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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대로 쓰면 망합니다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16
조회
575

박현도/ 종교학자



논문 2편을 표절해서 징계를 받은 교수가 대학총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도 아니고 스님입니다. 지난 5월 2일 동국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거국적, 거족적인 경사입니다. ‘표절 총장’은 표절의 격을 한껏 올린 금세기 최고의 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간 일반 교수들이 글쓰기로 고생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 보살도를 발휘하시어 스님이 직접 사바의 재활용 세계로 친림하셨으니 황공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실로 표절은 한국 대학의 자랑이요, 우리 민족의 쓰레기 재활용 정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민족문화의 정수입니다. 속없는 사람들이 하릴없이 상아탑이라고 불러대는 대학에서 스님 총장까지 나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시니 어린 잡것들은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불도를 깨우치시기 전 여러 사람들이 도 닦는 것을 보고 배우셨으니 표절은 불가의 오랜 전통일 수도 있는데, 우리 민족 불교가 정말 훌륭하게 계승하였습니다. 진실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입니다.

스님까지 나서주셔서 이젠 잡인 교수들도 마음 편하게 표절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표절을 넘어서 창조적인 논문 생산이 가능합니다. 대학의 논문 생산은 타 산업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른지 오랩니다. 대표적 신공 중 하나가 아는 사람 논문에 이름 얹기입니다. 요즘은 융합이 대세라 전공이 완전히 달라도 문제없습니다. 수학 논문에 문학전공 교수의 이름이 버젓이 들어가도 융합이라고 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입니다. 현대화되면서 사라진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아직도 대학에서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얹히고 얹어주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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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뉴스1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이 솟습니다. 표절 총장이 나왔는데, 이젠 이름 얹는 신공으로 논문 무임승차 총장을 배출해야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표절보다 더 멋진 것이 논문 무임승차입니다. 표절은 마우스로 긁는 수고라도 하지만 이름 얹기는 정말 아무 것도 안 해도 됩니다. 진정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이번 표절의 미학은 불가에서 큰일을 하셨으니 앞으로 무임승차는 기독가나 유가에서 보여준다면 종교간 화합 정신까지 덤으로 고양될 것입니다.

물론 일반 잡인 교수들이 하면 더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표절을 해도, 남의 논문에 그냥 편히 이름 얹어도 승진의 조건을 다 채우기가 어렵다는 불평이 많은데, 표절 없이 논문 잘 쓰는 이상한 품종의 교수들을 많이 채용하여 싼값에 부리고 난 후 피자에 토핑을 얹듯 이들 잉여교수들이 쓴 논문에 이름만 얹게 한다면 우리 민족의 피자 제조식 논문 생산이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학문적 성취력을 고양한 잡인 교수를 총장으로 선출한다면 실로 금상첨화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현대는 융합의 시대이니 남의 논문에 이름을 얹을 때는 전공을 다르게 해야 합니다. 통섭과 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빛나게 해야 하니까요. 자, 지금 표절하면 안 된다고 교정에서 시위하는 정신 나간 교수들은 빨리 전공 다른 교수를 찾아 이름을 얹어야 합니다.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시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표절보다 더 빨리 생산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남의 논문에 이름 얹는 것밖에 없습니다. 저도 협조자를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이렇게 한가롭게 글 쓰고 있다가 망하기 십상입니다. 논문 제대로 쓰면 멍청한 겁니다. 패가망신의 지름길입니다. 급합니다. 남의 논문에 이름 얹으러 나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