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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이메일 대담에 대한 소회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44
조회
209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지난 10월 8일 한겨레신문의 <싱크탱크 광장> 란에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이, “세계적인 석학”으로서 지난 7월에 서울에서 열린 ‘정전협정 60돌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하기도 했던 미셀 초서도브스키 교수와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관련해서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김보근 소장의 말처럼 우리가 사회 내부에서 알지 못해서 발언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자기 검열에 의해 함부로 발언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초서도브스키 교수가 명쾌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 내용들을 최대한 왜곡하지 않고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하는 선에서 그의 견해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논의의 편의상 ①, ② 등의 원문자로 표기한다.)
① 소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의회 안의 정적을 대상으로 한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복수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적인 정부라고 표현할 수 없다. ‘민주라는 가면을 쓴 전체주의’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과거의 정치, 즉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② 나는 이석기 의원이 한 말을 3만7천명의 미군이 남한 땅에 주둔하고 있고 한국군은 미군의 명령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③ 반역이라는 말은 한국 사람의 이익에 반하여 외국 권력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정말 반역을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전작권 환수를 위한 책임도 의무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④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지도자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사회 구성원에게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석기의 관점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는 그의 관점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사상의 자유 역시 현대사회의 절대적인 기초다.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하는 남한 사회는 표현의 자유도 사상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 것 같다.

⑤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근본적인 권리를 침해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상․하원 의원 중 누구도 정부를 비판했다고 체포되지 않는다.

⑥ 미국은 북한을 핵무기로 50년 이상 위협해왔다. 미국은 2013년 5월 현재 5113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필연적으로 한반도 전역을 황폐화할 것이다.

⑦ 남한에서 국가보안법으로써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북한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까지 범죄 행위가 된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오직 부정적인 것들만 얘기하는 것이 허용된다. 국가보안법은 민주 사회에 걸맞지 않으며 명백하게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라고 생각한다.

⑧ 국가보안법은 자기검열의 형태로 박 대통령에게 반대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위축 효과’를 발휘한다. 이석기 의원 관련자에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진보적 요소에 대해 국정원이 의도한 효과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미군의 주둔을 받아들이고, 역사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결과 진보진영마저 이석기 의원 사건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활용하는 체제는 진실로 전체주의적 시스템이다.

⑨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라는 이석기 의원의 말은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반도의 한국인들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추정한다. 미군 주둔은 1997년 미국 정부의 지시에 의해 한국 재무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가 해임되도록 하는 데 배경으로 작동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면, ‘우리가 정치적 • 군사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라고 한 것은 남한이 미군을 배제한 독자적인 무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곁들여 말하면, 한국이 미국한테서 무기를 사는 것은 한국인의 세금으로 미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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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과 관련된 소위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세계적 석학인 미셸 초서도브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명예교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건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남한 사회가
민주 사회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정전협정 60돌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나는 그동안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한겨레신문이 한동안 균형 잡힌 시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와중에 이 같은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견해를 한 면 전체를 할애해서 ‘대서특필’한 것이다. 다행이라 여긴다. 초서도브스키 교수 나름의 시각으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의 일단을 제시함으로써 물밑에 숨겨져 있는 핵심 주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건은 그저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사실이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의미가 부가되어야 한다. 의미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일련의 사실을 일정하게 묶어 ‘사건’으로, 더욱이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최고도로 폭과 깊이를 갖춘 해석을 필요로 한다. 물론 사법적으로는 관련되는 현행법을 바탕으로 법적인 해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법적인 해석을 넘어서서 해석의 기반을 향해 자꾸 치고 내려가면, 맨 밑바닥에서 한 인간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들이 부각된다. 그 조건은 해석학에서 말하는 체험-표현-이해의 순조로운 사회적 순환이다.

나는 초서도브스키 교수가 위에 요약한 ④와 ⑦의 발언, 즉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발언을 이 같은 인간됨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된 ⑦과 ⑧의 그의 발언은 우리 남한의 현행법인 국가보안법이 남한 사회의 구성원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을 전혀 만족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철폐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나 역시 이러한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입장에 동의한다. 심지어 사상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 않은 우리의 헌법도 수정하여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이석기 사건’은 수 천 년 간 한반도에 거주해 온 우리의 역사가 당면하고 있는 질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말처럼, 수만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전시에 미국의 4성 장군이 우리 한국군 전체의 실질적인 최고사령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역사적인 상황을 질곡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민족과 국가를 위한 최선책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이고 그러한 생각을 공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그런 생각과 표현을 얼마든지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생각과 표현도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초서도브스키 교수가 주장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한이 당면한 역사를 질곡으로 볼 수도 있음에 대한 근거로서 ⑥과 ⑨의 일부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그 외 ②와 ⑨로 요약된, 이석기 의원의 발언들에 대한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소프트한 방향’으로의 해석은 그 나름의 입장에 의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그의 해석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현재 나의 미흡한 관련 정보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심지어 ‘이석기 중심의 정치집단’이 철학자 크리스테바가 말하는바 ‘기이한 믿음’에 해당하는 반(反)믿음의 맹목적 추종을 수행하는 집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초서도브스키의 이석기 의원의 발언들에 대한 소프트한 해석이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와 그에 따른 여러 심각한 부작용을 연출하고 있는 현대의 세계사적인 맥락에 입각해서 폭넓게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사회 정치적인 성찰과 실천을 수행하는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역사의 시간이 우리의 각종 오염된 생각들을 정리해서 씻어낼 수 있는 날이 도래하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지금 우리의 대처와 반응이, 특히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해서 얼마나 성마르고 사회 정치적인 관용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허약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현실에 대한 이해의 협애함을 역이용한 권력 지향적인 세력들이 얼마나 방약무인의 패도를 휘둘렀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북쪽은 물론이고 한반도를 둘러싸고서 자행되는바,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무시․강탈하는 그 어떤 세력도 용납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셀 초서도브스키의 이번 이메일 대담은 그 나름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이름으로 한국사회의 현행의 역사를 점검하도록 독려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이 어떻게든 실천적으로 반응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