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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당당”, 페미니스트 정당을 꿈꾸다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39
조회
486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요즘 들어 페미니즘이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페미니즘 학교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서점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갑자기 많이 팔리고 있는 듯하다. 여기엔 소위 ‘메갈’, 즉 ‘메르스갤러리’ 사안들이나 ‘강남역 살인사건’ 등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러링’이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의 논쟁에서부터 촉발된 ‘메갈’을 둘러싼, 그리고 강남역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반응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 공통의 두려움과 무기력으로부터 출발된 분노와 행동의 욕구가 페미니즘 1세대인 여성운동‘권충’, 그리고 2세대인 영페미니스트들과 다른 좀 더 공세적이고, 은유적이며, 해학적인, 그리고 직접적이며, 솔직한 대응방법들을 통해 더욱더 확산일로에 있는 듯이 보인다. 나는 소위 ‘권충’-운동권-세대이다.


때문에 처음 메갈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들, 평가들을 들었을 때,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좀 놀라고, 좀 흥미롭고 그러나 대체로 무관심했었다. 그러나 ‘왕자는 필요 없다’는 티셔츠를 입은 성우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대한 정의당 사태가 나고부터 이런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등장과 행동양식은 나의 관심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진보정당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그러나 새로운 페미니스트들 스스로 ‘권충’을 만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만나고는 싶었지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어제 그들을 만났다. 물론 메갈 측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20대 페미니스트들로 구성된 ‘페미당당’ 회원들이었다. 페미당당은 한국에 페미니스트 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정당준비모임이다. 이들이 여성운동이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주로 학습으로, 그리고 사이버 상에서 ‘트펨’-트위터 페미니스트-으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뭔가 움직여야 한다는 자각을 통해 ‘거울행동’-영정만한 크기의 거울을 들고 서로 비추기-을 시작으로 현재 10월 ‘임신중단’, 즉 ‘낙태’ 합법화 시위를 지난 일요일과 오는 일요일에 진행하기까지 되었다.


여성단체가 아니고 정당인 이유는 ‘대의민주제’에서 정당이 지닌 정치적 힘, 권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정치적 힘, 권력을 여성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이유는 기존의 정당들이 어느 누구도 여성의 삶과 직결된 여성문제를 주요한 이슈로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들에 비해 그 또래 여성들이 ‘탈조선’ 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나타나는 것도, 이 땅에서 여성이 살아가기가 남성에 비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성이슈, 낙태나 성폭력, 성매매, 일상의 여성혐오나 비하, 증오적 여성대상 범죄-사이버상의 욕설 포함-는 여성의 일상의 삶을 무력화시킨다. 일상이 매번 두려움이나 경계, 혹은 비하라는 수모의 연속이라면 그것은 폭력의 일상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문제이자 여성이슈들은 여성들의 일상을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일상적인 일상으로 되찾아오는 문제가 된다. 삶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문제가 기성정당들에서는 그 친구들의 말을 빌려오면 ‘부록’처럼, 그리고 선심 쓰듯 던지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이들에게 정당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행동을 가져오게 했던 배경이다. 지금 여성정당에 대한 논의는 여러 군데서 나오고 있는 듯하다. 경남지역에서도 기존 정당에서 여성의원-지방 및 국회-의 경험을 가진 일군의 집단들이, 여성의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도 변하지 않는 남성 중심적, 권위적, 비민주적인 정당문화와 구조를 그 내부에서 깨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여성만의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논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여성정치세력화가 정치적인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를 중심으로 고민을 해오던 나는 문제는 여성정치세력화의 전략이나 여성의원들의 남성적인 정치문화가 아니라, 정당문화와 구조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결론에 맞닥뜨리고, 여성정치가 기존의 정치판에 ‘끼어들기’를 통해 정치문화에 대한 ‘새판 짜기’는 요원할 뿐이라는 답답함을 안고 있었다. 새판을 짜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럼 무엇이어야 하는가? 여성의원들의 수가 임계점을 초과한다면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당과 정치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자질을 갖춘 여성의원들이 늘어하는 것이 필요한가? 그렇게 된다면 변화는 가능할까? 아니다. 그런 자질을 갖춘 여성의원들이 정치의 장에 진입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정치적 생명을 연장 및 유지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201606061657_61120010679119_1.jpg사진 출처 - 국민일보


스웨덴을 떠올리면 양성평등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대체로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대등하다고 생각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웨덴에, 어쩌면 스웨덴이기 때문에 여성정당 'FI(Feminist Initiative)' 가 만들어지고 유럽의회에 진출까지 했다. 물론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인고로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2005년에 준비와 창당에서 의회진출까지 10년이라는 내홍과 외부위협을 견뎌냈다. 이들의 창당기에 관한 영화에서 나타난 FI회원들에 대한 남성들의 직/간접적인 온갖 위협들을 보면서 ‘스웨덴도 저러는 구나’ 했다. 때문에 ‘페미당당’ 회원들이 ‘염산테러’라는 극단의 위협을 예견하는 것이 과장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가부장문화를 해학과 풍자로 비틀어 웃을 줄 안다. 이 여성들을 만나고 한편 미안함과, 한편 가능성에 대한 희망, 구체적으로는 이미 페미니스트 정당이 창당되고 선거에 뛰어드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를 위해 구세대이자 ‘권충’ 들인 우리의 모임과 20대 페미니스트인 그들의 모임의 연대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의, 그들은 그들의 경험과 방법을 서로에게 나눔으로써 결국엔 더 큰 ‘우리’가 되는 그러한 과정을 가지기로. 벌써 가슴이 뛴다.


어느 총선에선가, 혹은 지방선거에서라도 ‘페미당당’이란 정당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기입되고, 누군가 찍는다는 그런 상상만으로도 그렇다. 이슈는 당연 낙태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의 신체적 권리가 구조적으로 법적으로 실현되도록 하는 것들이 될 것이다. ‘남자답다’라는 말이 적극성과 과감성을 대표하지 않고 ‘여성답다’라는 말이 수동성과 소극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들이 사라져버린 어느 날, 여성주의, 페미니즘도 사라져 버릴 그 날, 그 날이 더디더라도 만들어지고 있다. 과감성과 적극성이 ‘여성답게’로 표현되는 과정을 통해.


이 글은 2016년 10월 1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