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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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올 여름,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만나요(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4:59
조회
258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폭염이 쏟아집니다.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우려나” 해보지만, 생각해보면 매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마음을 먹습니다. 올 여름은 그 자체가 휴가인 듯 마음이라도 여유롭게 지내자고. 조급하거나 성내지 말고, 찬찬히 음악도 즐겨가면서. 따지고 보면 바쁘다고 하지만, 자투리 시간 하릴 없이 인터넷 돌아다니느니 그 시간 소중히 책 한 줄 담는 것이 그 자체로 휴식이 될 테니. 지리산 풍경을 담아내거나 악다구니 세상, 그래도 평심 흐트러짐 없이 물 흐르듯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는 산문이나 시집이면 더욱 적격일 것입니다.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아시나요?

물 강(江), 물 정(汀), 강정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이 마을은 옛날부터 물이 풍부했습니다. 강정천과 악근천이라는 한라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마을이 이 곳이지요. 제주에서 논농사가 행해지던 몇 안 되는 지역 중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서귀포 시내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 대부분의 먹는 물을 이곳이 책임지고 있지요. 다른 지역보다 일조량도 많아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꽃을 재배하며, 특히 이 곳 감귤은 그 맛이 달기로 유명합니다.

와 보시면 알겠지만, 아름다운 경관에 놀라실 겁니다. 강정마을은 다섯 개의 보호구역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하고, 해양생태계보전지역이기도 하지요. 마을 바로 앞에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서귀포 앞 바다 세 개의 섬 중 ‘범섬’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바다 속에는, 저도 영상으로만 봤지만 화려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산호 군락이 장관을 이룹니다. 세계에서도 드문 경우라 합니다.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지요. 그 뿐 입니까? 바다로 흐르는 하천에는 은빛 은어들이 춤을 추며 놀지요. 서건도라는 아주 작은 섬도 마을과 마주하고 있는데, 하루 몇 번씩 물길이 열려 자근자근 까맣고 동그란 바닷 돌을 밟으며 이 섬에 갈 수 있어요. 마치 마을의 정원 같은 소담스런 곳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또 어떻구요? 15년 동안 유원지 지구로 묶여 재산권행사 제대로 못해도 큰 소리 별로 안내고 조용했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죠. 그래서 낙후됐다는 말도 듣지만, 그렇다고 몇 년 전 이 곳에 골프장 짓는다고 했을 때 반겨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에 나서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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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함을 본뜬 최병수 화백의 설치 작품. 이지스함을 통해 범섬이 보인다.
기지건설 예정지가 포함된 서귀포 앞바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 이 짙은 그림자는 가혹하기만 합니다. 요즘 마을 사람들은 차로도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이 곳 제주시에 와서 제주도청과 도의회 앞에서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1인 시위를 합니다. 1인 시위... 대체로 사람들 왕래 많은 시간 골라 한 두 시간 하는 게 보통인데, 이 곳 사람들은 순박한 건지, 절박한 건지 그냥 하루 종일 하고 만답니다. 그것도 두 달 동안 한다고 합니다.

절박함이 맞을 겁니다. 바로 1년이 지난, 작년 5월 이 마을은 느닷없이 첨단무기로 무장한 해군의 전략기지 건설예정지가 된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벌써 6년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후보지로 지목된 제주의 마을, 가는 곳 마다 격렬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당국은 작년에 마치 무슨 작전이라도 펼치듯 여론조사라는 수단을 동원해 기지건설을 확정했고, 이 곳 강정마을이 그 날로 예정지가 되어 버린 것이죠. 기지건설 예정지로 확정된 후 마을 사람들은 놀란 가슴만 쓸어내릴 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몇 몇 분들이 나서기 시작하고, 주민들이 밤마다 마을회관에 모이면서부터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게 되고, 강정마을이 기지건설 예정지로 결정된 것이 부당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에는 몇 번의 곡절과 좌절 끝에 주민투표를 통해 마을 사람들 모두의 의사를 비로소 분명하게 모아내게 되었던 거죠.

