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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통합(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51
조회
144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작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치러진 직후 라디오를 통해 행한 이명박 대통령 연설의 표제다. 그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어느 덧 노무현 서거 1주기가 다가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통합의 정치’를 필생의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밝혔던 ‘바보 노무현’도 실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는 분열을 조장하는 지역주의 정치의 종식, 민주주의 세력의 통합을 위해 끊임없는 결단에 임했다. 그런 결과, 그는 2000년 총선에서 보다 유리했던 서울의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 출마하는 선택을 하였다.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그러나 2년 후,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야권연대’가 오랜 시간 회자되었다. 위기 앞에서 늘 연대와 통합의 필요는 등장했다. 연대와 통합은 분명 이익의 희생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그 이익의 희생이 공평하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명분이다. 여기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갖춘 세력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고 이해를 뛰어넘는 명분으로 시대의 돌파구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이번 지방선거 야권연대 논의의 핵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 야권연대 논의의 관건은 민주당이 제대로 시대를 읽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미, 소위 ‘중앙’의 야권연대는 깨졌다. 그나마 몇몇 지역에서 그 불씨가 유지되고 있지만, 그 속내를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그 과정의 험난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곳에 민주당이 있을 것이다. 제주만 하더라도 어려운 사정 끝에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의 도지사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었지만, 여기에 민주당 후보는 있을 지언정 민주당은 사실상 없었다. 당초 사실상의 전략공천을 의도했던 유력후보가 도덕성을 문제 삼는 여론에 밀려났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그 유력후보에 대한 미련 앞에서 민주당의 시대정신도 밀려나 있었다. 결국 민주당의 후보가 단일 후보로 결정되었지만, 이 후보는 당분간 한나라당과 동시에 자신을 후보로 공천한 정당인 민주당과도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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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야권도지사 후보단일화 경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고희범 후보(가운데)가 단일후보로 결정되었다.
사진 출처 - 제주의소리


부자정책, 일방주의의 국정을 펴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합론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한나라당 정권을 넘어설 진짜 민주주의가 불안하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분열로 얼룩졌던 이 나라 민주주의 세력의 ‘회복’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의 희망을 만들어내는 ‘진실한 통합’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이든 국민참여당이든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자임한다면, 스스로 ‘바보’가 될 준비도 해야 한다. 바보는 당장의 이익 보다는 시대의 고통을 먼저 본다. 그 고통의 한복판에 뛰어 들어 진실함을 발휘할 때, 얼마간 ‘삐쳐있던’ 희망도 비로소 환하게 웃음을 주지 않을까?

바로 몇 시간 전 제주의 야권 도지사 단일후보 경선결과를 발표하는 행사를 치렀다. 이 자리에서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한 한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6월 항쟁때 다른 생각, 다른 의견, 다른 세력들이 모였지만 구호는 오직 하나였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우리가 바보가 되는 순간, 각기 다른 정당, 시민세력들이 외칠 구호는 단 하나다. ‘사람 사는 세상’, 그것이 아닐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할 반MB·반한나라당의 승리,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나의 구호를 손에 잡히는 희망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바보들의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 이 글을 쓴 고유기 위원장은 ‘제주희망정치(준)’의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하며, 최근 제주 야권연대를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