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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정치의 얽힘(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18 09:33
조회
376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출처 - 뉴스핌


1. 과학적 사실의 정치적인 오염


일본 핵 오염수 해양 방출 문제를 놓고서 ‘과학적’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가만히 그 담론을 살펴보면, 방출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도 방출에 관한 판단과 실행이 진정으로 과학에 근거한다면, 방출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논쟁의 핵심은 (1) ALPS 즉 다핵종제거장치가 과연 핵 오염수의 모든 독성을 제대로 정화할 수 있는가? (2) 그 여부를 과연 과학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가? (3) 그 여부의 과학적인 확증을 과연 IAEA 즉 국제원자력기구가 수행할 수 있는가? 등이다.


해양 방출을 강행하려는 일본을 위시한 IAEA의 입장은 이러한 논쟁점들에 관해 모두 긍정적이다. 말하자면, 이 논쟁점들에 대해 과학적인 사실로써 ‘그렇다’라고 입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해양 방출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 논쟁점들에 관해 모두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말하자면, 과학적인 검증을 위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절차가 객관적으로 공개된 바가 없고, 결과의 보고 과정에 의문점들이 많아 위 논쟁점들에 대해 ‘그렇다’라고 확언할 수 있는 ‘과학적인 사실’이 확보된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 ‘과학적 사실’이 지닌 실천적인 위력을 인정하고 있다. 즉, 진정 과학적으로 사실이 그러하다면, 핵 오염수가 충분히 정화되었으니 해양에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다고 할지라도 해양에 방출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육지에서 처리해도 아무 상관이 없지 않으냐, 하는 반대하는 쪽의 대안 제시는 해양에 방출하고자 하는 일본의 입장을 배척하지 못한다. 만약 위 논쟁점들에 대해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로써 충분히 긍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해양 방출은 일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위 논쟁점들에 대해 과연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결정적으로 의혹을 일으키는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과학적 사실이 순수하게 성립하려면 정치적인 개입이 아예 충분히 배제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이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을 결정한 바가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것이라면, 그 정치적인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과학자 집단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을 잠재우기는 결단코 쉽지 않다.


하필이면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이 실행되면 가장 피해를 많이 보리라 예상되는 한국의 대통령과 여당이 한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하는데도 일본의 결정이 충분히 순수한 과학적 사실에 따른 것이니 허용해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방출에 반대하는 한국민의 80% 이상의 국민이 비과학적인 이른바 ‘괴담’에 잘못 휩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국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과학적 사실의 순수성을 오염시키는바 자기 공격적 · 자가당착이다. 최고의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정부와 여당이 미리 위 논쟁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정치적인 선전과 공격을 가하는 상황에서는 힘없는 전문 과학자들이 학문적인 양심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고, 그래서 심지어 국내의 과학자들이 긍정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그 주장이 갖는 학문적 실효성이 현저히 저하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IAEA를 대표하는 사무총장이 검증 보고서를 조용하게 일본 당국에 보내야만 할 것인데, 특별히 일본을 방문하여 보란 듯이 보고서를 일본 총리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건넸다. 그리고 여러 언론을 통해 보란 듯이 대서특필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으로 건너오기까지 하여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이 모든 행위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따라서 과학적 사실을 충분히 오염시킨다. 결과적으로, 과학에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들조차 대다수가 IAEA 검증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순수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핵 오염수가 충분히 정화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마셔도 해가 없고 그 물에서 수영해도 괜찮다고 역설하는 IAEA 사무총장이 힘주어 강변할수록 그 강변 자체가 아예 정치적이기 때문에, 그 발언 역시 자기 공격적 · 자가당착이다.

 


출처 - 환경운동연합


2. 과학의 한계와 불완전성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과학 내지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맹신이다. 이는 ‘순수한 과학적 사실’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과학은 과연 본래부터 진리 내지는 진실을 제대로 산출하는 역량을 갖춘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 과학이 갖는 한계를 무시하는 과학자는 얼마나 될까?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과학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역량을 더욱 많이 갖추게 될 거라고 믿는 과학자들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궁극적으로 진실을 완전히 규명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은 없다. 본래부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반 대중에게 필요한 진실 정도는 과학이 만족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할 뿐이다.


