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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를 위한 변명(안수찬 한겨레21 기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56
조회
630

안수찬/ 한겨레21 기자



변명은 옹색하고 비겁하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한겨레에 대한 옹색하고 비겁한 글을 쓰려고 한다. ‘놈현 관장사’ 운운하여 파문을 일으킨 <한겨레> ‘직설’ 코너(이하 ‘관장사 직설’)가 나로 하여금 한겨레를 변명하게 만들었다. 변명을 하려면, 사과부터 해야 한다. 사과 없는 변명은 적반하장이 될 터인데, 나는 도리어 매를 드는 도둑이 되어볼 용기까진 없다. 언론은 ‘언어 정치’를 한다. ‘언어 상품’을 판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한겨레>의 ‘관장사 직설’은 순진한 생각에 기초한 잘못된 언어 정치였고, 소비자의 수준을 낮춰본 실패한 언어 상품이었다. 한국의 시민 또는 소비자는 마땅히 이를 비판할 수 있고, 거부할 수 있다. 심지어 불매(절독)를 다른 이에게 종용할 수도 있다. 그것이 시민·소비자 민주주의다. 그 앞에서 <한겨레>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소비자·시민 앞에 생산자·언론이 할 도리가 그것 말고는 별로 없다.

1997년 가을, 한겨레신문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내 마음은 완전히 푸근했다. 당시 대표이사부터 편집국장, 사회부장, 사회부차장, 경찰팀장에 이르는 ‘위계상 상급자’ 모두 넓은 의미에서 운동권 출신이었다. 도도한 면면들은 70년대 민청학련부터 90년대 학생운동 정파까지 두루 포괄하고 있었다. 알고 보면 모두 ‘왕년에 한 자락씩 한’ 인물이었다. “이 정도면 인생 맡겨도 되겠다” 생각했다. 한겨레가 운동권 집합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와 달리 ‘운동권 출신도’ 많이 들어와 있다. 운동권의 폐해가 적지 않다. 운동권 출신 가운데 사회에 해악을 끼친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신의 안위가 아니라 세계와 사회를 고민하며 명분과 가치를 추구했던 작풍·태도·관점은 매우 소중하다. 그렇게 살아온 이는 그렇지 않았던 이와 삶이 다르다. 그렇게 각자의 청춘을 보내며 당대를 살아낸 쟁쟁한 선배들이 있어 나는 기분이 좋았다.

푸근한 마음을 더욱 혹하게 만든 두 번째는 민주주의였다. 1989년 창간이래, 한겨레는 대표이사와 편집국장을 선거로 뽑아왔다. 구체적인 선거제도는 변화를 거듭했지만, 주주·사원·기자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관철시키려는 최초의 구상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선거를 하면 여러 후보들이 나선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구상한다. 유권자들이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며 개입한다. 2년 또는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그런 선거 과정에서 한겨레는 ‘집단적인 허물벗기’를 한다. 예컨대 다음 대표이사·편집국장 선거 때는 이번의 ‘관장사 직설’ 파문이 반드시 도마에 오를 것이다. 주주·사원·기자들은 이번 사태를 분석하고 논쟁하면서 새 리더에게 이리저리 요구할 것이다.

선거가 있으면 일상적 민주주의도 작동하기 마련이다. 한겨레는 사내 여러 매체를 통해 이런저런 분란이 항상 많다. 늘 말이 많아 소란스럽다. 이번 일도 한겨레의 일상적 민주주의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거추장스럽고 소모적이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방안’을 내놓는데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그러나 ‘최악의 오류’를 피하는데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겨레는 민주주의를 통해 최악을 피해 왔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장사’를 해왔다. 한겨레가 한국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자 거의 유일한 ‘민주주의 기업’이라고 나는 믿는다. 기업은 생존과 확장을 목표 삼는다. 생존과 확장의 방식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면서 그 결과 민주주의에 기여하자는,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고 한겨레는 22년을 지냈다.

