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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 본연의 가치에 주목을(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11 10:35
조회
255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요사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에 대한 문의와 함께 전통시장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에 대한 질문도 늘고 있다.



지역화폐의 효능감을 인지한 소비자와 소상공인 가맹점들이 온누리상품권 이용 방법이나 가맹점 신청 방법을 묻는 것이다. 지역화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에는 지역화폐를 설명하며 온누리상품권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한 때 경쟁관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특히 온누리상품권의 주요 사용처인 전통시장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크게 반발하였다. 온누리상품권 사용자들이 지역화폐로 갈아타 전통시장이 아닌 곳에서 소비하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였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


 

그럴 법한 우려였지만 반전이 벌어졌다. 포항시가 지난 2019년 연구용역을 통해 포항사랑상품권 유통 대비 온누리상품권 발행량을 조사해 보니 온누리상품권 사용량도 크게 늘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자 우려는 사라지고 지금은 지역화폐가 온누리상품권 활성화의 걸림돌이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렇듯 지역화폐와 전통시장상품권은 각각 지역경제 활성화와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목적에서 교집합을 이루며 서로 번영할 수 있다는 실증을 거친 상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지원은 전액 삭감을, 온누리상품권에 대한 지원은 대폭 확대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자체 고유사무이며 경제 활성화에 대한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반면 온누리상품권은 골목상권 활성화란 목적으로 지원 규모를 대폭 늘렸다.



지역화폐는 안되고 온누리상품권은 도움이 된다? 정부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근거는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모 국책기관에서는 지역화폐가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한 광역지자체 연구용역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내놀고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구체적인 성과분석 자료가 잘 안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 7월 9일자 경기일보 기사 <예산 줄자 지역화폐 인기 '시들'… 정부가 밀어준 온누리상품권은 실적 저조>에 따르면, 지역화폐는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인센티브율이 줄자 올 1~5월 경기지역 31개 시군의 지역화폐 발행액이 전년 동기 대비 평균 13.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부가 예산을 늘려 활성화를 시도한 온누리상품권은 판매 실적이 저조해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실정이며 지역화폐·온누리상품권의 사용처인 전통시장 상인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많이 쓰이는 지역화폐는 예산을 줄여 주춤해지고, 반대로 예산을 늘린 온누리상품권은 소비 진작 효과가 적어 상인들을 중심으로 볼멘소리가 나온다. 고물가·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운영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실효성 없는 정책을 내놨다는 게 주된 이유다. 더군다나 정부가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상인들의 불만은 이어질 전망이다”라고 설명했다.



온누리상품권이 생각만큼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용처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의 전통시장 및 등록 상점가 중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으로 신청·등록된 곳이 사용처이다. 현재 전국 전통시장 가게 중 절반 정도는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아니다. 지역화폐가 전국적인 활성화 움직임에 힘입어 전통시장은 물론 골목상권 곳곳에서 가맹점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과연 온누리상품권이 지역화폐를 대신해 골목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을까? 비슷한 목적을 가졌지만 지역화폐는 안되고 온누리상품권은 된다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굳이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동시에 온누리상품권 지원은 대대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큰 의문이다. 지역화폐 지원 중단을 ‘정치적 목적의 무용론 전파’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은 정부의 시그널이 지역화폐 활성화와는 반대의 지점에 있음에도 지자체 차원에서 반대의 길을 걷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이 줄어든 만큼 자체예산을 투입하거나 더 많은 예산을 들어 인센티브를 늘리는 지자체가 속속 나오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들 상당수가 여당 소속 단체장이 재임 중인 지자체란 점이다.



지자체의 입장에선 민생 현장의 이해와 요구를 정책과제라고 그냥 외면하기 힘들다. 사용자야 말할 것도 없고 정책의 최우선 대상인 소상공인들이 입을 모아 지역화폐 활성화 요구를 쏟아내는 현실에서 정부의 방침은 속 답답한 이야기일 수 있다. 당장 내년에는 총선도 맞아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 지역화폐든 온누리상품권이든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목적은 같다. 때로는 적절히 혼합하고 때로는 집중하면서 그 쓰임에 맞게 활용하면 된다. 지금처럼 중구난방의 지역화폐 효과분석을 넘어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도출하여 적절한 정책 지원을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화폐를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재단하는 어떤 시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역화폐가 현장의 신뢰를 받으며 묵묵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