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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뷰렌 ‘아프리카박물관’에 가다(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2-07 17:38
조회
464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2022년 6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아프리카박물관(the Africa Museum)’에 갔다. 브뤼셀 근교 테르뷰렌에 있는 이곳으로 가려면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30분쯤 가야 한다. 트램이 시가지를 벗어나면 좁은 길 양옆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역에서 내려 숲길을 따라 테르뷰렌 공원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웅장한 건물의 박물관이 나온다. 이 박물관의 원래 이름은 ‘왕립중앙아프리카박물관(the Royal Museum for Central Africa)’이었다. 2018년 재개관하면서 ‘아프리카박물관’이 되었다. 2013년 문을 닫기 직전 처음 방문했을 때, 노골적으로 식민지 문명화 사명을 찬양하는 조각상들과 낡은 디오라마 전시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5년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마지막 남은 식민박물관’이라는 오명을 벗고, ‘탈식민화’를 시도한 결과가 현재의 아프리카박물관이다.



The Africa Museum ⓒ 염운옥


파리의 케브랑리미술관부터 런던 영국박물관과 옥스퍼드 피트리버스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는 아프리카 유물을 수집·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많다. 유럽이 수집 대상으로 삼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보여주는 곳들이다. 아프리카만을 대상으로 하는 박물관은 네덜란드에도 스위스에도 있다. 네덜란드 니메헨 아프리카박물관과 스위스 취리히 리트베리트 박물관이 그곳이다. ​​테르뷰렌의 아프리카박물관은 그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이다. 굳이 벨기에까지 가서 아프리카박물관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 박물관이 식민주의를 제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었고, 지금은 탈식민주의 실천의 곤경을 말해주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박물관이 자리 잡은 테르뷰렌 공원은 브라반트 공작의 사냥터였다. 귀족의 사유지에서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소유지가 되었던 곳이 이제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내려앉은 구름 탓에 한결 부드러워진 초여름 햇살 아래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즐기고, 달리기하는 시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게 빛났고, 나무 옆을 지날 때마다 풍겨오는 짙은 숲 냄새는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식민박물관이 어울리기나 하단 말인가?


하지만 멀리 보이는 박물관 건물을 향해 걸어가다가 만난 어떤 표지판은 이곳이 식민주의의 현장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중앙아프리카 콩고를 개인 식민지로 만들고 고무 채취를 위한 노예노동을 강제한 것으로 악명높은 레오폴드 2세는 1897년 브뤼셀 세계박람회 개최 용도로 현재의 아프리카박물관 건물을 건립했다. 레오폴드 2세는 파리의 쁘띠팔레(Petit Palais)를 설계한 건축가 샤를 지로(Charles Girault)에게 설계를 맡겼다. 파사드에는 그리스 신전처럼 열주를 세웠고, 중앙에는 로툰다가 있는 메인 홀을 배치한 왕궁식 건축물이다. 건물 전경이 반사되는 연못과 분수를 둘러싸고는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진다.


레오폴드 2세는 세계박람회를 위해 신축 전시장을 왕궁처럼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267명의 콩고인을 데려와 전시했다. 당시 유행하던 인간동물원(human zoo)의 벨기에 버전을 실현한 것이다. 인간전시에 동원된 콩고인들 중 7명이 이듬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 인간전시를 고발하고 7인의 사망자를 추념하기 위해 인간동물원이 있었던 자리에 명판을 세운 것은 2018년 재개관 때였다. 명판에는 사망자 7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1897 Human Zoos in Tervuren Commemoration of the Congolese victims ⓒ염운옥



1897 Human Zoos in Tervuren Commemoration of the Congolese victims (부분확대) ⓒ 염운옥


1910년 레오폴드 2세가 사망한 후 왕령 식민지는 벨기에령 콩고(the Belgian Kongo)가 되었고, 박람회장으로 썼던 이 건물은 식민지박물관이 되었다. 왕립중앙아프리카박물관 시절의 전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2013년 방문했을 때 노골적인 식민주의 서사를 그대로 내보이는 박물관이 21세기에도 존재하는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툰다 홀에는 콩고인을 원시인으로 묘사하는 동상과 아프리카인을 힘으로 제압하는 백인 동상이 있었고, 벽면에는 벨기에의 자애로운 문명화 사명으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부조가 가득했다. 상설전시도 아프리카 동물 박제와 디오라마가 지겹도록 이어지면서, 아프리카인은 없이 아프리카 유물만 전시되었고, 이로써 아프리카 역사는 ‘자연사’와 동일시되었다. ‘역사 없는 대륙 아프리카’라는 관념을 진심으로 구현한 전시 앞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악명높은 사례가 레오퍼드맨(Leopard Men)이었다. 표범 가죽을 쓰고 표범 발톱을 양손에 단 레오퍼드맨이 잠들어 있는 남자를 공격하는 모습의 조각상이다. 레오퍼드맨은 콩고 식민지인을 표범으로 재현함으로써 ‘흑인’을 ‘동물화’, ‘비인간화’한다.



