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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박희태의 경우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27
조회
191

이광조/ CBS PD



얼마 전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으로 일하던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언론에 알려졌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사건을 무마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손녀 같고 딸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것”이라며,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번 툭 찔렀는데 그걸 어떻게 만졌다고 표현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설명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피해자는 “홀을 돌 때마다 계속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예전부터 행실이 좋지 않아 캐디들 사이에 기피 고객으로 소문이 났다는 주변의 주장까지 나왔다.

외신에까지 보도된 이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는 모두 아는 대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힘 있는 사람들의 성추행이 제대로 처벌되는 걸 보지 못한 터라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지 관심이 크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의 관심을 끄는 건 이 분의 생존비법이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서 검사로 승승장구하다 1988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어떻게 그 오랜 세월동안 국회와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지금까지 무대 위에 남아 있을 수 있었는가는 하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이 분의 프로필을 검색해 보면 1938년 생으로 1966년에 검사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나온다. 검찰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1988년 민정당 소속으로 13대 국회의원이 된 뒤 17대까지 내리 5선을 했고 2008년에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2009년 양산 재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6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법무부 장관, 2003년 한나라당 대표, 2007년 국회 부의장을 지냈고 같은 해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정부의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차례의 당대표와 국회의장까지. 대단한 이력 아닌가.

그런데 이 화려한 이력과 함께 따라 나오는 것이 미국 유학 시절 낳은 딸의 이중국적을 유지하다 국내대학의 외국인 자녀 특례입학 혜택을 받기 위해 1991년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자격으로 편법입학한 일과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뿌린 일이다. 딸의 특례입학 문제는 1993년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 논란이 불거지면서 장관직 사퇴로 이어졌고 돈봉투 살포와 관련해서는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고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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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노컷뉴스


전과가 있는 정치인이 한 둘도 아니고 온갖 엽기적인 일이 다 일어나는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과오는 별 것 아닌 걸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분에게 따라 다니는 과오는 쉽게 보아 넘기기 어렵다. 두 경우 모두 그가 맡은 공직의 직업윤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유신독재와 전두환 독재에 복무한 전력이야 흠도 되지 않는 세월이니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것 같고 자녀의 이중국적과 편법입학 정도는 소위 이 땅의 ‘지도층’ 사이에는 워낙 흔한 일이라 접어두는 게 좋겠다. 하지만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으로 표를 사려했던 행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이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 그는 의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었으니 대한민국 국회의 명예에 제대로 먹칠을 한 셈이다. 그는 이 일로 인해 국회의장에서 물러나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쯤 되면 정치무대에서 물러나 여생을 조용히 보내는 게 상식일 텐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을 받고 박근혜 정부 들어 새누리당의 상임고문으로 추대 되었다. 그리고 골프장을 드나들며 ‘딸 같은 캐디들을 손으로 격려하다’가 성추행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젊었을 때 그는 아마 고향에서 ‘천재’라는 소리 꽤나 들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우등생이었을 거다. 검사생활을 하면서는 ‘영감님’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그 뒤로는 ‘의원님’, ‘장관님’, ‘대표님’, ‘의장님’으로 불리며 평생을 대접받고 살았을 것이다. 그 오랜 세월동안 그는 권력을 가진 패거리들에게만 잘하면, 그들에게만 인정을 받으면 사고를 쳐도 얼마든지 후일이 보장된다는 걸 몸으로 체득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이렇게 권력게임을 즐기는 동안 유권자들은 ‘우리 지역’이 배출한 인재가 중앙정치무대에서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서 박수치고 대리만족을 얻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전국에서 모인 ‘우리 지역’의 우등생들은 중앙정치무대에서 누가 서로 잘났는지를 겨루며 점점 더 ‘일그러진 영웅’으로 변해간다. 그들에게 유권자란, 국민이란 어떤 존재일까? 골프장 캐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