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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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54
조회
144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불안의 검은 피로 쓴
젊음의 대자보들이
거리에 나붙는다

저런 철없는 망나니들이 있나
일일이 조사 보고토록!
충성 경쟁 드높은 목소리 손발들이 분주하다

머리에 맨 붉은 정의의 띠들
가족들의 생계 눈에 선연한데도
더 이상 배부른 자들의 놀음에 장단을 맞출 수 없다는
철도노조 파업의 거룩한 포효

개 같은 새끼들
누가 내린 명령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먹던 그릇 발로 차 뒤집어엎고
다 잡아들여!
사방에서 들리는 몽둥이 호루라기 소리 요란하다

부정 선거 방조하는 대통령은 사퇴하라
현실을 비켜난 광야의 곳곳에서
무거운 침묵의 돌들이 입을 열어
순교의 각오를 외친다

저 미친 늙은 놈의 선동을 봤나
뼈 속 깊이 새겨진 종북주의의 유전자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으니
이 어쩌면 좋으냐!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 편 궁민(窮民)이 있지 않습니까.

수 만 킬로볼트의 전기에 감전될 수 없다
성스러운 생명의 날카로운 몸들
부르짖는 아우성이 넘쳐나더니
아뿔싸! 결국 사람들이 제 스스로의 목숨마저 끊는구나

저런 바보 멍청이들이 있나
누가 죽으라고 했나! 살라고 했지
언제 적 빨갱이 놀음을 아직도 하다니, 뭐 하고 있어!
배후를 더욱 철저히 조사해!
지당하신 말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자칫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기댄 노예로 자랄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 다함께 백년대계
참 된 교육을 천직으로 삼아 움직이는 전국교사노동조합

종북 빨갱이 새끼들이 무슨 교육을 한다는 거야
아니, 눈엣 가시를 빼지 못하고 뭐하는 거야!
어떻게든 해체시켜!
옙! 좌우당간 없애버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다
검찰총장, 특별수사팀장
국정원 부정한 대선 개입을 향한
발본색원의 기미, 정의의 한 줄기 실마리 보인다 했더니

아니, 저 놈 누구 애비야?
아니, 저 놈 지가 누구 새끼인지 모르나?
찍어내 버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혹시 후폭풍이 일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 들어봤어!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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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우씨(고대 경영학과)가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학내 게시판에 붙여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 오후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학우들의 연이은 지지하는
대자보들이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과거가 돌아오고 있다.
잔인한 기억의 무덤이 열리고
독재자의 망령,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도열한 군복 단추들이 광채를 뽐내는 환상이 어른거린다

“나를 살해한 너희들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지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리라.”
독재자의 망령이
아귀의 입을 열고서
원한과 복수를 명했던가

왜 갑자기 어둠이 내렸을까
왜 민주 자유의 대낮이 불현듯 착각이었을까

우리 모두들
푹 팬 눈, 웅크린 돌이 되어
터질 듯 짓눌리는 가슴팍
겨우 두 손으로 거머쥐고서

독재타도! 독재타도!
수도 없이 외치고 또 외치고
나무토막처럼 퍽퍽 위대하게
넘어지고 잘리고
천신만고 수 십 년
민주 자유의 대낮을 열었다고 했건만

아뿔싸!
또 다시 푹 팬 눈, 흥건한 불안
미래에서 과거로 뒤집혀
내리 덮쳐누르는
망령의 시간이라니

아름다운 낱말들마저 빼앗겨
하나하나 추악해지고

모두의 생명을 보호하겠노라고
모두의 삶을 의미 있게 하겠노라고
모두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겠노라고
새빨간 거짓말
그들 빨간 옷을 입은 이유였구나

그 새빨간 거짓말 말고는
그 누구도 주지 않은 권력이 아닌가
불법으로 빼앗아 간 권력이 아닌가
용케도 권력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그
손들의 뼈마디

돌아오고 있다
아니 벌써 돌아왔다
확인사살의 총성으로 무장한
망령이 머리 위를 선회하며 날고 있다

움푹 팬 눈을 부릅뜨고서
망령을 내려다보아야 한다

불안의 검은 피로 쓴
젊은이들의 대자보
정확한 인식, 분노의 붉은 피
한 두 번이던가
더없는 민주 자유의 무기로 되살아나

망령을 짓눌러
원한과 복수, 어둠의 목소리를 짓눌러
망령에 씐 분주한 수족들을 함께 묶어
심연의 무덤으로 내려 보내야 한다

허위의 입술과 혀도
위장의 옷차림과 미소도
뒤집어진 허구의 시간과 함께
저 심연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민주 자유의 시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