The Leopard Men, 2013 ⓒ 염운옥


레오퍼드맨은 마블의 영화 〈블랙 팬서〉에 영감을 준 콩고의 남성 비밀결사의 주인공이다. ‘아뇨토(Anioto)’, ‘아뇨토 레오퍼드맨’이라고도 불리는 이 결사는 표범의 신비로운 힘과 상징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표범은 부족장의 권력과 마술의 힘을 상징했다. 전통적인 부족장지배 관념 속에서 부족장은 자신의 공동체를 보살피는 존재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적이나 같은 공동체 성원을 해칠 수 있는 오컬트적 권력을 소유한 자로 여겨졌다. 1910년대에서 1930년대 벨기에 식민지 시절 콩고에서 식민당국은 표범의 공격을 가장한 콩고인의 저항에 시달렸다. 표범의 움직임을 흉내 내 시신의 사지를 절단하고, 시신에 일부러 표범 발톱 자국을 남겼다. 시신의 머리나 팔을 없앰으로써 신원 확인을 불가능하게 훼손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야만의 관습이 아니라 지역주민을 장악하려는 비밀결사의 힘의 행사인 동시에 벨기에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으로 정치적 기능을 갖는 것이었다. 레오퍼드맨은 벨기에 제국의 종주권 팽창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확장하려는 남성 비밀결사의 투쟁 방식이었고, 벨기에는 동물적 폭력을 자행하는 식민지 야만인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조장하는데 활용했던 것이다.


2018년 12월 8일 재개관한 아프리카박물관의 전시는 얼마나 변했을까? 박물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리노베이션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탈식민화’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주 건물과 떨어진 곳에 출입구 건물을 따로 마련하고 박물관과 지하를 통해 연결되도록 했다. 상설전시는 전면 개편했다. 벨기에 연방 정부가 부담한 리노베이션 비용은 약 6천6백만 유로에 달했다. 탈식민화를 표방하면서 박물관 측은 자문기구 콤라프(Comité de Concertation Musée Royal de L’Afrique Centrale)를 구성했다. 박물관 큐레이터들과 벨기에 거주 콩고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가 참여한 콤라프는 탈식민화가 무엇인가를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2017년 협의는 결렬되고, 콩고인 디아스포라 참여자들은 침묵 속에 퇴장하고 말았다. 박물관 측은 노골적인 식민지 미화 서사를 중화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벨기에 식민지 역사를 조망하는 것으로 탈식민화를 이해했던 반면, 콩고인 커뮤니티는 식민지 학살과 유물 반환 문제를 거론했고, ‘반성없이 탈식민화 없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콤라프에 참여했던 콩고인 인사들이 개관식 행사에서 참여하긴 했으나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고, 더 급진적인 콩고인 활동가들은 항의하는 의미로 앞서 언급한 인간전시 희생자 추념 명판 앞에서 따로 기념식을 거행했다.



The Africa Museum New Entrance Building ⓒ 염운옥


지하 출입구로 들어가 화이트 큐브 형태의 긴 연결통로를 지나면 처음 만나는 공간에 과거 로툰다 홀에 있던 낯뜨거운 동상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악명높은 레어퍼드맨도 여기로 옮겨졌다. 로툰다 홀에 있던 문제의 부조는 천으로 가려놓았다. 부조는 정면에서 보면 천가리개에 가려지지만 측면에서 보면 그대로 다 보인다. 가려진 부조는 ‘식민주의의 신전’이었던 이 박물관을 ‘탈식민화’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시도였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무언가를 가리는 방식으로 ‘반성’과 ‘성찰’을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상설전시에서 콩고와 아프리카의 현재를 과거와 함께 전시한다는 원칙을 세워 따르고 있고, 악기, 무기, 가면, 의례용품 같은 과거 유물을 맥락 없이 유리 케이스에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용도와 의미를 현대 콩고인이 설명하는 내레이션 영상을 함께 배치한 것, 관객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시낭송 퍼포먼스가 열리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박물관이 내세운 탈식민화를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탈식민화는 ‘가리기’와 ‘균형 잡기’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Sculptures at the Introduction Gallery ⓒ 염운옥



Sculptures at the main rotunda hall ⓒ 염운옥



Birth, Rituals and Ceremonies Gallery ⓒ 염운옥


1) Vicky van Bockhaven, “Leopard-men of the Congo in Literature and Popular Imagination,”Tydskrif Vir Letterunde 46.1(2009), p. 91.

2)Jeremy Cyrier, “Putting a Paw on Power: Anioto Leopard Men of the Eastern Uplands, Belgian Congo, 1911-1936,” Ufahamu: A Journal of African Studies 28.2-3(2000), p. 75.

3)Hugo DeBlock, “The Africa Museum of Tervuren, Belgium: the Reopening of ‘the Last Colonial Museum in the World’: Issues on Decolonization and Repatriation,” Museum & Society 17.2(2019), pp. 272-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