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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불유(生而不有)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04
조회
243

박현도/ 종교학자




생지(生之), 축지(畜之), 생이불유(生而不有).

“낳고 기르지만 소유하지 않는다.”

요즘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노자의 말이다. 천지는 만물을 낳고 기르지만 소유하지 않는데, 우리네 인간은 자기 힘이 들어간 것은 모두 소유하려고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은 하되 소유할 수는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내 뜻대로 해주길 바라는 욕심이 가득하다. 그래서 노자의 명언을 애써 되뇌며 마음공부를 한다.

시야를 넓혀 우리나라를 보면 소유욕이 불러온 비극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위정자들이 눈에 띈다. 마치 나라가 자기 것인 양 분탕질을 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에 헌법을 고쳐 제멋대로 권력을 쥐고 흔든 적이 얼마나 많았나. 독재를 하지 않았다면 국부의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를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 개헌과 부정선거로 몰락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스스로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되는 것으로 민정이양 약속을 지키는 꼼수를 쓰면서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고, 이어 삼선개헌, 유신개헌으로 초절정독재를 구가하였다. 마치 대한민국이 정희민국인 것처럼 말이다. 전두환은 12.12라는 “위대한 구국의 결단”으로 정권을 잡아 군사정권을 연장하였다. 모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일념 아래 국가를 자신의 것으로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디 이들 뿐이랴. 단일화라는 국민의 열망을 뒤로한 채 나아니면 안된다고 고집부리다 김영삼, 김대중은 1987년 정권교체 절호의 기회를 날리고 대권을 노태우에게 넘겼다.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이번 대선도 어쩌면 야권이 이와 비슷한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단일화를 약속했고 결국 문재인으로 야권후보 단일화가 되긴 했지만, 토론, 여론조사를 둘러 싼 양측의 신경전, 안철수의 출마포기 선언 등 단일화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누가 보기에도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서로 양보하기를 바라면서 질질 끌다가 지지자들의 가슴만 졸이고 실망감만 키웠다. 모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당 후보이기에 자신의 거취를 사사로이 결정하지 못한다면서 일방적 양보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당 후보니 당 후보 아닌 안철수가 결단해 달라’는 이야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말이다. 국민이 원하는 단일화를 한다면서도 단일화를 열망하는 야권지지 국민보다 당과 당원이 먼저다. 안철수의 모습도 보기에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국민 여러분, 이제 단일 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서 저를 꾸짖어주시고 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주십시오”라는 안철수의 성명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말이 효과를 반감한다.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루어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 몇 번을 곱씹어 보아도 문재인이 새 정치를 못할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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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렇다고 여권 후보인 박근혜는 더 나을까. 나는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박 후보는 미혼의 몸으로 국가의 일을 책임졌고 국가와 결혼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 말을 듣고 섬뜩했다. 미혼이라 육아와 같은 기혼자의 삶에 대해 모른다고 한 야당의 공격에 맞서면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박 후보의 부친을 생각하면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이 그냥 애국적인 말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정권유지를 위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인권탄압을 자행한 아버지로부터 국가관을 배웠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국가 사랑을 넘어서 소유욕을 부릴까 무섭다.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는 내 것이니까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는 좋은 말만 하라고 강요할까 두렵다. 나에게 나쁜 말하는 사람은 반국가적 범죄를 짓는 매국노라고 일방적으로 몰아 부칠까 무섭다. 그래서 국민에게 봉사할 마지막 기회라는 박근혜의 말이 가슴에 잘 와 닿지 않는다. 국민이 국가의 다른 말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할 때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하더니 막상 지금은 개헌하자고 하는 모습과 겹쳐 신뢰하기가 참 아리송하다.

중동의 독재자들도 알고 보면 모두 국가에 대한 사랑이 넘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대단한 애국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비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국가에 대한 공격, 즉 반국가범죄로 간주하였다. 나는 애국심이 넘치는 지도자들이 그래서 무섭다. 그들에게 국가는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사는 나라다. 그러니 반대자들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기나 했을까? 그러니 그런 나라에 인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후진적인 중동국가와는 질적으로 다르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아니 솔직히 우리나라가 그런 비민주국가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나라라는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현실정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말을 하면 “꼴통”, “빨갱이”라는 경멸어가 튀어나오는 현실이 두려워 모두들 입을 꾹 다무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그러다보니 모두 알아서들 심각하게 자기검열을 한다. 그러다보니 다들 알아서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생각은 괄호 안에 꼭꼭 담아 둔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렇게 비판정신이 죽은 나라에서 창의적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창의력이 없는 나라는 베끼기는 잘해도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세계를 이끌 수는 없다. 무바라크, 아사드를 보고 비판하기 전에 우리 과거를 먼저 돌아보자. 경제발전이 지도자만의 위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 때문에 그들의 폭압적 인권탄압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용인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보자.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만 있다면 인권 같은 것은 잠시 없어도 좋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면 지도자들이 국가를 개인소유로 여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그런 나라가 아니길 바란다.

12월 19일 우리가 뽑을 새로운 대통령은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살 냄새 나는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국가를 사랑하지 않고 국민을 존경하는 사람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데아를 쫓는 스토커는 정말 무서우니까. 그동안 그런 지도자는 많아도 정말 너~~~무 많았으니까! 그리고 존경하는 국민이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까지 포함한 모든 국민이길 바란다. 국민을 빙자해서 사사건건 ‘뻘짓’하는 지도자를 이제는 정말이지 그만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낳고 기르십시오. 낳았으되 가지려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 이루나 거기 기대려 하지 마십시오. 지도자가 되어도 지배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를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 합니다.” (도덕경 10장. 오강남 역,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