그러나 최초의 놀라움과 환희를 빼고 나면, 입사 이후 10여년은 크고 작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실망의 대부분은 나를 환호하게 했던 바로 그 두 가지에서 비롯했다. 한겨레 사람들은 저마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잘못을 좀체 인정하지 않는다. 귀가 두껍다. 한겨레는 민주주의 조직이다. 그래서 오류조차 민주적 동의를 얻어 관성화된다. 안 변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겨레에 몸과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은 다시 한 번 믿음 때문이다. 우리는 오류를 극복할 만큼 치열하다는 믿음, 그리고 민주주의는 오류조차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는 믿음이다. 믿음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질 것이다.

창간 이후 90년대 후반까지 한겨레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었던 논쟁은 ‘DJ 문제’였다. 이제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도 아련하겠지만, 90년대 후반까지 한겨레는 ‘DJ 편향’ 문제로 늘 시끄러웠다. 실제로 한겨레 사람들 가운데는 88년, 92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당선이 유일하고도 가장 현실적인 ‘민주적 진전’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가슴 속의 신념이야 양심의 문제지만, 그런 믿음을 기사에 관철시키면 공론의 문제가 된다. 한겨레는 공론장에 가끔 그런 믿음을 드러냈다. 이를 비판했던 이들은 “언론은 공정·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논지를 주로 펼쳤다.

나는 ‘DJ 편향’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언론이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반대한다. 언론도 편을 들 수 있다. 편을 들어야 옳은 경우도 있다. 다만 언론은 ‘언어 정치’를 하는 기관이므로 입장과 관점을 표현할 때, 정교하고 현명해야 한다. 언론의 정치적 입장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 한국에선 발달돼 있지 않다. 한겨레 역시 이 방면에서 무능했다. 한겨레의 민주주의는 내부의 입장을 모을 만큼 진화하지 못했고, 이를 드러내는 언어는 정제되지 않고 어설펐다. 김대중의 정계복귀 직후인 1995년 7월, 어느 논설위원이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열흘 뒤, 김대중의 정계복귀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칼럼이 다른 논설위원의 이름으로 실렸다. 그 시절 기사와 칼럼을 보면 매양 ‘내부 충돌’의 형국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진보정당 문제가 한겨레를 흔들었다. 2002년 가을, 몇몇 기자들이 진보정당 후원비를 내고 있다 하여 논란이 됐다.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사규를 위반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무려 6개월 동안 게시판·노보 등에서 토론이 이어지다가 2003년 1월 오직 이 문제를 판가름 지으려고 사원총회까지 열었다. 당시 투표율이 75%였다. 한겨레에선 ‘대단히 낮은’ 투표율인데, 이 문제를 투표에 붙여 ‘강제’하려는 것 자체를 비판한 젊은 사원들이 사원총회를 ‘보이콧’한 결과였다. 당시 논쟁에선 기자들이 정치권에 몸담는 일,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 시민단체 후원 문제 등까지 두루 등장했다.

결국 지난 20년에 걸쳐 한겨레는 ‘잠정 합의’ 같은 것을 형성했다. 어느 정치세력과도 개인 또는 집단의 차원에서 밀착하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한겨레 사람들은 어떤 정치세력도 신뢰하지 않는다. 한겨레도 조직인지라 ‘조직 논리’가 있다. 시장·국가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들 정치세력이 한겨레에 도움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 정치세력에 가담하는 ‘개인으로서의 시민’들은 본원적으로 한겨레의 바탕이 됐다. 이 기묘한 딜레마가 한겨레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한겨레는 세력이 아니라 시민이 만들었는데, 그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정치세력에 긴박되어 한겨레를 소비하고, 한겨레는 그 세력들을 불신하거나 적어도 거리를 둔다. 이를 어찌 해결할 것인가.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부의 출범 시기는 한겨레의 ‘입장’이 나름의 진일보를 형성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특정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런 신념을 가진 개인이야 지금도 있지만, 적어도 공론의 차원에서는 이를 드러내지 않게 됐다. 이를 통해 한겨레는 민주 정부조차 맹렬히 비판할 수 있는 내부 동력을 얻었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혼란을 거친 한겨레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거리두기와 비판하기’에 있어 별 거리낌이 없었다. 당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다수의 (특히 젊은) 기자들은 그를 돌려보내지 않은 간부진에게 크게 항의했다. 오겠다는 정치인을 돌려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도 한겨레의 ‘정치적 감성’은 그걸 마뜩치 않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의 민주주의는 ‘최선’을 마련하진 못했다. 거리를 두고 비판하는 것 말고, 일관된 맥락과 입장을 정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바로 그것이 노무현 정부 시기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한겨레에 대한 독자·시민의 실망과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한겨레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나. 그렇다고 답하는 이도, 아니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한겨레 안에서도 그 물음은 복잡하게 가지를 친다. 왜 비판적이었나. 무엇을 근거로 어떤 경우에 어떻게 비판했나. 이라크 파병은 대통령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한미FTA 체결을 반대하는 것은 근본주의적 몽상에 불과한 것인가.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거대 언론사 총수를 주미 대사에 임명하는 것은 또 다른 권언유착이 아닌가. 사회 안정망이 붕괴한 것은 정책 방향의 잘못이었나, 보수 세력의 저항 때문이었나. 한겨레는 정책을 비판했어야 했나, 보수 세력을 비판했어야 했나. 정책 비판이 우선인가, 보수 세력 비판이 우선인가.

