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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수사권과 기소권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25
조회
137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사고가 일어난 지 다섯 달이 다되어 간다. 처음에는 마치 온 국민이 집단 우울증에라도 걸린 듯이 추모와 자책, 그리고 분노의 열기가 나라 안에 가득하더니, 역시 시간은 모든 기억을 삼켜버리는 괴력을 지니고 있나보다. 이젠 “유가족이 양보해야 한다”거나 “세월호 문제는 민생법안 문제와는 분리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도 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별별 사고가 다 터지는 이 사회에서 언제까지 한 문제에 온 국민이 매달려 있을 수도 없을 것이고, 더욱이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특히 관광이나 숙박과 같은 자영업자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동의하듯이, 이 사건이 그리 간단하게 정리되고 또 잊혀질 수 있는 것은 명백히 아니다. 수백의 젊은 목숨들이 희생되었음은 물론 기업과 관료, 그리고 권력으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극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역시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인정하는 이 사건의 첫 번째 해결방향, 즉 ‘진상규명’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치부가 드러나고 그들의 책임이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핵심적인 쟁점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느냐 하는 것이 다만 형식적‧제도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실질적‧내용적인 탓으로 합의에 이르고 있지 못한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먼저 형식적인 면을 살펴보자. 새누리당이 내세우는 이유는 조사위원회가 수사권을 갖는 것은 법률이 인정하는 수사기관 이외에 별도의 기관을 창설하는 것으로 3권 분립이나 법치주의에 반하는 위헌적인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족이 주장하는 특별법안 어디를 보아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별도의 수사기관’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위원회 내부에 검사의 자격과 권한이 있는 (따라서, 당연히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검사가 참여할 뿐이다. 그러니까, 현재 시행되고 있는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른바 상설특검법)이 위헌이 아니라면 이 특별법도 위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이미 세월호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하기로 야당과 합의하였다. 결국 특별검사의 수사는 당연히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문제는 이 검사가 위원회와 함께 수사를 하느냐 아니면 추후에 별도로 하느냐 하는 차이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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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별법 청원 1차 취합분 350만 명 이후 2차 취합분 135만 명(총 485만 명)의 국민 서명을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그래서 수사권 등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마도 ‘수사의 내용과 범위와 같은 실질적인 부분에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짙어진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은 아마도 특별검사가 위원회 내부에 참여하는 경우 그 조사의 결과에 영향을 받아 수사의 대상이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거나 혹은 편파적인 (즉, 지나치게 가족의 입장에 기우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수사 혹은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 대상이나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의혹이 제기되어 있고, 불행히도 이것은 청와대를 포함한 최고권력기관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더더욱 그 범위를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특별검사가 조사위원회의 영향을 받아 수사의 방향이나 범위를 달리 할 것이라는 우려는 특별검사의 자질을 의심하는 것이다. 위 특별검사법에 따르면 특별검사는 15년 이상의 경력변호사 가운데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다. 세월호 특별법에 이와는 다른 별도의 절차가 규정될 수는 있지만, 아마도 그 자격이나 절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특별검사는 공적인 절차를 통해 특별한 수사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수사방향이나 내용, 결과에 대해 사회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조사위원회에 참여하는 특별검사는 조사결과의 수사가능성에 대해 법률적인 의견과 조언을 제시할 것이며, 다른 위원들과의 토론을 거쳐 자신의 책임 하에 수사대상과 범위를 설정해 갈 것이다. 이것이 조사결과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설령 특검의 수사가 조사위원회의 조사 이후에 이루어지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조사결과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사안에 대해서 특별검사는 수사를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수사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를 제시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특별검사의 공정성에 대한 이러한 변명은 사실 조사위원회 자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나치게 유족의 입장을 대변하는 편파적인 태도를 갖지 않을 것인가 하는 우려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피해자들에게 수사권을 준다’는 세간의 표현은 아마 여기에서 나온 것 같다), 이 또한 지나친 의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사위원은 상당한 식견과 경험이 있는 각계의 인사들이 국회, 정부, 변협과 같은 공적 기관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다. 세월호 특별법의 경우 유족의 추천위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또한 사회적 명예와 책임을 가지게 됨은 특별검사의 경우와 마찬가지일 것이고, 따라서 합리적인 상식과 이성을 넘어서는 무리한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문제는 조사대상의 대부분이 상당한 권력을 가진 기관일 것이므로, 잘못하면 이들의 권한과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애초에 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은 아마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회가 문제라고 하지만, (진상규명을 원하는) 피해자의 입장과 국민의 입장이 같은 한에서 위원회는 당연히 이를 대변해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정치적 배경이 고루 분포되도록 위원들의 구성도 조정해야겠지만, 반대로 조사에 필요하다면 충분한 권한과 수단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충분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억울한 유족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분노하는 국민의 입장도 이를 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