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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수교 30주년에 대한 단상(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1-10 11:06
조회
417

석미화 / 평화활동가


 

새해가 밝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풍경은 언제나 회한과 기대가 교차한다. 해가 바뀌는 그 시간엔 눈썹이 하얗게 셀까봐-물론 그 말을 믿는 나이는 지났지만-왠지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늘 자정을 넘겨 잠을 청한다. 하긴 음력 섣달그믐날 밤 풍속이니 상관없겠다만. 밤을 밝히며 지난해에 미처 못한 일들을 꺼내 본다. 그중에는 주변에 감사 인사 드리기도 있고, 또 그해에 꼭 쓰겠다고 마음먹은 글쓰기도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미처 하지 못한 글쓰기 숙제 하나를 꺼내 보기로 한다. 비록 해를 넘겨 쓰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2022년 한베수교 30주년에 대한 짧은 생각을 이제야 긁적여 본다.


 


출처 - 아주경제


2022년은 한국과 베트남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지난 12월 초에는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이 최고 수준의 협력관계로 나갈 것을 합의하기도 했다. 수교일인 12월 22일 기념 리셉션과 정부 행사가 이어지며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협력과 교류가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거창했지만, 정작 ‘한베수교 30년’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려는 노력은 찾기 어려웠다.


 

1975년에 전쟁이 끝나고 한국은 베트남과의 교류를 끊지만 91년 소련 붕괴 후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북방정책’으로 92년 다시 수교를 맺는다. 나는 지난 활동 속에 수교와 베트남전쟁을 키워드로 과거 어떤 기사가 등장했는지 검색해 본 일이 있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 관계에 베트남전쟁과 수교가 상호 어떤 영향을 미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구였다. 수교는 한베 과거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수교 협상 테이블에 양국의 과거사가 주요 의제로 오른 것은 아니었다.


 

99년 이후 베트남전쟁은 한국군의 전쟁 범죄에 대한 기사가 자주 등장하지만 수교 전후 시기에는 달랐다. 라이따이한, 국군포로, 그리고 난민에 대한 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라이따이한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가난과 동정, 이산의 슬픔을 강조하는 신파가 많았다. 베트남에 한국군 생존 포로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수교가 이루어짐으로써 부산 ‘월남난민보호소’ 표정을 다룬 기사도 보였다. 보트피플로 한국에 들어온 남베트남인들이 수교 후 송환될 것을 걱정하는 기사였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고엽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장시간 고속도로를 점거한 사건이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양 국가 간 정상회담과 공식적인 외교 행보가 이어질 때마다 과거사 문제는 항상 언론에 등장했다.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은 한국과 베트남의 꾸준한 교류와 수교로 인한 공식외교 속 과거사에 대한 조명, 사회 민주화와 참전군인의 기억 투쟁이라는 복잡한 지형 속에서 그 흐름을 타고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사회적 성찰의 기회로 만든 것은 지속적인 후속 보도와 시민사회의 관심이었다.


 

그보다 앞선 90년 월간 <말>의 ‘민간인학살’ 보도로부터 불과 2년 후 한베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양국의 과거사가 폭넓게 조망되지 않은 점은 의아하면서도 아쉽다. 민주화 이후 참전군인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속에도 언론들은 베트남전쟁의 어두운 유산에 대해 외면했다. 참전군인의 기억투쟁은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소외되어 온 그간의 과정을 보상받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반사적으로 ‘보상’과 ‘명예’에 집중해왔다. 지금도 대한민국 방방곡곡 ‘월남참전기념탑’이 세워지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만든 공법단체 ‘월남참전자회’ 소속 참전군인 40여 명은 베트남을 방문해 한국과 베트남 전사자에 대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 58주년 월남참전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참전기념식’이라니... 종전과 더불어 평화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6.25도 전쟁 발발일로, 월남전도 전쟁 참전일로 기억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


 


출처 - 네이버블로그


수교 이후의 보도를 모니터하며 느낀 것은 한국과 베트남이 과거사에 대해 의식하고 있으나, 해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 적으로 만났던 양 국가 간에는 역사적 성찰 없이 ‘전장에서 시장으로’라는 실리적 입장만이 난무하다. 수교 30년, 시장과 경제, 외교, 명예를 강조하는 저마다의 ‘기념’ 사이에 양국의 과거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수교 30주년에 우리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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