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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광조(CBS PD),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제주살이 2 - 일상은 늘 복합적이다(정보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1-21 09:57
조회
114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아홉 달 동안 제주에 살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 여행 와서 보던 제주와 살고 있는 제주는 완전 별개라는 것이다. 여행 와서 보고 싶은 모습만 보던 제주와 현재 살고 있는 제주는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 내가 이곳에서 말하는 제주는 뉴스에 나오는 제주와도, 여행지 제주와도 다르다. 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여행지에서는 부딪히지 않을 감정들. 어떤 때는 너무나 불편해서 집 안으로 숨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것들. 


 그것들 중 대부분은 이곳의 오래된 문화와 내가 배우고 누리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이곳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 몇 달 혹은 일 년 정도 살다 다시 육지로 나갈 거라면 무시하고 넘겨 버릴 수 있겠지만, 제주에서 나갈 때를 정하지 않은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내야 하는 것들이다. 소화하다, 이 표현이 적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지 알게 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지는 않는 상태. 현재까지는 그 상태로 제주에서 나는 살고 있다. 


모다들엉 놀게마씸 
 제주 생활과 함께 시작한 나의 도서관 사서 자원봉사.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사업과 행사를 치러야 하는 줄 알았다면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상가리 마을 작은 축제 도서관에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사진 출처 - 필자


 '모다들엉 놀게마씸'은 제주말로 "모여서 함께 놀자”라는 뜻이다. 상가리새마을작은도서관에서는 제주시마을만들기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9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유기견을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아이들과 나눈 <생명은 모두 다 소중해요>, 직접 요리하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도 했던 <요리 조리 어린이 요리 체험>, <캘리그래피로 만나는 명언>, <조물조물 아이 클레이>, <캐릭터 그리기>, 같이 마을길을 걸으며 구석구석 알게 한 <우리 동네 한바퀴>, 10주간 매주 노인정에서 그림책 읽어드린 <책 읽어주는 사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한 <어린이 게이트볼 교실>, <중국어 동극> 같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새마을문고협회의 지원으로 <중국어 그림책>과 <제주어 동요 배우기> 수업도 이루어졌다. 시골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 체험을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위 수업들 외에도 동네에서 영화 보자는 취지로 영화상영을 네 차례나 열어 아이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이 모든 수업과 행사 참가자가 400명을 넘었으니 시골 마을에서 이런 행사들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올해의 모든 프로그램을 끝내고 총정리하면서 도서관축제를 마련했다. 주민들이 기증해준 600여 권의 책을 무료나눔하고, 올해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제주어동요’ 공연, 더럭초 5학년들의 ‘오카리나’ 연주, 4학년들의 ‘중국어 동극’ 등 축하공연도 열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행사를 준비한 도서관 사서들 모두 뿌듯해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깔끔하고 아이들이 책읽기에 포근한 마을도서관. 올초 리모델링되기 전에도 도서관이긴 했으나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창고 비슷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무료봉사하는 사서들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책들도 제대로 분류가 되고 새 책들도 다수 들어오는 등 살아움직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전에 편하게 이곳을 드나들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새단장을 한 후 잘 모르는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는 도서관이 왠지 불편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 모양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몇몇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마을 예산으로 리모델링한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해 보자는 취지로 자원봉사자들이 나섰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정작 본인들은 소외시키고 마치 이주민들끼리 모이는 아지트처럼 비쳤던 것 같다. 나보다 몇 년씩 먼저 제주에 온 다른 사서들은 이미 이주민과 토박이들 사이의 거리감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자꾸 만나고 부딪혀야 서로에 대해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상가리마을도서관
사진 출처 - 필자


 도서관 사서들이 2인 1조로 10주간 노인정에서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나는 첫 책으로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책을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에 나오는 곶감은 제주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땅콩도 잘 재배하지 않고, 겨울은 쉬는 시기가 아닌 귤 수확철이라는....어르신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부랴부랴 책읽기를 끝내니 진땀이 났다. 책읽기가 끝나면 다른 사서가 민요를 몇 가락 불러드렸는데, 역시 책보다는 민요! 


 이주민들이 늘면서 그들이 제주로 데리고 들어오는 애완견들도 늘었다. 시골에서 가장 눈에 띄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집에서 키우는 개에 대한 인식인 듯하다. 시골에서도 개를 많이들 키운다. 마당에 개집을 두고 집 안에 들이지는 않는다. 여름 한 날 도서관 뒤에서 어르신들에게 수박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큰소리가 났다. 대접하는 부부 중 부인이 애완견을 안고 수박 근처에 온 것이다. 할머니가 먹을 것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며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먹을 음식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이신 것 같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키우는 것과 같이 산다는 개념의 차이만큼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제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할머니가 밭에서 쭈그려 일하고 할아버지는 밭두렁에서 담배 피면서 쉬는 풍경이다. 할아버지는 경운기 옆에서 쉬고 할머니가 농약통을 짊어지고 농약을 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모든 할아버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니길 바라지만). 제주의 할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 년 내내 바쁘게 움직인다. 할머니들이 보기에 집에만 있는 여자들(대부분 이주민 엄마들)은 놀고먹는 팔자 좋은 인간들이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토박이 딸, 며느리 중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은 없다. 집에 있는 아들과 아버지들은 봤어도.


 내가 사는 집은 주변이 다 새로 지은 집들이라 마을 한가운데 있는 농가주택처럼 옆집 할머니가 안 계신다. 그래서 생활하면서 특별히 눈치를 많이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골살이는 언제 어느 때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가리마을도서관과  리사무소는 출입문을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오후 5시 리사무소 사무장이 퇴근하면서 도서관 문도 잠근다. 가끔 그러지 않을 때 마을 주민 누군가가 도서관에 들렀다 불이라도 켜두고 가는 날이면, 어르신 누군가가 저녁 늦게라도 사무장에게 전화해 알려주신다고 한다. 도서관 운영한답시고 마을 비용을 헤프게 쓴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뭐라도 꼬투리를 잡으면 도서관에 대한 불만을 함께 얘기하신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본인들에게는 어떤 이득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다 제주 시내나 육지에 살고 있고, 막상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은 모두 이주민이다. 젊은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활기가 생기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평생 가꾸고 일구고 살아온 동네가 본인들 자식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식들에게 이 시골로 들어와 살라고 말은 못해도 심정적으로는 같이 살고 싶은 것인가. 그 감정을 이주민들에게 투사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