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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소비하는 사회(이광조 CBS PD)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57
조회
135

이광조/ CBS PD



가끔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편의점에 들를 때가 있다. 동네건 회사 근처건 새벽 시간엔 보통 10대 또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이 편의점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서 그네들을 마주할 때면 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어쩌다 술에 취해 함부로 반말 하고 행패를 부리는 손님을 보면 그런 불편한 마음이 더하다. 하지만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10대,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계산대 앞에 서서 일하며 얼마나 받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 퍼센트 인상된 시급 4,320원으로 결정됐다. 해마다 그렇듯이 노사, 공익위원 3자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지루한 논쟁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시급 4,320원이면 하루 8시간씩 한 달에 하루도 안 쉬고 꼬박 일할 경우 1,036,800원에 해당되는 액수다. 사람이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현실적으로는 한 달 꼬박 일해도 100만원이 안 되는 돈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인상률을 봤을 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 인상률에도 못 미친다.

노동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임금의 하한선을 법적으로 정하는 최저임금. 최저임금은 애초부터 노동인구 중에서도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제도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는 이 최저임금의 가장 중요한 적용대상이 10대,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들이다. 편의점, 주유소, 각종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 우리 주변에는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 우리의 아들, 딸, 동생들이 도처에 널렸다. 80년대 중반 대학 주변의 아르바이트 시급이 1천원에서 많이 주는 곳은 1,500원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25년 사이에 기껏 세배 정도 오른 건가. 그에 비해 당시 사립대학 등록금이 60만원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대학등록금은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8배까지 오른 셈이다. 국민소득도 늘어나고 민주화도 되고 선진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최저임금은 왜 이리 안 오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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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적은 최저임금 기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 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은 1만 4,869개로 이는 2007년에 비해 3배나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점검 업체 2만5,505개 중 거의 60퍼센트에 이르는 업체들이 최저임금을 위반한 것이다. 이 통계 속에 얼마나 많은 우리 청소년들의 눈물과 한숨, 분노가 섞여있을까.

더구나 영세한 자영업자가 아니라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조차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면 할 말을 잊게 된다. 청년권익단체인 청년 유니온이 지난 5월 전국 6개 지역 427개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4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8퍼센트가 2010년 기준 최저임금인 4,110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으며, 편의점별로는 훼미리마트의 73.3퍼센트, GS25의 62.9퍼센트가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편의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가 아니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이 그 밑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는 하한선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지 딱 그만큼을 주라는 게 아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10대,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고 밤낮 없이 아무 때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실제 임금은 그보다 훨씬 높아야 하는 게 상식에 맞을 것이다. 선진국 치고 우리처럼 하루 24시간 어딜 가든 편의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라는 없지만 그나마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이 우리의 2배가 넘고 심야시간에는 더 많은 임금을 가산해 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청소년들의 최저임금 문제는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가족의 소중함, 공동체의 가치, 어른의 책무를 강조하는 보수라면 부모세대와 우리사회가 보호해야할 청소년들을 이렇게 착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장사치가 아니라면 훼미리마트나 GS25 같은 재벌그룹 편의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 편의점은 최저임금을 지킨다는 윤리강령부터 마련하고 편의점마다 이를 지킨다는 서약을 받고 인증마크라도 붙여라. 그런 다음 10대, 20대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될 수 있도록 시급을 현실화하라. 최저임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정도는 줘야 된다는 사회적 합의이고 이런 합의는 영세업체에나 해당되지 재벌그룹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체인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편의점 출입구 옆에는 커다란 모니터에서 하루 종일 광고영상이 나온다. 카라, 소녀시대, FT 아일랜드, 빅뱅... 화려하게 차려 입은 10대 아이돌 그룹들과 창백한 얼굴의 10대 아르바이트생. 무심코 지나치지만 그 극명한 대비에 가끔 쓴웃음이 난다. 자식세대, 청소년들을 이렇게 착취하고 소비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자식들을 잡아먹었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크로노스가 머릿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