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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보조인 지원, 하루 24시간 지원불가의 금기를 깨야한다 (정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16
조회
783

정지영/ 서울DPI 회장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5월 3일부터 그 효력이 발생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 보호 및 보장하고, 장애인의 천부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에서 시작하고 대한민국 헌법에도 보장되어있는 국민으로서의 인권과 존엄이 장애인을 명시한 국제조약으로서 재확인 된 것입니다.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보장되는 장애인의 권리들은 새로운 것들은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장애인도 국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권리는 왜 다시 확인 받아야할까요? 장애인도 인권의 기본인 보편성에 따르면 국가가 권리를 보호해야할 ‘모든 국민’에 이미 속해 있지 않나요? 장애인이 가진 어려움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보다는 휠체어를 사용해야하는 것에 대하여, 점자를 사용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자유로움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빵과 장미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장애인의 권리영역에는 이렇게 자유권과 사회권이 공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권리협약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자유권적인 영역 외에 사회권영역에 속하는 것들이 담겨있고, 사회권적인 측면은 즉각적 이행보다 점진적 이행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만,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하는 것, 장애인의 천부적 존엄성 증진을 위한 점진적 이행이라는 것은 권리가 유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권리협약에 이동권, 자립생활권, 법 앞의 동등한 권한, 고유한 권리 같은, 장애인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자립생활권입니다. 제19조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의 동참(Living independently and being included in the community)이라는 조항은 처음에는 자기결정권을 핵심가치로 하는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의 권리’였습니다. 자립생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재정 지원’에 대한 부담과 ‘자립생활’을 또 하나의 서비스로 보는 국가들의 반대로 ‘자립적으로 생활함’으로 후퇴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후퇴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활동보조(personal assistance)’입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 낯선 단어 활동보조.

활동보조는 1968년 미국의 버클리대학에 에드로버츠라는 중증의 장애학생이 입학하면서 생겨났습니다.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겠지요. 전신마비로 호흡기까지 하고 있는 에드로버츠는 교내의 코웰병원에 기숙하면서 학교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입원환자로서 독립심이 강했던 에드로버츠는 코웰병원의 입원환자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학교생활을 거부하고 동료장애인들과 함께 신체장애학생지원프로그램을 70년도에 만들어내게 됩니다. 에드로버츠는 ‘자립’의 정의를 신체적·경제적 독립으로 규정했을 때 이미 자립은 불가능한 사람들, 즉 장애인은 애초에 자립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립’을 ‘스스로 자신의 생활법을 결정하는 것’으로 정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것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자립’한 것이 됩니다. 에드로버츠는 72년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러한 사회적 지원이 계속되게 하기 위하여 72년에 미국 버클리에 최초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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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소아마비에 걸린 에드로버츠 (Edward V. Roberts) 1935~1995)는
장애는 사회와 환경에 의하여 구성되고 디자인된다고 말했습니다.>


활동보조라는 것이 한국에 소개 된 것은 한국의 장애운동가들이 미국과 일본을 통해 배워온 자립생활 이념을 한국에서 실천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의 자립생활’ 조항이 삽입되고 2008년부터 활동보조서비스가(현재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최중증장애인에게 한 달에 80시간의 활동보조인이 지원되었습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한 달이면 약 720시간이 됩니다. 한 달에 80시간이라는 시간은 하루 평균 2.6시간. 당시 속된말로 세끼 밥 먹고 화장실 다녀오기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최증증장애인에게는 보건복지부에서 한 달에 약 100시간을 줍니다. 서울의 경우에는 100시간에 100시간을 추가로 주게 되며 다양한 특례지원(독거인가, 고령자와 함께 살고 있는가, 직업을 가졌는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가 등의 추가조건)에 따라 최대 600시간 정도(각 구청지원까지 포함)를 지원받습니다. 물론 이렇게 받는 사람은 많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더 많이 좋아진 게 사실입니다. 불과 7년 만에 몇 배 증가 된 것은 사실이니까요. 전국에 이러한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중증장애인은 약 6만 명입니다. 그 중 4만 8천여 명만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제도를 1만 2천여 명이 포기 하고 사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가장 큰 이유는 중증장애인이 필요한 시간을 자신이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기위해서는 인정조사를 통해 점수를 받아야하고 그 점수 기준에 따라 시간이 배정되는데 현재는 장애 1,2급까지만 그 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장애등급제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 결국은 내가 필요한 시간보다 덜 받거나, 더 받게 될 수밖에 없어 스스로 이용을 포기하는 장애인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유가 다는 아닙니다만.

