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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혼돈과 불신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3-13 11:22
조회
105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시장과 도덕


 보통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표해서 정치를 맡아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기대를 갖는다. 그 기대는 시민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곤궁함이나 억울함을 직접 해결해 주리라 믿지 않는다. 사회의 공공성에 입각한 바람직한 원칙과 법을 정치인들이 제대로 마련함으로써 그에 따라 자신의 처지가 개선되리라 믿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의 공공성에 관련된 사회의 체제와 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장과 도덕이다. 시장은 도덕과 무관하게 오로지 재화와 부의 배타적인 소유를 둘러싼 이익관계에 따라 작동한다. 그 반면, 도덕은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인격적이고 정신적인 호혜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작동한다.


 사회의 공공성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합리성과 그에 따른 합의에 의해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공공성과 직결되는 사회적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인 합리성과 합의는 한편으로는 시장의 이익관계에서 성립하여 작동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도덕의 인격적인 상호관계에서 성립하여 작동할 수도 있다. 사회의 공공성 형성과 사회적 정의의 구현을 둘러싸고서 시장과 도덕은 대체로 길항작용을 한다. 그 강함과 약함에 있어서 서로 반비례하는 것이다.


 사회의 공공성의 구축과 확대는 사회적인 정의를 보편적으로 실현하는 바탕이 된다. 올바른 정치는 사회의 공공성 구축과 확대를 통해 사회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정치는 시장이 요구하는 내용과 도덕이 요구하는 내용을 아울러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 여기에 정치의 딜레마가 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비인격적인 방향으로 작동함으로써 도덕을 멀리한다. 그런가 하면 도덕은 기본적으로 인격적인 방향으로 작동함으로써 시장에 대해 규범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정치는 그 사이에서 움직인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공공성과 합리성은 철저히 계산에 입각한다. 그 계산은 투입 ‧ 지출되는 자본과 그에 따라 새롭게 산출되는 자본의 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때 사회적 공공성은 자본 위주의 계산에 따른 예측이 얼마나 가능한가에 따라 그 범위와 강도가 결정된다. 말하자면 시장적 질서가 곧 시장에 의거한 사회적 공공성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합리성은 자본 위주의 계산적인 예측을 더욱 정확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만 작동한다. 그리하여 시장의 구도에서는 애초 진리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성찰적 합리성이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으로 전락한다.


 진리가 선험적 ‧ 초월적으로 그 본질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고래의 관점은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없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상호 주체성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형성할 때 그 공동체를 통해 공공적으로 추구되는 의미와 가치에서 진리가 성립한다고 여긴다. 모두가 모두를 통해 자신의 삶을 최대한 긍정할 수 있을 때 그 의미와 가치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시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의 구조적인 체제 속에서 생산한 일체의 것들이 공공적인 가치를 지닌 재화로써 상품화되어 사회적 상징물인 화폐를 매개로 대대적인 연결망을 통해 교환되는 장소다. 문제는 시장이 온갖 다층적인 복잡한 연결망의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생산자인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생산물이 제대로 된 값으로 교환되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으로 시장은 불신의 구도로 작동하고, 그리하여 누구나 자신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값보다 실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라 여기면서 암암리에 박탈감을 갖는다. 말하자면 남들에게 더 많이 주고 남들로부터 덜 받게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지출하거나 기여한 몫에 비해 사회가 제공하는 편의의 정도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통해 수행하는 정치적 행위가 우선 목표로 삼아 추구할 것은 시장을 불신의 구도로부터 구출하는 일이다. 어차피 시장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시장을 통해 각자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되 사회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공정하게 자신의 정당한 몫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적 행위의 최우선 과제다. 이에 필요한 것이 보편적인 안목에 따른 성찰적 합리성이고 그에 따라 성립되는 도덕에 의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조정이다.