그럼에도 정부나 군은 아랑곳 하지 않더군요. 일단 결정했으니 따라오라는 것뿐입니다. 국가안보를 위한 시설을 한다면서, 정작 해당 마을의 주민의사는 이렇게 무시되다니요. 과연 주민의 지지와 협력 없는 안보가 성립 가능한 것이기나 한 것인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국가의 결정이지만, 그 자체로 주민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월하기만 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 심사가 요즘 말이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강정마을이 기지건설 예정지가 된 것이 왜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 반면, 마을의 의견은 얼마나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이었는지 충분히 알리는 일에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부 당국도 일부 인정하는 듯 했고, 국회도 이를 알아주어 잘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면 그럴 만도 하지요. 새 정부가 들어서더니 강정마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는 커녕, 날로 깊어가는 마을 사람들 간의 일부 찬성주민과의 갈등에도 나 몰라라 하는 겁니다. 하긴 이 정부 뭐 다른데 신경 쓸 새 없지요. 제 발등 불끄기 바쁘니. 제주도 당국도 결정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만 고수하고 있지요, 해군은 해군대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밀어붙이죠, 그러니 마을 사람들 어떻겠습니까? 이 마을에 기지건설반대 대책위원장 일을 하는 양홍찬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동네 반장 한 번 해본 일 없는 조용한 분이신데, 요즘 이 분 입에서조차 격한 말도 자주 나옵니다. 이 분이 묵상하듯 눈을 아래로 내리고 생각에 들 때, 저는 옛날 시애틀 추장과 대추리 김지태 이장과 더불어 이 분이 시공을 넘어 만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강정마을의 여여함 그 자체를 꼭 빼닮은 분이죠. 마을 사람들과 얘기 나누면서 더 기막힌 건 뭔지 아십니까? 그래도 비폭력, 평화적으로 버텨오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한다는 거죠. 자기 생존이 걸린 문제가 터졌는데, 갈수록 태산인데 이런 말이 나옵니까? 그 동안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지건설을 막아내든, 설령 못 막아낸다 해도,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민주적이고 오로지 비폭력적으로 상대해 나가자 이런 말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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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강동균 마을회장과 양홍찬 공동위원장 등이
지난 7월 7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리 운동단체들이 생명평화 마을이라 이름 붙이기 이전부터 강정마을은 이미 생명과 평화의 마을이었던 겁니다. 생명과 평화 마을,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올 여름 축제가 벌어집니다. 무슨 노래공연, 시낭송도 하고 알토란같은 강정마을 속속 속살을 더듬으며 생명의 기운을 느끼는 걷기행사도 하구요, 어느 날인가는 돼지도 잡고, 한 판 난장도 벌인답니다. 때로는 진중하게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리고 지킬지 토론회도 연답니다. 이 기운들을 모아 강정마을 사람들은 한여름 땡볕도 마다않고 제주도 전역 순례길에 나설 작정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생명의 기운, 난장의 기운을 안고 집과 길의 호흡을 열어 세상과 통하기 위한 불끈 저항의 대열을 만들기도 할 계획입니다.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 지나 겨울로 가는 여정만큼이나 마을의 이 문제가 더 큰 시련에 들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은 지금 축제준비에 한창입니다. 무엇보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합니다. 마을회관에 인터넷 선도 더 깔고, 이부자리 준비하고, 샤워시설도 만들고 있습니다. 오시는 분들 맞이하기 위한 환영의 인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술하는 분들은 이 마을에서 벽화도 그리고, 미술품도 설치하고 퍼포먼스도 한답니다. 글 쓰는 분들은 시낭송회도 준비하고, 종교인들은 평화미사와 기도회 준비는 물론, 순례길 인도에도 함께한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시민단체 사람들은 모든 여름 계획을 이 곳 강정마을에서 준비합니다. 수련회도 하고 모꼬지도 하고, 때론 마을 사람들과 축구도 한 판 하려고 합니다. 생태관광하시는 분들은 마을과 인근마을 길 돌며 안내하고 이 마을의 빛을 보여주는 일을 합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모두가 강정마을에서 올 여름나기에 나선 거죠.

당신은 어떻습니까? 올 여름 강정마을에 한 번 안 오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