2012년 화재사고로 사망한 故 김주영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김주영씨는 월 360시간 즉 하루 12시간 정도의 활동보조시간을 지원받았습니다. 12시간은 출근준비와 잠자기 정리시간까지를 쓰고 12시간은 혼자서 지내야했습니다. 자는 동안은 별 일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 별일이 혼자서 잠자리에 든 시간에 일어나 10분 만에 도착한 소방차도 그녀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호흡기를 24시간 사용하던 故 오지석군도 월 218시간의 활동보조시간을 지원받았습니다. 독거가 되면 김주영씨처럼 좀 더 많은 시간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했기에 어머니와 함께 살 수 밖에 없었고, 한 달의 나머지 502시간은 어머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활동보조인과 어머니와의 짧은 교대시간에 오지석군의 호흡기는 문제를 일으켰고 오지석군의 손가락과 마우스로, 마우스와 연결된 컴퓨터로 즉각 긴급 호출이 있었으나 결국 호흡정지가 와서 40여일의 중환자실 사투 끝에 6월 1일 사망하였습니다.

국가는 말합니다. 잠잘 때는 활동보조인이 필요 없지 않느냐.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인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는 별일 아닌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삶을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국가는 말합니다. 아직 활동보조 서비스를 모든 장애인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더 어려운 장애인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한 달에 50시간이던 100시간이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나 한 달에 50시간 100시간 필요한 사람의 절박함이 단 1분도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절박함보다 우선일까요.

또 국가는 말합니다. 현재 활동보조인의 시급이 8,555원(각종 수수료와 사회보험료를 제외하면 6,200원 정도임)으로 최저임금보다는 높지만 활동보조인의 처우를 먼저 개선해야 지금처럼 활동보조인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저런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포기한 1만 2천여 명으로 인해 2011년 활동보조예산의 1,300억 원이 불용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930여억 원이 불용되었고요.

1,300억 원이 남았을 때 정부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장애2급까지 받을 수 있게 확대했습니다. 900여억 원이 남은 지금은 3급까지 확대한다고 합니다. 김주영씨의 죽음으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요구가 거세지고, 또 올해 오지석군의 죽음으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보장의 요구가 거세지자, 국가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의 형평성 문제,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부정수급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건강보험 기록과 최근 몇 년간의 제공기록지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몇 백 시간이라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은 이나마 서비스가 줄어들까 또 다시 24시간 보장 요구에 움츠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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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의 활동보조 지원이 절실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요구하지 못한
장애인동료들의 미안함이 더 컸었던 故 오지석군의 장례식.
사진 출처 - 에이블뉴스


국가는 매년 예산액보다 돈은 남는데, 24시간 지원은 그 선례를 남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장애인을 서비스의 수혜자이자 한 번 주면 끝없이 바라는 사회의 기생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2012년 서울DPI에서는 2명의 중증장애인에게 한 달 동안 하루 24시간의 활동보조인을 지원해 준적이 있었습니다. 그 한 달이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할 수 밖에 없는 미안함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처럼 사회활동이 늘었거나, 생산성이 생겼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혼자 잘 때는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었는데, 밤에도 목이마를 때는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그 중 한명이었던 오지석군은 말했습니다. 자다가 호흡기가 빠지는 두려움 때문에 푹 잘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깰 때까지 푹 잘 수 있었다고. 활동보조서비스가 그냥 서비스가 아니라 어떤 장애인에게는 인간답게 살 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