예를 들어, 기상학의 발달로 인해 기상 예보의 정확성이 이전보다 상당히 높아지긴 했지만, 전혀 어긋남이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의학의 발달로 인해 많은 질병에 관해 그 원인을 상당 정도 파악하긴 하지만 그 원인의 전모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학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핵 과학의 영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핵 과학은 근본적으로 극미한 소립자의 세계를 다룬다. 당연히 상대성 이론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이라는 과학을 통해 그 세계를 탐색하여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극미한 사건들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고 예측하고자 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방사능물질의 종류 즉 핵종들을 발견했고 그것들의 특성과 위력을 나름대로 파악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내용을 완전하게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바 관련한 순수한 과학적 사실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모르긴 해도 양자역학의 기초인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의 원리 등은 원자핵의 구성과 운동에 직접 적용된다. 이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결과는 확률적인 진실일 뿐 완전한 진실은 결코 아니다. 어떠한 돌발변수가 발생해서 지금까지 알지 못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비록 분자생물학이나 유전과학 그리고 두뇌 과학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생명체를 관통하는 생명의 원리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못한 상태다. 다만, 유전인자가 생물체의 세포들의 짜임과 배치를 반복적으로 안정되게 결정하는 과정이 분자 이하의 수준에서 특히 미세 물질의 화학 작용과 각종 미세한 전자적인 이온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여기에 원자핵의 분열에 의한 소립자 물질들이 극미량이라도 결합해 작동하면 돌연변이가 일어나 세포들의 짜임과 배치가 생물체의 항상성을 유지함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일어남으로써 각종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중요한 사실은 원자 이하 수준의 극미한 세계가 생명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아직 대처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개발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출처 - 동아일보


 

3. ‘순수한 과학적 사실의 허구성


요컨대 과학이 전능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건 과학적인 상식이다. 이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있다.


하나는 철학자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주장이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세계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생활세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각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문화로 이루어진다. 이는 문화에 따라 과학이 다른 방식으로 체계화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은 근본적으로 모든 사태를 철저하게 양화(量化)하기 때문에, 생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질적인 내용들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는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S. Kuhn, 1922∼1996)의 ‘패러다임’ 이론이다. 과학은 각 시대의 과학적인 환경에 따라 이른바 한 시대를 지배하는 정상과학을 규정하는 체계 자체 즉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뉴턴의 물리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중 어느 쪽이 더 옳은가를 본래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과학학자인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이다. 라투르는 순수한 과학적 사실은 허구라고 말한다. 과학적 사실의 확립에는 반드시 정치적인 측면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논거로 제시한다. 그는 과학 역사를 보면, 어느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과학적 사실로 정착하는 데는 논문 발표를 둘러싼 제도, 실험실의 구성과 운영 방식, 과학자 집단 내의 동맹관계, 이해관계의 그룹의 정치 경제적인 영향, 환경의 시급성에 따른 비인간적인 대상들의 동맹 등이 긴요하게 작동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순수한 과학적 사실은 원리상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순수한 과학적 사실의 존재를 맹신하는 태도를 과학주의라고 부른다. 과학주의는 우리 인간들의 구체적인 생활세계를 오히려 착각에 의한 허구 ― 요즘 유행하는 ‘괴담’ ― 라고 몰아붙인다. 그리하여 건전한 합리적인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진실 싸움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고자 한다.


이러한 과학주의는 오늘날 첨단 고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더 크게 동력을 얻고 있다. 과학주의는 과학은 전능하고, 과학에 따라 만든 기술은 완전하고, 이를 부정하면서 인간 고유의 영역을 주장하는 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과학기술로 대처할 수 없는 대재앙의 도래를 목도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핵 과학기술의 오남용으로 인한 파국이고, 그 파국의 예가 원자탄의 투하, 체르노빌 원자로의 폭발, 그리고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이다. 그 부작용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은, 그나마 노골적으로 정치적으로 오염된 과학적 사실을 순수한 과학적 사실로 내세워 그야말로 일부 집단의 정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을 결정해 강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결국은 정치적인 투쟁으로 귀결된다. 과학주의로 무장한 일부 정치 세력과 건전한 합리적인 과학과 상식으로 무장한 다수의 정치 세력 간의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을 마치 과학과 괴담의 투쟁인 양 프레임을 만들어 그 속에 건전한 상식을 가두려고 하는 정치적인 술책이야말로 무지와 이익이 결탁하여 만들어낸 괴담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