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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잊지 말자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13
조회
168

박현도/ 종교학자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기상천외한 구호를 내걸고 일인시위를 벌이며 표를 구걸한 여당과 세월호만 믿고 복지부동한 존재 없는 야당을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해 준 선거가 끝났다.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했지만, 찜찜하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 투표라지만, 내 세금 먹고 사는 여야의 저 가증스러운 얼굴을 보자니 울화가 치민다. 야당 단일화 운운하며 사퇴한 후 선거보조금만 챙겨간 모 야당은 분노를 더 돋운다. 어쩜 이리도 계산이 빠르단 말인가. 말로만 외치는 인권, 민주, 진보라는 구호에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수백 명이나 죽었는데도 민심을 돌본다는 정치꾼들이 한 일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세금을 먹고 살 그런 정치꾼을 또 뽑는다. 다음 선거 때까지 이들은 이제 우리 상전이 되어 제멋대로 놀 것이다. 그래서 짜증난다.

여당은 대통령 뒤에 숨고, 야당은 계파 이익 수호에 정신이 없다. 여야 공히 표가 필요할 때만 민심 운운한다. 그나마 우리에게 고개 숙이는 때가 선거뿐이니 선거가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라도 판을 갈아엎을 수는 없을까? 제대로 된 보수와 제대로 된 진보가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는 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안보장사, 인권장사, 민주장사 하는 얼치기 보수와 진보들. 보수라고 진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1993년 캐나다 총선에서 156석의 집권여당 진보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이 단 2석만을 얻었다. 세계 선거 역사상 실로 유례가 없는 대참패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10년 만에 당 간판을 내리고 다른 당과 합쳐 재창당하여 13년만인 2006년에야 비로소 집권당으로 간신히 다시 살아났다. 우리나라도 여든 야든 지려면 이정도로 져야 정신을 차리는데, 어휴, 그럴 날이 오긴 올까나. 지금처럼 지연, 혈연, 학연에 얽혀 투표를 하는 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체념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여야 모두 ‘억’ 소리 나도록 선거로 민심 쿠데타를 벌일 날을 꿈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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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앞줄 맨 왼쪽)이 1952년 7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해 반공 포로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세월호가 앗아간 우리 아이들, 그리고 안타까운 희생자들. 입술이 닳도록 읊어대던 우리의 국격은 세월호로 민낯을 드러냈고, 그 민낯을 더욱 민망하게 만드는 사람들 대열 맨 앞에는 어디 내놓기에 “쪽팔린” 우리나라 정치가 있다.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선장과 우리 위정자들이 다른 점은 없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백성 몰래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고, 6.25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안심하라고 거짓 방송을 하며 만류하던 미군을 뿌리치고 서울을 버렸다. ‘나만 살자 36계 줄행랑 DNA’가 ‘지도자’급 한국인의 피에 흐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는 우리 일반 평민들이 ‘지도자’를 버릴 때다. 특히 ‘정치’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인물들을 말이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이, 6.25때는 의용군들이 나라를 지켰다. 지금 세월호 참사라는 전시를 맞아서는 우리 시민들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주둥이만 나불대는 정치인들을 버리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 불쌍하게 생을 마친 우리 아이들, 그리고 무고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정신 차리고 지켜야 한다. 입만 열면 민심이니, 민주니, 인권이니, 국격이니 하면서 목소리만 높이는 여야 정치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신 바짝 차리고 감시할 일이다. 그래야 세월호의 슬픈 주검들의 한을 풀 수 있지 않겠는가! 신뢰와 도의를 잃은 지 오래된 우리 정치에 저항의 출사표를 던져야 할 때다. 말을 너무 잘 들어 죽어야만 했던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약아빠진 세금 먹는 하마들에게 저항을 선언할 때다. 우리가 승리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세월호 탈상을 하는 거다.

잊지 말자. 월드컵이 다가 오니 더욱 정신 차리고 잊지 말자. 브라주카(브라질 월드컵 공인구)에 정신 팔린 우매한 시민은 되지 말자. 우리는 아직 세월호의 상주니 말이다.

진심을 담아 세월호 우리 아이들, 그리고 무고한 우리 시민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