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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고백 문화를 경계한다.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11:16
조회
104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건을 계기로 ‘사상 검증 논란’이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인 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인 역량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위기적인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비례대표 부정 선거’를 계기로 기본 인권 중 하나인 사상의 자유를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허용 혹은 제한할 수 있는가가 정치사회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이 의제가 공적으로 설립된 것은 MBC의 <100분 토론>에서였다. 시민논객 중 한 사람이 패널로 나온 통합민주당의 ‘구 당권파’에 속하는 이상규 당시 지역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상규 씨가 그 물음 자체가 사상 검증의 의도가 함축되어 있고 사상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상대 진영의 패널인 진중권 씨가 이상규 씨에 대해 ‘일반 개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정치인은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정확히 밝혀 투표권을 지닌 시민들이 나름의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이른바 대표적인 진보 논객으로 손꼽히는 인물이 텔레비전 생방송 현장에서 정치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과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어떻게 받아들이고 혹은 어떻게 비판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과연 현실적으로 어떤 사회정치적인 귀결들이 나올 것인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직감적으로 <100분 토론>의 이 일련의 과정을 목격하면서 우리 사회가 대단히 위험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의원들이나 고위 관료들에게 불법적인 재산 형성을 방지하고 검증하기 위해 재산 등록을 하듯이, 만약 이들의 사상 형성의 과정에 대해 일일이 고백하도록 하여 ‘사상 등록’을 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유엔인권선언과는 달리 우리나라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유엔인권선언 제18조는 “모든 사람은 사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자신의 종교와 신념을 바꿀 자유를 포함하며, 혼자이건 다른 사람들과 공동적으로건 공적이건 사적이건 간에 교육, 관습, 예배 및 의식에 있어서 자신의 종교 혹은 신념을 표현할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되어 있고, 제19조에는 “모든 사람은 견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방해받지 않고 견해를 주장할 자유를 포함하며, 어떤 매체건 제한 없이 정보와 생각들을 찾고 받고 나누는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되어 있다.(강조 표시는 필자가)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이와 달리 제19조에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를, 그리고 제20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리고 제21조의 ①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그리고 ②항에서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제37조 ②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물론 헌법에 정확하게 명기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헌법 제37조 ①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고 했을 때, 열거되지 않은 자유와 권리에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이러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하는 조항은 전혀 없다. 모르긴 하지만, 이에 관련된 법률도 없을 것이고, 만약 그런 법률이 있다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 위헌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중에서 중요한 기준 한 가지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얼마만큼 보장 확대해 왔는가일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헌법 제37조 ②항에서 특별한 경우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한편으로 보면 일종의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다. 이 조항이 독소조항이 되지 않으려면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단서를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현저히 침해되는 경우가 아닌 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라는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상의 자유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기 자신의 내면적인 존재의 자율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이고, 각자의 이러한 내면적인 존재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해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내지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라는 주장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대단히 긴요하다. <100분 토론> 이후 계속 통합진보당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飛火)가 되면서 이미 벌써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 사이에 국회의원의 사상 검증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문제가 상당히 심중한 사회정치적인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진중권 씨의 “일반 국민 개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이라는 주장을 “일반 국민 개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치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라는 그의 주장을 “국민 개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자가 바로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자신의 사상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국민 개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보호할 수 없다.”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진중권 씨가 그런 취지로 말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저 앞에서 말한 것을 원용해서 말하면,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이 국회의원 후보자가 지닌 사상이 자신의 사상과 일치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자신의 사상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진중권 씨의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게재되어 있다. 첫째, 사상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하는 일종의 관념론적인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다. 둘째, 투표권을 행사하는 국민들이 이러한 관념론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셋째, 무엇보다도 투표를 포함한 정치적인 행위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행동에 의거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윤리적인 판단의 대상도 당사자가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했는가인데, 정치적 · 법적 판단의 대상은 말할 것도 없다. 사상의 자유는 한편으로 객관적으로 드러난 행동 외에 내면적인 주관적 상태를 대상으로 삼아 법적 · 정치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20조 ②항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에 근거한 것이다. 종교만큼 이른바 사상성이 강한 것은 없지만, 누구든지 간에 종교적인 사상을 근거로 정치적인 판단이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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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북논란, 양심의 자유 논쟁으로'
지난 22일 방송된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어디로’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치인의 사상을 검증해서 정치 영역에서 배제하려고 하는 것은 그 정치인이 향후 정치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가를 미리 예측해서 그런 행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싹 자체를 잘라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책략은 특히 대적하고 있는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에 더없이 좋은 수단인 것처럼 비치면서 파당의 정치를 일삼는 자들에게는 대단히 현혹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인 역량이 얼마나 협소하며 한편으로 파시즘적인 폭력성을 지닌 것인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상의 자유는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내면적인 자율적 존재를 떠받치는 핵심이기에 이를 미연에 검증하고자 하는 것은 아예 개인성 자체를 삭제해버리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실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김일성이라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주체사상을 인민들의 뼛속깊이 새겨 예외 없이 일사 분란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고 그 결과 심지어 ‘김일성 민족’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잘 모르긴 하지만,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전 인민에 대해 국가적으로 사상 검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역사적인 조건을 제시할지라도 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 변명은 북한 사회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진중권 씨의 ‘정치인의 사상적 자유 불가론’은 이같이 말도 안 되는 체제 자체를 동조 내지는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 짐작된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슬기로운 판단을 했어야 하지 않은가 싶다. 좁게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대북 불안감을 한층 고조시켜 왜곡된 형태로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수구 보수 진영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넓게는 자칫 우리 사회 전체를 내면적인 사상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파시즘적인 고백 사회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누군가가 나와 특히 첨예한 부분에 대해 사상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러한 불편함을 견디면서 서로의 입장에 따른 객관적인 결과를 최대한 조율해 내고자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나와 사상이 다른 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아예 정치적인 영역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자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정치 사상적인 입장이 일정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인 행위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논쟁을 불러일으킬 때, 왜 그런 정치적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그야말로 합리적으로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엄격하게 말하면 사상의 자유가 실현될 수 없다. 사상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의 잠재태라면,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물론 여기에는 현실의 권력 관계와 그 결과를 염두에 둔 여러 고려가 따를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되어 있지 않고, 자신의 사상적 이질성을 합리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고백하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폭력적이다. 그러고 보면, <피로 사회>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가 부정성을 바탕으로 한 억압과 배제의 규율사회가 아니라 긍정성을 바탕으로 한 성과사회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고 하는 재독 학자 한병철 씨의 주장은 적어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집단 무의식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우리사회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글의 모두에서 나는 현재 통합진보당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현실 정치에 불어 닥치고 있는 ‘사상 검증 논란’의 상황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인 역량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위기적인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사상적인 차원에서만큼은 다양한 이질성을 수용함으로써 누구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대신 그에 따른 정치적 행동의 결과에 있어서는 그러한 이질적인 입장들이 지닌 나름의 장점을 합리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만약 그 반대로 현재의 상황을 빌미로 파시즘적인 고백 문화가 사회적으로 크게 똬리를 틀게 된다면 비극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69조에 나와 있는 대통령 취임 선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내용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미래지향적으로 해석하여 다양하면서도 균형 잡힌 합리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모든 정치인들이 노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