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집에 대해 생각하다 1 (정보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17
조회
213


-서울 노마드, 아파트 탈출을 꿈꾸다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이사를 앞두고 문득 서울에 살면서 몇 번이나 이사를 했나 세 보았다. 서울에 산 지 25년. 그간 13번 이사를 했다. 평균으로 나누면 한 곳에서 산 기간이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2년 이상 산 집은 세 곳이고 나머지는 1년 6개월도 채 살지 못했다. 누군가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산에서 산 기간보다 서울에서 산 기간이 더 길어졌으니, 이젠 서울이 더 익숙하지 않느냐고 한다. 익숙한 건 맞는데, 스스로를 서울사람이라고 말하면 뭔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차피 21세기는 노마드의 시대라고들 하니, 나도 서울에 사는 동안은 이리저리 필요와 형편에 따라 움직이는 노마드처럼 산다 생각하자. 유목민으로 살아오지 않은 이상 공간이 주는 안정감을 갖지 못하는 노마드의 생활은 한 집에서 20년을 살았던 시기보다 내게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결혼하고 살게 된 아파트라는 평면적이고 공중에 떠 있는 폐쇄적인 공간은, 편리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조차 평면적이고 폐쇄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그런 공간.

아이를 나고부터 아파트가 아닌, 손바닥만 한 마당이라도 내 집 마당이 있는 집을 더욱 욕망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파트가 가진 편리한 장점도 많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아파트 마당에 한번 나가려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엘리베이터도 기다려야 하고,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 서로 쓰지 않아도 되는 신경도 써야 한다. 비가 와서 비를 잠시 맞으러 나가는 것도, 잠깐 바람 쐬는 것도, 눈을 맞으러 나가는 것도 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관문만 열면 집 마당이라 바로 바깥이긴 하지만, 공공장소는 아니라서 편안한 차림으로 잠깐 나갔다 들어올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면, 태어나서 계속 아파트라는 환경에서만 살아왔다면, 그런 것들이 번거롭다거나 굳이 그러려고 1층까지 내려갈 이유가 있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런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욱 아파트가 아닌 ‘집’에서 아이와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아이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자연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걸 나는 이론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터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00470308501_20140616.JPG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 단지
사진 출처 - 한겨레


부동산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집도 다 운때가 맞아야 얻는 거라고. 단독주택이 아니라면 빌라도 괜찮으니 아파트는 별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단독은 물론이고 빌라는 주차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이 많으니 별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서울에 단독주택이 많은 동네는 제대로 정비가 안 된 지역이 많아 아파트보다 지저분하다며 서울에서 단독주택에 살 꿈을 꾸는 내게 찬물을 끼얹곤 했다. 그러던 우리에게도 그 운과 때가 왔다. 아이가 올 3월부터 다니게 된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새터산 아래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있는 조용한 언덕 동네에 있다.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선 걸어갈 수가 없어 아침마다 차로 데려다 주고 저녁에 차로 데리고 와야 하는데, 맞벌이 부부에겐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피곤한 동선이다. 올 연말이 전세 계약만료라 어차피 집을 알아보긴 해야 하니 어린이집 근처로 집을 옮겨야 하나 생각하던 어느 날, 우연히 <옹동스>라는 만화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인데, 병에 걸려 죽을 뻔 한 고양이의 행복을 위해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감행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것은 내게 무슨 암시처럼 여겨졌다. 책을 읽은 그날, 퇴근 후 바로 어린이집이 있는 동네에 집을 알아보러 갔다.

단독주택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간 것은 아니었다. 정말 우연히도 그날, 그 부동산에 간 덕에 단독주택에 대한 회의를 품은 남편마저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게 한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지은 지 38년이나 된 집이지만 넓은 마당이 있는 집. 바로 옆은 야트막한 산이고 집 앞은 탁 트여 있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집. 어린이집 아이들이 새터산으로 나들이 갈 때 대문 앞 계단에서 잠깐 쉬어간다는 집. 물론 이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꽤 먼 여정이 남아 있다. 오래된 집이라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세 식구는 몇 달을 오피스텔에서 지내야 한다. 집을 고쳐본 적도, 지어본 적도 없는 내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리모델링에 앞서 집의 공간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 건지에 대한 고민. 아파트와는 달리 1, 2층에 다락방, 지하실, 마당, 창고까지 다양한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집의 공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나누고 구성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나와 가족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었다.

- 2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