총격에 의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돌아온 항공기들에서 총구멍이 많은 부분을 확인하여 그곳이 취약한 부분이라고 결론지었고, 그 부분을 보강한 항공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생환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생환한 항공기들의 총 맞은 부분은 총을 맞더라도 격추될 가능성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총격에 치명적인 곳을 맞은 항공기들은 이미 격추되어 보강이 필요한 곳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눈에 보이는 특징과 사례에 편향되어, 보이지 않는 곳을 간과한 오류로 인해 정작 필요한 곳에 대한 정확한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특징에만 주목하고, 보이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간과함으로써 진실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되는 인지 오류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특징 존재 효과(feature positive effect)’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힘겨운 요즘, 특징 존재 효과 때문에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인지 오류를 바로 잡아 정확한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중국, 이탈리아 다음으로 확진자 수가 많다. 확진자 수가 많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면 한국의 방역체계가 허술하여 초기 중국으로부터 감염자 입국을 막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거나,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비난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확진자 수에만 주목한 인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특징에 현혹되지 않도록 한꺼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부가 촘촘한 방역망과 진단체계를 잘 활용하여 확진자 및 감염우려자들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관리 가능한 감염자들을 모두 찾아내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일부 확진자 수가 적은 나라들은 검사 역량이 부족하거나, 검사를 의도적으로 적게 하거나, 허술한 역학조사로 인해 확진자 수가 과소평가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국가들의 방역체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국가들 때문에 통제되지 않은 세계적 감염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미 많은 외신과 일부 국내 언론들도 한국에서 공식 발표된 확진자 수가 많은 것이 한국의 개방성과 민주성, 그리고 높은 수준의 방역체계 덕분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한 달 이상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빨아 쓰면서 조심은 하고 있지만, 감염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다.


 여기에 비유하는 것이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으나, 99년 이후 여러 차례 경찰과 검찰 간 수사권조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경찰관의 비리나 잘못을 비난한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런 기사들을 볼 때에도 특징 존재 효과를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난기사를 접하면 언뜻 상당히 많은 경찰관들이 비위를 저지르고 있어 수사 주체로서의 권한을 맡기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경찰은 내‧외부에 감시와 통제의 눈이 많고, 조직 정화 기제가 잘 작동하기 때문에 비리나 잘못이 있으면 밖으로 자주 노출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런 사례들이 오히려 조직 내 민주화와 투명성, 개방성이 과거보다 많이 개선된 반증이라고 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해석일까? 어쨌거나 잘못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가두어 눈에 보이지만 않게 하는, 그리고 견제와 감시의 수단이 없는 조직보다는 경찰이 더 건전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숨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