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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개혁에 대한 회의(황문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6-20 09:25
조회
439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근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에서 언급된 “허망한 생각”에 이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성취’가 있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검찰국가의 탄생〉의 저자 이춘재가 제기한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에 진심이었나?’라는 질문에 수긍하는 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찰을 넘어 경찰, 국정원 등의 개혁에서도 과연 ‘진심’이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들기 때문이다.


출처 - MBC뉴스


 

우선 경찰의 경우를 살펴보자. 검경수사권조정에 따라 확대·강화된 경찰권 통제방안으로 수사경찰에 대한 행정경찰의 관여를 차단하고자 국가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개별 사건 수사에 대한 경찰청장의 구체적 지휘·감독권을 제한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수사지휘의 가장 기초가 되는 ‘수사보고’는 원칙적으로 금지 또는 제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청장은 수사보고를 통해 간접적인 수사지휘가 가능하고, 인사·조직·예산 등을 통해 국가수사본부를 장악할 수 있다. 게다가 경찰청장 이외 시도경찰청장, 경찰서장 등 행정경찰의 수사관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국가수사본부를 통해 수사경찰에 대한 경찰관서장의 (부당한) 개입을 차단한다는 당초 취지가 퇴색된 반면, 종래 치안감급 수사국장이 치안정감급 국가수사본부장으로 한 단계 격상되는 등 경찰조직이 확대되었다. 상명하복의 원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수사)경찰조직의 국가수사본부장이 경찰수사권을 특정 정치이념이나 정치집단의 영향력에 따라 편파적으로 행사하는 등 궤도를 일탈할 경우의 폐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검경수사권조정의 반대편에서는 수사-기소분리에 이르지 못한채 ‘적당히 검경을 고려한 타협의 산물’에 머물러 검찰권을 견제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른바 검수완박을 부랴부랴 추진한 배경이다. 법을 집행할 행정부가 공감하지 않는 입법의 결과는 현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대로다.


 

지역실정에 맞는 치안서비스 제공과 경찰권의 지역적 분산을 도모한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사무와 구분되는 생활안전・여성보호・교통 등 자치경찰사무만을 구분해놓고 이를 관장하는 자치경찰위원회를 설치해놓았을 뿐이다. 경찰법에서는 자치경찰위원회에 자치경찰사무와 관련하여 시도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감독권과 자치경찰사무를 담당하는 경찰에 대한 인사권 등을 부여하고 있다. 겉으로는 ‘과도한 권한’을 보유한 기관이어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이지만, 실상은 ‘대서방’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오히려 자치경찰위원회는 부족한 (국가)경찰예산을 지자체에서 확보·조달해주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경찰은 자치경찰제 시행을 계기로 전국 시도경찰청에 17개 경무관급 자치경찰부장을, 자치경찰위원회에 전국적으로 17개 총경 직급을 신설하였다. 자치경찰제가 경찰권을 분산한 것이 아니라 탄탄한 경찰관료권력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한 셈이다.


 

2022년 1월에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개정되어 살인 또는 상해·폭행의 죄, 아동학대범죄 등으로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 발생의 우려가 명백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관이 그 위해를 예방·진압하는 등의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일정한 요건 하에 경찰관의 직무수행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해주고 있다. 경찰청 인권위원회에서조차 면책 조항이 신설되면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에 따른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속도감있게 법개정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최근 경찰청장이 캡사이신을 활용한 집회 해산 등 (불법)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 방침과 더불어 진압 과정에서의 문제에 대해 ‘적극 면책’을 자신감있게 약속한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행안부 경찰국 설치 논란이 있었을 때, 일선 경찰은 경찰의 중립성 훼손을 우려하면서 국가경찰위원회의 역할 및 위상을 강화하는 실질화를 도모했다. (국가)경찰위원회의 실질화 방안은 이미 2017년 11월에도 제시되었다. 국무총리 소속 경찰위원회가 총경 이상의 승진 인사 및 경무관 이상의 보직 인사에 대해 경찰청장이 제출한 인사안의 심의・의결 및 제청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러한 실질화 방안도 경찰청이 요구한 인사안 등을 경찰위원회가 수동적으로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에 불과하여, 대서방 수준의 자치경찰위원회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와 국회는 이마저도 내팽개치고, ‘국가’라는 글자만 추가하여 ‘국가경찰위원회’로 명칭만을 변경했다. 실질화는 없고 “경찰이 언제부터 중립을 지켰죠?”(2022. 8. 5.자 한겨레)라는 질문만 남겼다. 정작 중립성 훼손 우려를 야기했던 행안부 경찰국은 “그럼 행안부가 아닌 청와대가 통제하면 되느냐”(2022. 7. 1.자 중앙일보)는 반문으로 당당하게 출범하였다.


 

누구나 알 만한 최근 5년 사이 벌어진 (경찰)개혁을 둘러싼 파노라마적 장면들이다. 경찰의 확대로 귀결되었다. 여기서 잠깐 개혁에 대한 집권자의 진심 여부를 떠나 과연 경찰 등 권력기관은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가, 아니 중립적일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보자.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는 선출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권의 철학에 맞춰 법을 집행하면서 행정력을 발휘한다. 그 책임은 (대통령·국회의원 등) 선거로 진다. 대통령의 국정방침에 맞추는 이른바 ‘코드 맞추기’를 한쪽 면에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2015년 11월 14일 발생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사인규명 및 책임자 사과에 대해 ‘나 몰라라’하던 당시 경찰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또 달라진 새 정부에서는 경찰의 집회 대응에 다시 ‘강경 대응, 캡사이신, 곤봉’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또 달라졌다. 권력에 따라 춤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민주적 통제 장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주창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다음 장면이 말해준다. 2022년 5월 10일 출범한 새 정부는 같은달 24일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 계급인 치안정감 7명 중 5명을 대거 교체하면서 2021년 12월에 승진한 윤희근 치안감을 치안정감으로 승진시켰다. 윤희근 치안정감은 이후 2022년 6월 21일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 및 그에 대한 책임으로 6월 27일 김창룡 경찰청장 사퇴, 그리고 8월 1일 행안부 경찰국 출범의 과정을 거쳐 8월 10일 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새 정부에 코드를 맞출 인물을 찾기 위해 한편으론 과격한, 다른 한편으론 과감한 인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수뇌부의 정치적 중립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현장 경찰에게 (특별)승진의 당근이 이례적으로 과감하게 주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주적 통제 장치가 작동하기 어려운 한계를 의미한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역사적 평가 또는 재근대화? 솔직하고 전략적인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