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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의 역사는 인권의 역사다(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0-12 14:56
조회
487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지하층 세인즈버리 갤러리에는 베닌 조각이 있다. 베닌 조각은 흔히 베닌 브론즈(Benin Bronze)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청동뿐만이 아니라 황동, 상아 등을 재료로 한 베닌 왕국의 왕실 예술품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영국박물관 지하에서 만나는 베닌 조각은 ‘역사 없는 대륙 아프리카, 역사 없는 아프리카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편견인가를 단번에 일깨워준다. 유려하게 흐르는 청동제 두상의 아름다운 곡선, 얇은 황동판에 섬세하게 새긴 부조 솜씨는 이 유물의 주인 베닌 왕국의 문명이 얼마나 화려하게 꽃피었던가를 웅변한다.


Head of a Queen Mother, British Museum ⓒ 염운옥


Cast brass plaques, British Museum ⓒ 염운옥


 그런데 서아프리카 베닌의 유물이 왜 런던 영국박물관에 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약탈 유물이기 때문이다. 베닌 조각은 대표적인 약탈 유물이다. 1897년 1월 13일 베닌을 급습한 영국군이 베닌 왕국의 지도자 오바(Oba)를 축출하고 고무와 야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 서부 나이지리아를 보호령으로 삼으면서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이다. 동인도회사 같은 특허회사의 아프리카 버전인 왕립나이저회사와 영국 식민성, 육군, 해군의 합작품인 베닌 시티 공격은 온전한 맥락을 갖추고 존재하던 왕궁 예술품을 산산이 흩어놓았다. 공격 작전의 목적은 베닌을 보호령으로 만드는데 방해되는 존재인 오바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베닌 시티 공격이 끝난 후 오바는 약식 재판을 받고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베닌 시티 원정에 대한 영국의 자기 정당화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예제가 활용되었다. 1807년 대서양 노예무역을 폐지하고, 1834년 노예제를 폐지한 영국은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해군력을 이용해 노예무역을 단속하고 나섰다.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의 정책이 노예매매에서 내륙 개발과 자유무역으로 전환하면서, 한때 영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던 노예제는 악의 근원으로 규정되었다. 이런 사정은 베닌 왕국의 노예제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와 권능을 영국에게 부여했다. 베닌의 오바를 신민을 노예화하고, 야만적인 인신공양을 자행하는 악의 화신으로 몰아붙이고, 베닌인을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영국은 베닌 공격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원정의 실상은 베닌인에 대한 철저한 유린이었다. 원정에 참여한 군인들은 도시를 파괴하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유물은 약탈해 팔아치웠다.*


 영국 군인들이 약탈한 수백 점의 베닌 조각은 유럽과 미국의 박물관으로 팔려나갔다. 일찍이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이 수준 높은 조각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그 결과 베닌 조각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미국, 러시아, 스웨덴 등으로 흩어져 있다. 현재 약 868점의 베닌 조각이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 런던 영국박물관, 옥스퍼드 피트리버스 박물관, 빈 세계 박물관, 라이덴 민족학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민족학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스톡홀름 세계문화 박물관 등에 많게는 수백 점부터 적게는 수십 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 소장은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외 소장 베닌 조각의 규모는 사실 정확히 모르는 셈이다.


 베닌 조각 중에서 가장 많고 대표적인 황동 장식판은 매우 독특한 기록 문화유산이다. 크기는 A3 종이 정도이고, 황동에 부조로 베닌 왕국 오바의 치적을 새겼다. 오바는 정치와 종교를 모두 관장하는 최고 지도자를 말한다. 베닌 사람들은 왕실의 궁중의례와 외교, 교역, 전쟁 등의 주요 사건을 문자로 남기는 대신 황동판에 부조로 새겨 남겼던 것이다. 황동 부조판은 태피스트리처럼 왕궁 벽을 가득 메워 장식되어 있었다. 오바의 왕궁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네덜란드인은 “왕의 궁정은 장방형 회랑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 회랑의 면적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무역소 사무실만큼 크고, 천장에서 밑바닥까지 전쟁의 공적과 전투 장면을 새긴 구리판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매우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 댄 힉스, 『대약탈박물관: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나』 (책과함께, 2022), 70쪽.
**댄 힉스, 『대약탈박물관』, 322-323쪽.
***닐 맥그리거, 강미경 옮김, 『대영박물관과 BBC가 펴낸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파주: 다산북스, 2014), 543-544쪽.