 보통 시민들에게 시장은 너무나 복잡한 체계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시장을 통한 부의 획득과 누적 그리고 대를 이은 계승에 대해 사회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몫이 과연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고 있는 소득세나 증여세 및 상속세의 비율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납세자는 부당하게 많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수혜자는 부당하게 적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장이 지닌 근본적인 불신의 구도는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넘쳐나도록 하고 그리하여 호혜적인 사회적 공공성마저 근본적으로 훼손하여 사회적인 불화를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호혜적인 사회적 공공성을 지탱하는 것이 도덕이다. 상호 신뢰가 없이는 도덕이 성립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남이 적건 많건 나의 이익을 부당하게 가로챌 수 있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한, 서로를 통해 성립할 수밖에 없는 인격의 상호인정과 그에 따른 도덕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2. 현실 한국정치와 도덕


 서로의 정당한 몫을 보장하는 가운데 나의 정당한 몫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고, 그러한 정의로운 행동의 가능성을 잣대로 실제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도덕이다. 그리고 정치는 이러한 도덕에 바탕을 두고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드러나는 한국의 정치는 도덕과 아예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든 남의 몫을 빼앗아 나의 몫을 강화하려는 행태를 보이면서 정치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도덕에 의거한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을 구축 ‧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혹시라도 상대방이 그런 노력이 보일라치면 어떻게든 이기적인 권력욕에 의한 것인 양 변조시켜 비난한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정치적인 행태가 그러하다. 대대적인 폭력으로 사람들을 죽여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다음 정권을 찬탈한 세력을 비호하는 자신들의 행동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온갖 희생을 다한 끝에 그러한 세력을 몰아내고 겨우 형성한 민주주의가 법적으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당연한 양심적인 행동인 양 내놓고 과시한다. 이는 자신들의 정치적 혈통이 얼마나 무섭고 추악한 것인가를 제 스스로 증명하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그들의 전당대회의 모습에서 이러한 왜곡된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한 자유한국당의 정치 행태는 정치에서 도덕이 실종되면 민주주의마저 어떻게 실질을 상실하고 그 형식만으로 심각한 폐해를 낳을 수 있는가를 여실히 입증해 보인다. 그런 정치적 혈통 속에서 자행한 온갖 무법적이고 파렴치한 무지와 악행을 민주적인 법과 절차에 의해 국가적인 권력으로써 처벌하는 일을 ‘폭압정치’로 몰아붙이면서 마치 자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신봉자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억울한 희생자인 양 국민을 호도한다. 그럼으로써 정치란 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 필요 충분한 목표인 양 하고, 그래서 시쳇말인 ‘내로남불’이란 말을 남발하면서 현 정권 세력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정치권력을 향한 야욕에 불타는 것으로 몰아붙여 그 왜곡된 판 위에서 무조건 현 정권의 정책들을 비난한다. 모처럼의 남북평화를 위한 노력마저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이를 위해 시장에서도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극단적인 감정적 망언들을 기염을 토하듯이 경쟁적으로 외쳐댄다. 



사진 출처 - KBS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모든 국민들로부터 제거해 버리려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든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도록 함으로써 뒤죽박죽의 정치판을 만들고 그런 가운데 도덕과 아예 무관한 정치를 정착시킴으로써 그네들이 과거에 저질러온 비도덕적 ‧ 비합법적 행위들을 비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지도부의 주장들을 보면, 마치 정권을 잃어버린 탓에 현 정권에 의해 그들의 과거가 비도덕적이고 비합법적으로 부당하게 취급되고 있음을 선전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를 철저한 불신의 구도 속에 몰아넣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을 구성하는 불신의 구도가 당연한 것인 양 자리를 잡게 되고, 상호 신뢰에 근거한 도덕을 바탕으로 한 사회 공공성이 무너지고, 사회 공공성에 의거한 법마저 권위를 잃게 되면서 법치가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행위로 치부된다. 그리하여 법의 힘을 빌려 최소한으로 시장의 힘을 조정하고 나아가 도덕을 힘을 빌려 최대한 시장의 힘을 조정하고자 하는 정치 행위의 본질적인 가능성이 현저히 약화된다. 그 결과, 사회 공동체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넓고 깊은 국민 개개인의 삶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 불신은 사회적인 불신을 낳고, 사회적인 불신은 개개인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한시바삐 정치를 불신의 늪에서 구해내야 하는 까닭이다. 정치적 불신의 구도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 불신에 의한 감정으로 정치에서 요구되는 성찰적 합리성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법을 도덕 위에 세우고, 그 법으로써 정치적 혼돈과 불신을 조장하는 세력들을 준엄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칼날 위에 선 자세로 정치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