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진정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26
조회
141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불과 2주일도 안 된 시점에 도저히 열거하기조차 힘들만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와 결탁, 거짓과 추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왔다. 교신 자체가 없다던 해경의 말 바꾸기와 교신 기록 편집 및 삭제 의혹,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는 말과는 정반대인 사고 초기 구조 상황에 대한 폭로로 인해 이제 심지어 남은 사람들을 일부러 구조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갖게 할 정도로 극심한 불신을 낳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국가의 무능력과 현장에서의 혼란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것은 이제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이 철저하게 밝혀지면서 상황은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총체적 무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그라들고 점점 기억에서 멀어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부 스스로도 이번 사건이 단순한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향후 폭로될 수도 있는 문제들이 가져 올 심각한 파국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가 되었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배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기도 전에 ‘과적’으로 규정하고, 선장과 선원들, 청해진해운과 세모 그룹, 유병언과 구원파, 그리고 해수부와 해경, 관피아 등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요소들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SNS의 발달로 인해 총체적인 은폐와 축소, 거짓이 대중에게 쉽게 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분노와 슬픔을 가라앉히기 위한 지상파 등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갖고 있던 휴대전화 속에 남겨진 죽어가던 순간의 영상들의 확산으로 인해 일시적으로나마 대통령에게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직접 연락하라’는 쇼까지 하게 강제하는 국면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매우 놀랍게도 그러한 쇼와 동시에 박근혜 정부는 검찰, 경찰, 군, 교육부 등 거의 모든 기관들을 총 동원하여 유언비어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등의 위협과 방통위 등을 통한 언론 통제, 그리고 분향소 설치 제한 등을 통해 과거의 그 어떤 재난 상황과 비교해도 괴이할 정도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했다.

국정원과 군의 선거 개입 등으로 심각한 정통성의 위기를 맞고 있었던 박근혜 정권은 추모 분위기의 진화를 막으려는 국가의 법제도적 제약과 함께 ‘종북 좌파’와 ‘시위 선동꾼’론을 통해 기존의 수구 집단 뿐 아니라, 중간에 동요하는 집단들을 확보해서 향후 항의집회와 시위가 확대될 경우 대중들의 분열을 노리는 전략을 취했다.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는 이들에 대한 ‘낙인찍기’ 전략은 ‘순수한’ 추모와 ‘불순한’ 저항으로 구별 지어 추모를 넘어 대중적 저항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지만원, 서승만, 한기호, 권은희, 정규재, 송영선, 정미홍, 김장겸, 박상후, 조광작, 이완영, 조원진, 주호영, 홍문종, 김태흠, 안흥준, 김동길, 오장현, 박승춘 등등... 차마 일일이 그 내용을 적기조차 민망한 우리네 지배 집단들의 천인공노할 막말과 망언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망언들이 처음부터 일사분란하게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러한 망언들이 자제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데에는 분명 노림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복지 예산 비율은 OECD 국가들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연령과 집단들의 자살률이 세계 수위를 다투고 있고, 최장 시간의 노동, 산재, 양극화 등등 거의 모든 지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지난 대선 당시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와 복지 국가론이 확산되어 갔지만, 이 땅의 지배 집단들은 결단코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침해되는 꼴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이 국면에서조차 대중들 사이에서 그 어떠한 정의, 연대와 협력이 일어나지 않고, 정당한 문제제기와 저항을 가로 막기 위해 대중들을 하루라도 빨리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며 억누르고 배제하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이미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과 타자들과의 연대보다는 정글 자본주의 속 경쟁과 비난에 더 익숙한 많은 대중들은 소위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정권의 문제가 아닌 세월호 문제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는 거짓 선동에 급속하게 동의하기 시작하며, 비난의 화살을 세월호 유족들과 야당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SNS를 통한 유족들의 주장에 대한 조직적인 왜곡은 한층 더 여론을 악화시켰다. 특히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보궐 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된 지배 집단들은 이후 태도가 돌변,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근 과감한 ‘서민 증세’를 예고하기도 했다.

NISI20140911_0010110626_web.jpg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 도로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광화문광장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 과정 속에서 일등공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버이연합과 같은 집단보다도 일베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젊은 반사회적 범죄자 집단들이었다. 이들의 확산과 증가는 권력을 가진 지배 엘리트들에게 너무나 반가운 우군이다. 여성과 장애인, 호남사람들과 이주노동자와 같은 약자 혹은 소수자들, 그리고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모독과 차별을 서슴지 않으며, 그들의 고통을 희롱하는 일베는 이번에도 일찍부터 희생자 가족을 ‘유족충’이라고 칭하며, 심지어 죽은 여성에 대해 성적 모욕까지 가한 글에 낄낄거리며 댓글들을 달았다. 반사회적 범죄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집단은 바로 수구보수 정당과 국가 관료, 그리고 특권적 기득권 집단들이었다. 이들의 비호 아래 일베와 같은 젊은 범죄 집단은 당당하게 오프라인으로 커밍 아웃했다. 그것도 유족들 바로 앞에서 ‘폭식’과 거짓 선동, 희롱을 일삼는 아주 더러운 방식으로.

국가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에서는 좌파 혁명가들과 극우 파시스트의 양 극단의 집단들이 대두해 왔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전자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때,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 한 상황에서 대중들의 불만은 이제 극우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나고 있다. 아니, 이 보다 더 나아가 매우 반사회적인 범죄 행위를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자행하는 단계로 갑자기 뛰어 올라와 있다. 이를 보장해 주는 강력한 세력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기존의 특권 지배 집단과 이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젊은 극우 파시스트적 행동대원들의 망동에 대처하지 못 하고 있다. 진보 정당을 비롯한 노동자, 시민사회단체들의 획기적인 대응이 절실한 시기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