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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국경선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53
조회
160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이번 학기에는 벨기에 루뱅(Leuven) 대학으로 매주 한 차례 출장강의를 다니는 것 외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필자가 체류하는 네덜란드를 떠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유럽공동체(EU)에 속한 나라 국민들은 마치 이웃집 방문하듯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도버 해협 해저터널로 영국을 오가는 경우 등), 국경지점의 길을 막고 출입국 검사와 패스포트에 확인도장을 찍는 귀찮고 권위적인 절차 없이 '딴 나라'를 왕래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분명히 낯설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젊은 세대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떤다고 흉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느끼는 놀라움과 부러움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여권을 발급받는 것이 쉽지 않았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특권은 공무원과 유학생 등의 일부에게만 허용이 되었었다. 나라 바깥나들이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나들기는 또 얼마나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어려운가. 캐나다에 놀러갔다가 미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다는 미국 유학생 이야기, 딴 나라 국경선 너머로 무심코(?) 한 걸음 내 딛었다가 억류되어 국제뉴스거리가 된 철없는 모험가들, 목숨 걸고 멕시코 국경과 카리브 해를 건너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위험한 일상은 현재진행형이다.

EU 국가들 사이의 자유통행에 관한 필자의 유난스런 과잉반응은, 아마도, 내가 '분단시대'가 잉태했던 망탈리테(mentalité, 집단적 정신자세)의 포로였다는 부끄러운 고백에 다름이 아니리라. 주지하듯이,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공산권을 지칭했던 철/죽/의 장막 같은 냉전개념들은 이제는 낡은 유물이 되었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남북한은 비무장지대(DMZ)라는 국경선 아닌 국경선 혹은 '비 경계선(non-border)'을 사이에 두고 오늘도 첨예하게 대처하고 있다. 한반도의 허리를 날카로운 경계선 삼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시장경제와 사회통제, 냉전과 세계화라는 대조적인 가치관과 이데올로기가 갈등, 경쟁,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단순히 정치지리상으로만 분리된 남북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강요 혹은 동반하는 편협한 세계관과 이데올로기적 올바름에 갇혀버린 '장기적 분단시대'의 산물이자 증인이다. 이미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는 분단시대가 나를 포함한 동시대인들에게 주입하여 숙성시킨 대표적인 시대정신 중의 하나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경계를 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경구로 요약된다. '동백림 사건',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 미(비)전향 장기수, 탈북자/새터민 등으로 표상되는 일련의 사건과 이슈들은 금지된 국경선과 사상적 틈바구니를 넘나드는 것은 자기 파괴적이며 동시에 반국가·반민족적인 행위라고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훈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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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은, 쉽게 말하자면, "분단시대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전문용어로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심어놓은 '내 마음 속의 국경선'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세계화'라는 화려한 깃발에 발맞춰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관광, 시찰, 방랑하고 있는 선후배님과 동료 그리고 젊은이들이여. 몸은 국경바깥의 이국적인 골목을 헤매지만 그대가 지참한 세상읽기의 렌즈는 분단시대의 흑백논리로 혹시 때 묻고 얼룩지지 않았는가. (증명)사진에 포착되는 멋진 건물과 맛있는 음식, 다른 피부색깔의 남녀를 우리 편과 나쁜 편, 문명적 서양과 야만적 동양,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호전적인 이슬람과 사랑의 기독교, 혹은 도회적 청결함과 시골적인 남루함 등이라는 (교육된!) 엉터리 이중 잣대를 적용하여 평가하고 감상하지 않으시길.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정녕 붕괴시켜야 할 경계선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지리적인 국경(선)만이 아니다. 특정한 정치문화적인 색깔과 세계관으로 오염된 내 마음 속의 국경선이야말로 진정한 소통과 상호이해를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건방진 학문용어를 빌려 다시 강조하자면, 이런 성격을 갖는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국경선 즉 '메타-경계선'(meta-border, Michel Foucher/2007)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질서와 평화의 도래를 위해 우리가 힘써 허물어야할 공동의 장벽인 것이다.

메타국경 혹은 내 마음 속의 국경선을 과감하게 뛰어넘지 못한다면 역사는 (희극적으로?) 되풀이 된다는 점을 결론삼아 덧붙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마음속에 그어진 국경선을 발판삼아 고전적인 '냉전의 추억'과 폭력적인 흑백논리가 과거로부터 부활하여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오호라, 시대착오적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지난 1-2년 사이 한반도라는 이름의 메타-경계선 내부에서 전개되는 시대상황에 대한 필자의 관찰과 우려가 삼류 역사가의 괜한 헛발질로 마감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