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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를 높이자!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15
조회
278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흔히 우리 인간은, 우리가 다른 동식물들과 다른 탁월한 생명적 가치를 지녔다고 여긴다. 탁월성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 생각을 인정할 수도 있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이 다른 동식물들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력을 탁월성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면, 특히 생태주의자들은 이러한 생각은 그 전제부터 틀렸다고 할 것이다.

배타적인 지배력은 약육강식의 자연적 생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개체로서의 나 자신 또는 종으로서의 집단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서 다른 개체 또는 다른 종의 집단을 어떻게 파괴해서 활용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자연적 생명의 세계다.

우리 인간들 역시 자연에 속한 존재로서, 이러한 자연적 생명의 원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연적 생명은 다른 동식물들이 지닌 자연적 생명과 달리, 도구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도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생산 · 활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도구에 들어 있는 사회성을 바탕으로 해서 각자의 자연적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성은 기본적으로 바로 도구의 필연성과 도구의 사회성에서 기인한다. 이에 인간의 자연적 생명은 사회 속에서의 자연적 생명으로 전환된다. 또한 도구는 기본적으로 자연을 대상으로 해서 생산 · 활용된다. 그래서 도구는 크게 인간 이외의 자연을 향한 도구와 자연인 인간을 향한 도구로 나뉜다. 각종 기계기술들은 주로 전자에 해당되지만, 법과 제도 및 그에 따른 각종 기구들은 후자에 해당된다.

중요한 것은 사회 현실 속에서 누가 더 많이 도구를 소유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자신 및 자기 가족의 자연적 생명을 더 잘 유지 강화할 수 있고, 그래서 이를 둘러싸고서 치열한 경쟁적 투쟁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 투쟁을 통해 인간의 자연적 생명은 사회적 생명의 형태를 띠게 된다. 사회적 생명이 자연적 생명과 다른 근본 특징은 대타적(對他的)인 가치의 우월성, 즉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욱 우월한 가치를 지녔음을 인정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심지어 자신의 자연적인 생명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사회적 생명은 자연적 생명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때 추구하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가치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사회적 생명 역시 자연적 생명과 마찬가지로 배타적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생명은 자연적 생명에 비해 더욱 더 배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의 총량은 사회적으로 결정되기에 그 양이 일정하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가치의 상대적 우월성은 정확하게 제로섬의 구도를 지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누리는 만큼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없고,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만큼 내가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생명인 것이다. 사회적 생명이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권력이다.

오늘날 예외가 없을 정도로 세계 전체를 포섭하는 전 보편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까닭도 알고 보면 사회적 생명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이 인간 생명을 끝없이 질곡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를 위한 이윤을 둘러싸고서 모든 투쟁이 벌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 그 투쟁은 사회적 생명 즉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다. 이윤을 통한 자본의 확충은 곧 나 자신의 사회적 생명의 확충, 즉 권력의 배타적이고 대타적인 확충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배타적인 상대적인 가치의 우월성, 즉 자신의 사회적 생명에 입각한 권력에 집중하는 한, 그 사회는 갈수록 극단적인 위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오늘날처럼 온갖 공적인 매체가 최첨단으로 발달된 상황에서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누구든지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자신의 상대적인 가치의 열등함을 확인하게 되고, 그 반대급부로 어디에서건 어떤 방법으로건 자신보다 더욱 열등한 자들을 물색해서 자신의 상대적인 가치의 우월함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고, 그러한 과정이 악한 긍정적 피드백의 과정을 거쳐 점점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가치의 살과 피를 파먹고 흡입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처참한 삶이 의식/무의식의 통로들을 거쳐 각자의 존재를 근본에서부터 공격하는 이 대대적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지성적인 촉수를 세워 인간 존재의 위기를 염려하는 자라면 이 문제를 이미 늘 머릿속에 무슨 무거운 쇳덩이처럼 이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는가? 개인들 간의 관계도 문제거니와 집단들 간의 관계가 더욱 문제다. 크고 작은 온갖 형태의 집단들, 그 집단들 자체가 마치 사회적인 가치인 양 위세를 떨면서 작동하게 되면 그 위험성은 크게 높아진다. 집단에의 소속 자체를 둘러싸고서 각종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면서 예사로 폭력을 행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든 민족이든 인종이든 계급이든 당파든 간에 배타적인 강력한 감정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서 전선을 형성하면서 폭력적인 공격 수단들을 총동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는 개개 집단들이 자기들만이, 자기들이야말로 인류 보편의 궁극적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또 실천하고자 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 속에 다양성과 특수성들을 충분히 담보해 내지 못한 상태에서 보편을 주장할 때 그 보편 자체가 이미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폭력을 확대 · 재생산해 낸다는 사실이다. 특히 동물세계의 배타적인 자연적 생명의 형태를 모델로 삼아 약육강식이야말로 생명 보편의 원리임을 강조하는 저급한 보편성은 가장 위험한 폭력성을 수반한다.

무엇을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을 것인가? 이 물음이야말로 최고도의 지성을 가장 긴급하게 요구하는 현실의 근본 물음이다. 개인 간이든 집단 간이든 제로섬 게임의 구도를 띨 수밖에 없는 배타적인 소유와 향유를 통한 가치를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는 한, 결코 대대적인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함께 향유함으로써, 함께 향유하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더 가치가 높아지는 이른바 질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아야만 한다. 말하자면 최고도의 공향유를 필수적인 조건으로 해서 성립하는 가치를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 베토벤이 독일 사람이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시인 김혜경이 일제 강점기 조선 식민지의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배타적인 민족 감정을 불러일으켜 그 민족 감정을 가치로 삼아 향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의한 일방적인 가치 구도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공향유의 사회적 가치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혁명가들이 인류 공영의 평화를 외쳤는가. 그것은 인류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가치를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것이었다.

최대한의 공향유를 필수 조건으로 하는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삼을 때, 배타적인 사회적 생명의 차원에서 문화적 생명의 차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인간 생명이 왜 다른 동식물의 생명보다 탁월한가? 자연적 생명에서 비롯된 배타성을 극도로 추구하는 사회적 생명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배제를 최대한 거부하는 최고도의 공향유를 필수 조건으로 하는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삼아,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을 가장 격렬하게 불태우고자 하는 문화적 생명의 발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근에 필자가 어느 잡지에 기고한 시 한 편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 손을 놓아라>

너희들 우리, 괴물이여

그 손을 놓아라
움켜쥘 줄밖에 모르는
그 손을
남의 목을 힘껏 죄는
그래서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그 손을 놓아라

유령인 그 손
네가 쥐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유령, 돈이 아니다
또 하나의 유령, 권력이 아니다
너는
단 한 번밖에 없는 생명을 쥐고 있다

살 속 깊이 심장에 박혀버린
그 손을 거두어가라
흥건한 피비린내
한여름 홍수로도 씻어낼 수 없는
부패한 오염

위태롭게 걸린
인간, 아예 파괴되어야만
그 손을 놓을 것인가
마침내 흠뻑
혁명의 양잿물을 마시고서야
그 손을 놓을 것인가

애초에 그 손은
춤추는 손이거늘
아름다움을 약속하는 손이거늘
애무하는 손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