이런 물음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언론, 특히 신문은 대단히 ‘정치적인 상품’이 돼버렸다.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중앙일보>를 제치고 <조선일보>가 여전히 ‘비교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가 ‘더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더 이데올로기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국 신문은 근대 이후 끊임없이 정치 구조, 특히 엘리트 권력 구조에 개입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넓은 의미에서 ‘민주화 운동’ 역시 그 시도 가운데 하나이며, 한겨레 역시 정치 구조에 대한 (계몽적) 개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정치 (시장) 구조에 밀착한 상품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예민하고도 정확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비자가 선택하는 상품이라면 그 상품의 기능 역시 정치적으로 민감해야 한다. <한겨레>의 입장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것은 <한겨레>가 발 딛고 선 시장이 바로 정치적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정치가 작동할 때 흥하고, 정치가 사라진 곳에서 쇠락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계속 ‘관성화’된다면 그렇다.

사소한 정치적 실수가 매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상황이 지긋지긋하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치적 논쟁에 매체의 미래를 맡기는 게 신물 난다면, 그 시장을 바꾸면 된다. 정치 구조에 작동하는 대신 시민사회에 소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면 된다. 권력에 대한 개입과 조정의 소명의식을 조금 줄이고, 시민사회의 저변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옮겨가면 된다. 그런데 한겨레의 민주주의는 그 진화에 속도를 붙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주의가 온전히 작동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졌다. 민주적 소양을 갖춘 구성원도 줄어들고 있다. 한겨레의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고비용 저효율’의 방식이 아닌지 의구심도 확산되고 있다.

