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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헤드'와 지배이데올로기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18
조회
256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얼마 전 월드컵 경기에서 등장한 켈트 십자가를 계기로 이와 관련된 러시아의 극우민족주의 혹은 스킨헤드 문제가 다시 국제적으로 이슈가 된 바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내내 4월 20일 히틀러 생일에는 외국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결석을 허용해 줄 만큼 스킨헤드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외국인들 뿐 아니라 옛 소련 독립 국가 출신 이주자들, 심지어 러시아 연방 내 비러시아계 소수민족들에게도 러시아 스킨헤드로부터의 일상적 위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최근 다소 잠잠해지는 듯했던 러시아 극우파 인종혐오주의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 합병, 그리고 뒤이은 서구와의 대립 속에서 전반적인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고양 국면을 맞아 다시 수면 위로 올라 올 기세이다.

개방화와 자유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1980년대 소련에는 ‘류베릐’, ‘고쁘니끼’, ‘아프간쯰’ 등으로 불리는 여러 비공식 청년 집단들이 존재했다. 개방 풍조를 거부하고 구 질서를 옹호하는 이들은 록 음악 등에 심취한 일부 소련 젊은이들에 대해 타락한 서구 문화를 갈구하는 자들이라면서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소련 붕괴 이후 이러한 집단들은 광적인 축구팬들과 뒤섞이고 독일 등 유럽의 스킨헤드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해 스킨헤드라 칭하게 되었다.

항간에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 스킨헤드는 전형적인 독일식 나치즘을 추종하는 그룹에서부터 극우적 러시아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그룹, 그리고 사회주의로부터 내용을 차용한 듯 한 모습을 보이는 그룹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철십자’, ‘켈트 십자가’ 등의 문양을 지니고, ‘히틀러 만세’의 구호를 외치는 집단들이 있는가 하면, 고대 슬라브인들의 전통 문양인 ‘콜로브라트’를 들고 ‘루시에게 영광을’이나 ‘러시아인들을 위한 러시아’ 등을 외치는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 집단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들은 민머리에 서유럽 스킨헤드의 전형적인 복장인 검은 자켓을 착용하기도 하지만, 러시아식 군복과 군화를 입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단속이 강화되자 머리를 기르고 군화나 점퍼를 착용하지 않는 스킨헤드들이 더 많아졌다.

스킨헤드 조직원들의 연령은 10대에서 30대에 걸쳐 다양한 편이지만, 대부분의 조직원들의 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조직의 이데올로그들의 연령은 높은 편이다. 계급적으로는 체제전환 과정에서 심각한 고통을 겪은 하층계급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의 청소년들도 증가 추세에 있다. 특히 대도시의 새로운 스킨헤드들은 20-30대의 엘리트로서 서구식 사고와 생활 방식을 하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등 이들의 출신 계급 계층이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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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헤드들이 "거리에서 사라져라, 너희 동네로 돌아가라" 란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러시아에서 스킨헤드가 탄생한 사회적 배경은 소련 체제 해체 이후 시장 경제로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극심한 경제적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체제전환 과정에서의 기업들의 도산과 생산 하락으로 인한 완전 고용제의 파산과 복지 제도의 붕괴는 대량 실업과 빈곤을 야기했고, 범죄와 질병, 마약과 알콜 중독 등 온갖 종류의 사회 문제들을 만연케 했으며, 이는 곧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수준의 하락과 불안정화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극심한 사회 양극화 현상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박탈감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급격한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는 정치적 극단주의가 발현하게 되는 토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 불평등에 대한 박탈감과 크게 고조된 증오와 분노의 감정 분출과 해소는 비러시아 소수민족과 외국인들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의 의도와 목적에 의해 특정 민족이나 특정 국가를 향한 러시아 사회의 외국인혐오증이 조장되는 경우도 많았다. 푸틴은 체첸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을 위해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 시기에 러시아의 외국인혐오증이 급증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푸틴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단행함으로써 연방 붕괴를 막음과 동시에 국가 운용의 효율성을 증진하고자 하였고, 소위 ‘대러시아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다수 러시아인을 결집시키며 소수민족을 주변화 하는 정책을 통해 소수민족들을 억압하였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푸틴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제노포비아적인 발언을 지속함으로써 러시아 영토 내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을 좌절시키고, 반서구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러시아를 강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내부 단결의 공고화를 강조했다.

이러한 국가의 의도는 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1990년대 말 체첸전쟁이 일어나고 나서부터 러시아의 제노포비아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였고, 서구와 충돌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는 눈에 띄게 러시아 민족주의, 애국주의적 감정의 고양과 이에 따른 비러시아인에 대한 적대의식이 증가하였다. 2002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민의 21%가 스킨헤드는 러시아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고, 경찰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다음 해 한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 3000 여 명 중 31%가 러시아 스킨헤드는 러시아의 애국자라고 답하기도 했다. 2011년 한 연구기관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민족주의의 주 원인으로 ‘소수민족의 행동’으로 지목한 응답자는 44% 달한 반면, ‘러시아인들의 민족적 선입견’으로 지목한 응답자는 단 5%에 지나지 않았던 결과에서 보듯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감은 일반 러시아인들에게도 만연해 있는 정서이다.

국가 및 사회가 배타적 인종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일 때, 이러한 상황은 스킨헤드 현상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가 약화된 상황에서는 경제 상황의 악화나 국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국가는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데 대중을 기꺼이 동원할 것이다. 언론과 학교, 종교 기관 등이 자신의 본연의 기능이 마비된 채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적극 선전하는 도구로 변질될 경우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정정도의 외국인혐오증과 극우적 민족주의는 반여성주의나 정치적 보수주의와 조우하고 있고, 국가기구 역시 이를 처벌하기는커녕 이용하거나 방조하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매우 다르지만, 사회의 퇴행을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비교연구와 이를 통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