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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여공이 들려주는 희망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24
조회
297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오늘 아침 너무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고, 컴컴한 창밖을 내다보다 문득, 왈칵 설움에 목이 메였다. 이유도 원인도 모를 그런 서러움에 ‘삶이 지랄 같다!’는 말을 한숨처럼 토해내고는 스스로 어리둥절해졌다. 갱년기?, 교황이 떠나서?, 방학이 끝나가서?... 이런저런 이유가 될 만한 것을 찾아봤으나 헛일. 그저 비 오는 새벽의 감상이거니 하고 말아버린다. 그리고 70년대 청계천 피복노동자에서 노조간부로, 주부에서 학생으로 변모하고 성장한 한 여성노동자의 자기역사를 들여다봤다. “열세 살 여공의 삶”은 신순애가 열세 살부터 시작한 여공생활을 자기서사 형식으로 쓴 책이다.

60년대 한국은 맑스의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 불리던 현상이 발생하던 때다. 산업자본주의의 초기,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된 국가는 저곡가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재생산비용을 낮추려 했고 이는 농부들의 파산을 초래하게 된다. 이로 인해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민이 증가하고, 이들은 도시 변두리에서 쪽방생활을 하면서 유일하게 가진 몸뚱이를 재산으로 노동현장으로 몰리게 되던 시기. 지은이가 지적한 것처럼 ‘일은 시키는 대로, 임금은 주는 대로’ 받아가며 하루 15-16시간씩 일하며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겨우 목숨만 연명하던 시기. 하루 종일 무릎 꿇은 자세로 허리 한번 펴지 못하는 노동조건에서 결핵과 같은 병과, 남녀 위계적인 노동조건에서의 성폭력, 노동자 수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화장실로 인한 생리적 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 배고픔 등에 시달리던 현실에 대한 묘사는 ‘인간이, 인간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노동교실을 통해 한글을 배우던 어린 학생이자 노동자인 그가 그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가로 성장하고 다른 여공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과정. 월 700원의 임금을 받아 10원(당시 대학생은 5원)하던 버스비를 30일 타게 되면 600원이 지출되어 밤11시가 넘어 끝나고도 2시간을 걸어 다녀야 했던 고통 속에서도 탈출구가 없었던 그는 노동교실과 노조활동을 통해 조금씩 승리와 자존감을 획득해 간다. ‘스스로 인간으로 우뚝 서는’ 과정이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은 ‘투쟁’을 통해서임을 확인시켜준다. 인권은 피와 눈물의 역사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럼 그 당시 그렇게 활발하던 여성노동활동가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왜 그들의 존재감이 사라졌는가에 대해 밝히고 싶은 것이 실은 저자의 목적이다. 그들이 사라지게 된 배경이 남들이 말하듯이 ‘돌아갈 가정이 있기’ 때문이거나, ‘힘들어서 여성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족 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부차적 존재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한 결론이다. 여기에는 국가의 치밀한 노조말살 정책과 폭력적 가부장성이 함께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전두환 정권의 노조정화정책으로 인한 ‘빨갱이’ 낙인, ‘블랙리스트’로 인한 해고와 빈곤의 나락,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수사관들의 성폭력은 여성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자 공포의 대상이, 나아가 공장 내에서의 남성들에 의한 성폭력은 여성노동자들이 피해자임에도 지탄의 대상이 되어 현장을 떠나게 하는 원인으로 작동했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여성들은 자기를 감추고, 숨죽이고, 감시의 대상이 되어 10년에 14번을 이사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즐겁게 시작했던 노조활동이 각각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고통과 상처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자신에 대한 회의까지 겹쳐 이중, 삼중의 고통으로 버텨내는 삶들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 대다수는 빈곤의 그늘에서 50-60대가 된 지금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산업역군으로 불리며 박정희 군사정권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한 그녀들은 지금 그 정권의 딸이 집권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가부장적인 국가의 폭력과 성폭력으로 인한 상처까지 떠안고서, 필요할 때 동원되었다가 정치적으로는 배제되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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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주변에서 빈민구호활동을 했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가
1973년 7월에 찍은 평화시장 봉제공장 모습(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 대학생이 된 내 딸이 난 아직도 어린애만 같고 위태로워 보인다. 이러할진대, 13살에 여공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종일을 구부려 일해야 했던 그와, 비슷한 다른 어린 여공들이 재단사나 공장장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고 그것이 노동착취의 협박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에 여성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분노가 서러움으로 둔갑한다.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여공들, 그렇지만 가족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당연한 도리로만 취급되던 그들. 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해 성매매를 해서라도 가족을 부양했던 그들은 그러나 ‘화냥년’이 되어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해야 했다. 그들은 지금 어떤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교황이 다녀간 며칠, 위로와 치유의 리더십에 대한 가치와 필요성이 화제다. 우리 사회는 상처를 생산만 할 뿐 그 치유는 개인에게 맡겨버린다. 어린 여공이 노조활동가가 되어 자존감을 갖게 된 그 순간 국가는 다양한 폭력적 방법을 통해 그 자존감을 어김없이 짓밟아 자괴감으로 둔갑시켰다. 그나마도 저자는 ‘살아남은 자’에 속한다고 한다. 여전히 열악한 조건에서 미싱을 돌리며 숨죽인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은 훨씬 많다. 그러나 반면, 그 때 그 여성들은 현재, 다양한 사회기관이나 조직에서 상담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 중이기도 하다. 그래서 70년대 여성노동운동가들은 여전히 사회민주화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여성/노동자들의 인권, 시민권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상처들, 그리고 그 상처를 둘러싼 투쟁들. 그 안에서 서로 위로하며 성장하는 또 다른 ‘여공들’이 있다. 세월호나 군대폭력을 둘러싼 아픔의 주체들은 노조활동을 통해 성장한 여공들처럼 그 투쟁을 통해 새로운 민주세력으로, 인권의 주체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지만 희망은 있다. 한번 깨우쳐진 권리의식은 법과 제도가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인권의 지평이 확장되어 올 수 밖에 없던 이유이다. 인권의 목록은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투쟁과 성장이 있기에 가능하다.

새벽, 눈물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세상을 둘러 싼 절망의 기운과 공기 속을 떠다니는 서럽고 아픈 자들의 한숨에 좀 울면 어떠리. 그럼에도 삶은 끝나지 않고 삶이 있는 한 가능성은 존재하는데.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존재인가? 교황이 매일 보는 문구 중에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서로 아낀다는 뜻입니다!” 상처는 서로를 아끼게 만드는 힘이다. 힘이 도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