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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의 기준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17
조회
189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이번 주는 국회의 ‘청문회 주간’이라 한다. 월요일부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모두 8명의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진행된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가운데 압권은 9일 열리는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이다. 논문표절이나 연구비 횡령과 같이 학자 출신에게 단골로 따라붙는 의혹 이외에도 그에게는 기명칼럼의 대필이나 부실수업과 같은 매우 근본적인 도덕적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여기에서 후보자 개개인들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다시 한 번 재검토 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청문회 때마다 제기되었던 위장전입이나 탈세, 부동산 투기, 군대관련 의혹 등은 이제 국민들에게 식상한 듯도 하고, 사실 각 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의 청문결과는 그 임명과 관련해 법적인 구속력도 없는 것이어서, 부적격 결과에도 불구하고 임명이 강행된다 해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말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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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하지만, 한탄을 넘어서서 어찌 보면 이제는 포기라도 해야 할 듯한, 위 식상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개인비리를 보면 마치 한국의 성장지상주의의 약사(略史)라도 대하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착잡하다. 나라 전체가 개발에 도움만 된다면 경제력 확대에 도움만 된다면 약자를 착취하고 세금을 강탈하여 무슨 일이라도 할 듯 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들이야 오죽했을까. 이들에게 남의 업적을 가로채고 남이 수고한 대가를 횡령하며 돈으로 연줄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 그런 것’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래도 되는 것일까? 범죄학에서 말하는 범죄인의 심리기제 중에 ‘중화기술’이라는 것이 있다. 범죄인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스스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을 고안한다는 것인데, 이 가운데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그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한 연구에 따르면 뇌물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공직자의 80% 이상이 자신은 억울하게 처벌되었다고 믿으며, 그 까닭은 자신이 속한 공직부서가 전체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이 사실이라면 물론 더 큰 문제이겠지만,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믿음은 그 사회의 도덕적 기반, 법치주의의 기반이 무너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법을 지키라, 도덕적으로 살아라하고 말할 수 있을까?

갑작스레 인과 예가 지배하는 조선사회나 칼뱅의 청교도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대충 얼버무린 수단을 검증되지도 않은 목적이 정당화하는 시대는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찌할 수 없이 우리 사회는 저성장에 청년실업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제는 전 사회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각 부문의 내실을 다져야만 한다. 학자는 연구를 해야 하고 기업은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하며, 정보기관은 정치세력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나라의 경쟁력도 생길 것이다. 이른바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에 근접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시 청문회로 돌아가보자. 이 시대에 필요한 고위공직자의 상은 어떤 모습일까.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으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국민과 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 이러한 답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대통령도 말했다지만, ‘너무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할 사람’은 쉬 찾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부터는 어떤 구실로든 부정의한 수단으로, 구체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수고를 가로채 자신의 출세와 치부에 이용한 사람들은 인사 대상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변화된 시대의 요구에 합치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의로운 것이다. 이들은 그 동안 너무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