 베닌 조각이 처음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고대 이집트나 유럽의 영향을 받은 조각이라는 등 억측이 난무했다. 유럽 문명과 접촉하기 이전의 아프리카에서 이토록 수준 높은 부조 기술과 기록 문화가 존재할 리 없다는 오만에서 나온 평가였다. 하지만 곧 베닌 조각은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서아프리카 전통의 예술임이 밝혀졌다. 또 베닌 조각에 재료로 쓰인 황동은 유럽산으로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통해 베닌으로 수입된 것이다. 유럽산 황동은 마닐라스(manillas)라 불리는 금속제 반지와 팔찌의 형태로 베닌산 상아와 금과 교환되었다. 유럽산 재료에 베닌 장인의 솜씨가 합쳐 탄생한 베닌 조각은 ‘아프리카는 원료의 생산지, 유럽은 예술의 생산지’라는 또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을 전복한다.*


 약탈 유물 베닌 조각의 반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의 뜨거운 이슈다. 영국박물관은 2018년 나이지리아에 베닌 조각을 대여 전시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약탈 유물을 반환이 아니라 대여하겠다는 발상에 위선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나이지리아가 이를 받아들이며 성사됐다. 2022년 여름에는 호니먼박물관이 소장 베닌 조각 72점을 반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호니먼박물관은 런던 동남부 포레스트힐에 있는 사립 인류학 박물관이다. 슈트르가르트 린덴 박물관 등 독일 박물관들도 반환 의사가 있고 협상 중에 있다고 밝혔다. 2021년 4월 독일 문화부 장관은 독일 박물관들이 소장한 베닌 조각을 장기적으로 나이지리아 정부에 반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약탈 유물 반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박물관들은 소위 ‘보편박물관(universal museum)’을 자임하는 런던 영국박물관, 옥스퍼드 피트리버스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파리 케브랑리미술관 같은 서구의 대형 박물관들이다. 약탈 유물을 계속 갖고있는 한 박물관은 식민주의 폭력의 결과물을 보유하고 전시한다는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보편’이라 칭하는 서구 박물관들은 ‘문화적 보호’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냥 두면 지붕도 제대로 없는 먼지 풀풀 날리는 황무지에 방치되었을 유물을 번듯한 박물관 건물 안에 고이 모셔놓고 전 세계 시민들이 그 가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공들인 서구 박물관들의 노력을 약탈과 폭력이라는 평가로 다 덮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변명의 말을 전면 부정할 수도 없기에 마음은 복잡해진다.


 하지만 방치되었던 유물을 소중히 보존하고 전시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베닌 조각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베닌 조각은 폐허에 방치되어 있던 잔존물이나 잔재가 아니었다. 베닌 조각은 처음부터 흩어진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물을 원산국의 맥락에서 뜯어내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한 건 바로 영국의 베닌 시티 공격과 학살과 약탈이었다. 그 결과 베닌 조각은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으로 흩어져 어디에 몇 점이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조차 어렵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피트리버스 박물관 큐레이터 댄 힉스(Dan Hicks)는 베닌 조각들이 흩어진 과정을 추적하고, 폭력적 약탈과 의도적 망각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네크로그라피(necrography)’라고 부르자고 주장한다. ‘네크로그라피’는 삶을 기록하는 ‘바이오그래피(biography)’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유물의 죽음의 기록을 말한다. 힉스는 박물관학에서 전개된 기존의 개념과 사고방식, 예컨대 유물의 이주(migration of objects), 유물의 생애사(biography of objects) 같은 개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약탈과 파괴의 책임 소재를 얼버무리고 폭력 행위를 모호하게 포장하는데 이런 개념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힉스는 베닌 조각의 약탈과 산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죽은 백인 남성’ 17명의 경력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로버트 올맨(Robert Allman, 1854~1917)이란 인물은 베닌 공격 당시 나이지리아 보호령 군의관이었고, 상당량의 약탈 유물을 소지하고 귀국했다. 그는 1953년 경매에 소더비 경매에 베닌 조각을 내놓았고, 신설 나이지리아 박물관은 이를 구매했다.***


 베닌 조각을 비롯한 약탈 유물을 반환하는 것의 의미는 유럽과 비유럽,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무기의 역할을 해왔던 박물관이 스스로 무기의 역할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물의 약탈사, 유물의 네크로그래피는 해당 유물 생산자들의 인권 유린의 역사다. 원산지로부터 뜯겨져 나와 타지의 낯선 박물관에 ‘원시예술’이나 ‘민속품’ 같은 생경한 이름을 달고 망명해 있는 유물들을 원산국으로 돌려주는 일은 베닌 왕국을 파괴하고 살아있는 베닌의 문명을 폐허로 만들고, 동시대 문명이 아니라 고고학의 영역으로 머나먼 과거의 시간대로 쫓아 보냈던 과정을 되짚고 되돌리는 것이다.


*닐 맥그리거, 『대영박물관과 BBC가 펴낸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544쪽.
**Philip Oltermann, “Germany first to hand back Benin bronzes looted by British,” The Guardian, April 30, 2021.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1/apr/30/germany-first-to-hand-back-benin-bronzes-looted-by-british?CMP=fb_gu&utm_medium=Social&utm_source=Facebook#Echobox=1619779467
***댄 힉스, 『대약탈박물관』 (책과함께, 2022), 209-210쪽.

Cast brass plaques from Benin City Nigeria, 16th Century, British Museum ⓒ 염운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