그 과도기에서 여러 기자들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만들어진 <한겨레>의 ‘직설’은 권력지향적인 정치구조의 맥을 시민사회의 언어로 짚어보려는 시도였다. 그 담당 편집자는 과거 <한겨레21>에서 ‘쾌도난담’ 란을 만들어 사회 주요 쟁점에 대한 거리낌 없는 도발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아마도 <한겨레>의 쾌도난담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언어 전략’에 문제가 있나. 아니다. 감히 말하자면 이런 시도가 계속 되어야 한다. ‘저들만의 리그’로 변해가고 있는 정치·정책의 언어를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저잣거리의 담론으로 바꿔야, 한겨레도 살고 한국 시민사회도 산다. 기왕 정치 상품을 만들 것이라면, 국회의원만 읽는 기사 말고 시민들이 기꺼이 읽는 기사를 써야 한다. 정치담론의 민주화야말로 ‘시민 민주주의’의 고갱이다. 적어도 이 점에 관한한 정치인 노무현의 구상과 ‘직설’ 편집자의 구상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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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사 직설’ 파문은 어떤 면에서 한겨레의 인과응보다. 의도가 아닌 결과를 두고 정치권력을
비판했던 한겨레는 마찬가지의 논리로 비판당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이번에는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지나치게 폄훼하고 까불었다. 적어도 그렇게 비쳤다. 언어는 생산자의 의도가 아니라, 청취자의 이해가 더 중요하다. 그것까지 고려하여 ‘발화’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글을 쓰는 자는 전체 텍스트의 맥락을 이해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글을 읽는 이는 그 파편만 떼어 내어 전체를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놈현 관장사’를 뽑아내어 전체를 읽으라고 유혹했다. 잘못된 언어 전략이었다. 그것은 시민의 언어가 아니라 천민의 언어였다. 그러니 잘못이고, 그게 싫으므로 더 이상 한겨레를 소비하지 않겠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결함 있는 상품을 만들었으면 사과하고 리콜하는 게 상도의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 그리고 노무현 정부를 넘어서자는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능하면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정치인의 ‘의도’를 모두 배려하고 이해해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정치권력은 정책, 그리고 그 정책을 설명하는 언어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결코 이명박 대통령의 성실한 일상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이명박 정부는 그 정책의 수준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의 사망 이후 그의 의도와 심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긴 했지만, 그걸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하여 언론의 비판에 결함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 적힌 구차한 변명을 모두 이해한 다음에야 한겨레를 절독할 수 있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관장사 직설’ 파문은 어떤 면에서 한겨레의 인과응보다. 의도가 아닌 결과를 두고 정치권력을 비판했던 한겨레는 마찬가지의 논리로 비판당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겨레를 둘러싼 범 진보진영이 ‘공동체적 연대’에서 ‘합리적 비판과 견제’의 시기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그것을 가슴 아프게 인정한다. 이제 한겨레는 더 이상 의도와 취지를 내세워 이 신문을 구독해달라고 요청할 수 없는 국면에 다다르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연대의 정신이 사라진 땅 위에서 우리 모두 과연 무사할까. 과정이 아닌 결과를 평가하는 언어로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하여 이제와 돌이킬 수는 없다. 이 게임을 한겨레가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분명히 있다.

남는 문제가 있다. 좋은 언론을 기대하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언론은 무엇인가. 좋은 언론은 ‘우리끼리’ 모여 또 하나 만들면 생겨나는 것인가. 언론이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고자 할 때, 무엇에 대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정치적 상품에 대한 정치적 항의를 하는 정치적 소비자가 그에 대한 답도 함께 제기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겨레에 남겨진 화두는 더욱 중대하다. 스스로 좋은 언론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핍박받으며 외롭게 지냈으며 스스로 성취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다시 오는 와중에도 줄기차게 이 자리를 지켰다는 자기 연민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거 혹시, 오만함 아닌가. 20여년의 역정을 충분히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피해의식은 아닌가. 그래도 좋을 만큼 충분히 현명한가. 그렇게 내놓는 상품은 충분히 지혜로운가. 어정쩡하게 정치에 발을 걸치고, 정치적 언어를 쏟아내면서, 정치적 비판은 그저 귀찮기만 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종류의 정치는 도대체 어디다 써먹을 작정인가. 진정한 자기정립없이 극좌로부터 극우에 이르는 저 정치적 독자들에게 이 신문을 봐야 하는 이유를 뭐라 설명할 것인가. 그런 정치 시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또 그 대안은 충분히 마련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면, ‘관장사 직설’에 대한 한겨레의 1면 사과문은 좀 더 멋있었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한겨레는 노무현 정부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사회·경제구조를 저잣거리 필부들의 언어로 말하는 언론이다. ’관장사 직설’ 파문은 그 필요성을 더 절절히 깨닫게 했다. 정말이지 민주당·국참당·진보정당에 속박당하지 않고, 시비 잡힐 멍청한 짓 하지 않고, 권력·정당·시장으로부터 판판이 배신당하는 시민들에게 꼬박꼬박 읽혀 그 삶에 행복이 되는 그런 언론이 필요하다. 내 책상 옆에는 ‘근조’라고 적힌 검정 리본이 2년째 매달려 있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노무현·김일성·김정일에 이르기까지 거리낌 없는 정치언어를 열정적이면서도 유쾌하고 친근하게 시민들과 나누는 언론을 만들자고, 2년 전 추모 대열에 줄지어 서있을 때 결심했다. 그는 나의 꿈에 박수를 쳐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를 추모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