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죽음의 카지노 고개(유정배 사단법인 강원살림 상임이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7:28
조회
146

유정배/ 사단법인 강원살림 이사



때론 형 같고 친구 같기도 했던 여섯 살 터울 막내 외삼촌을 이른 봄, 아직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좁은 두 평 땅에 묻고 내려오는 길에는 아득한 고갯길이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그가 무시로 드나들던 ‘강원랜드’도 길목부터 가파르게 쳐든 포장길을 올라야 출입할 수 있다.

1989년, 석탄 캐 먹고 살던 탄광지역에 ‘폐광’이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지나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던 이 지역에는 하나 둘 탄광이 사라졌고 지역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광산에서 탄 캐먹던 사람들도 또, 그들을 캐먹고 살던 사람들도 남부여대 보따리를 싸들고 일자리를 찾아 원주로, 안산으로, 울산으로 떠나갔다. 44만에 이르던 고한, 사북, 황지, 장성 지역 인구가 15만 명으로 반쪽 나버렸다.

인기척 하나 없이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다닥다닥 붙어있는 탄광촌 사택의 을씨년스러움만큼이나, 남아있는 이들은 위기의식에 몸서리쳤고 두말 필요 없이 ‘지역 살리기 투쟁’에 나서도록 했다. 밥집 사장, 주유소 사장, 술집 사장 들은 물론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위장취업자’들까지 ‘공동투쟁위원회’에 참가했다. 그들은 정부에 핵 폐기장, 교도소 유치, 폐광지역 특별법 등을 요구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국인 전용 카지노’ 유치가 결정 되고 폐광지역 사람들은 이제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2000년 카지노 개장 뒤, 정선군의 총부가가치가 2007년까지 120% 성장했고, 같은 기간 정선군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이 12.2%이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놓고 이르는 것 이다. 카지노가 들어선 뒤, 고한 사북지역의 일자리 창출 지표 (1999년 대비, 사업체 종사자 수 39.6% 증가)나 관광객 수 (2000년 대비, 65.4% 증가)를 들여다보면 폐광 지역 살리기 투쟁에 나섰던 이 지역 사람들의 꿈은 실현 된 것이나 다름없다.

때 국 줄줄 흐르던 중심지역은 검은 탄가루 옷을 벗어던지고 울긋불긋한 네온으로 갈아입었다. 카지노 가는 길은 금빛 ‘전당사’들로 가득 찼다. 늘 검뎅이로 질척이던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었다. 하루 꼬박 걸리던 서울 길도 이제는 세 시간이면 당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폐광지역 주민들의 ‘지역 살리기 투쟁’은 몰락해 가는 지역을 살린 모범 사례로 알려졌다.

이제, 검은 막장의 땅은 행복 넘치는 낙원으로 탈출 한 걸까 ?

SSI_20110318185742_V.jpg
강원랜드가 위치해 있는 정선군 사북읍내가 환하게 불을 밝힌 전당포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하지만 강원랜드 매출이 뛸수록, 카지노 가는 길가에 ‘전당사’가 즐비 해 질수록, 고급 여관과 술집이 가득 할수록 자살하는 이는 늘어나고 땅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살기는 한결 팍팍해져 갔다. 석탄가루 마시면서 귀에 딱지 앉도록 듣던 ‘죽음의 땅’이라는 이름은 에너지 산업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이었지만, ‘잭팟’을 노리며 꾸역꾸역 모여드는 이들이 모진 목숨 버리는 죽음의 도시라는 오명은 오히려 멍울이 되었다. ‘갑을병’ 3교대로 막장 드나들던 때는, 힘들고 삭막하긴 했지만 정 붙이며 사는 고향이기도 했다. 산뜻한 카지노가 들어선 뒤, 껍데기는 번쩍거리지만 알맹이는 시나브로 비어가는 듯 한 허전함에 이것이 ‘지역발전’인가 하는 상심을 떨치기 쉽지 않다. 폐광지역특별법을 몇 년 연장하긴 했으나 유일한 내국인 전용 카지노가 언제까지 존속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불안한 미래를 일치단결해서 이겨내자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강원랜드만 바라보며 각축 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대박신화를 믿고 배팅하는 승부사가 된 걸까 ?

지금, 카지노 가는 길목 길목에는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어린 야생화 들이 몸을 펼치고 있다. 죽음의 길이 돼버린 고갯길 좌우, 빽빽하게 ‘전당사’들이 이어져 있는 산허리 곳곳에 바람꽃, 복수초, 노루귀, 진달래 들이 지천이다.

언 땅 녹인 야생초들이 카지노가 은거한 산을 뒤덮듯이, 초고속 성장의 그늘을 비집고 이제 막 움 트기 시작한 협동과 호혜의 경제가 꿈틀거리고 있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카지노라는 극단의 선택을 한 이들이, 다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돕고 일어서는 협동의 지역경제를 보듬어 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걸음이 쌓여야 죽음의 카지노 고개를 넘을지 모르지만, 막내 외삼촌의 허망한 죽음도 씻김굿 받은 망자의 혼처럼 씻겨 내려 갈 게다. 그들이 한 땀 한 땀 일궈 가는 새로운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