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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불통을 소통하는 바이러스 (이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20
조회
224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온 나라가 메르스로 술렁이고 있다. 5월 20일 첫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 6월 10일 현재, 사망자 9명, 확진자 108명, 의심환자로 격리된 사람이 거의 3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중동發 코로나바이러스(MERS-CoV)에 의한 신종 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는 특히 만성질환자, 면역저하자, 노약자에게 폐렴이나 급성신부전 등 중증 합병증을 일으켜 위험하다. 아직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데다, 사스나 신종플루와 달리 30-40%에 달하는 사망률로 인해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바이러스만큼이나 무서운 속도로 한국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다. 바이러스와 공포의 확산은 양 방향에서 우리 일상의 기반을 잠식하며 파괴한다. 메르스 사태의 국내 진원지라 알려진 경기 평택시는 인구 45만의 터전인 도시 전체가 거의 마비된 상태고, 현재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대학교의 10.5%인 2,199개 기관이 휴교에 들어갔으며, 전북 최초로 메르스 양성 환자가 발생한 순창의 한 마을은 마을 전체가 통째로 격리 조치되었다. 불안한 시민들은 모임과 회식, 여행을 취소하고 각자의 집으로 숨어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마스크가 차단하고, 멸균 손 세정제가 타인의 흔적을 남김없이 지워낸다. 만남과 접촉이 위험시되고, 단절과 고립이 장려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메르스가 초래한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며 ‘소통’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는 한편으로는 지구화의 패러독스라 불리는 글로벌한 차원과, 다른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권의 ‘불통’으로 대표되는 국내적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최근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은 지구화의 환경과 무관할 수 없다. 중동의 메르스가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 것은 교통 등 소통 테크놀로지의 비약적 발전, 이를 통해 접촉이 국경을 넘어 전면화된 지구화의 조건과 직결된다. 하지만 지구화는 이러한 ‘소통의 극대화’가 ‘단절의 극단화’와 공존하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며, 흔히 거론되는 지구화의 패러독스란 이를 지칭한다. 가장 쉽게는 소통의 상징인 스마트폰의 역설을 떠올리면 된다. 각자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아무런 대화도 없이 밥을 먹는 가족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멀리 떨어진 사람, 낯선 사람을 언제 어디서나 나와 연결해주는 스마트폰은 정작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가장 가까운 이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기도 하다. 소통의 얼굴 뒤에 극단의 불통을 숨기고 있는 것, 나아가 불통을 소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의 역설이 상징하는 지구화의 패러독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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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를 치료한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바이러스는 접촉을 통해 확산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접촉선을 따라 공포와 불안과 불신이 함께 흐른다. 공포와 불안, 불신의 무차별적 소통은 극단의 불통과 고립이 완성될 때만 진정될 수 있다. 그 완성은 ‘불가촉’의 전선(戰線)을 사방에 그어대는 것. 환자를 돌봐준 사람들의 잇따른 감염 소식은 이 불가촉의 전선이 누구보다 먼저 아내와 남편 사이,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에 그어질 것을 요청한다. 메르스가 불러일으킨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 즉 접촉이 고립을 초래하고, 소통이 극대화될수록 단절이 극단화되며, 불통의 호소가 소통의 유일한 내용이 되는 현상 속에서 지구화와의 유비를 떠올리는 것은 그저 엉뚱한 생각일까.

한편 메르스의 급속한 전파와 그것만큼이나 불길한 공포의 확산은 박근혜 정권의 ‘불통’의 직접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불통’은 박근혜 정권의 출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실정(失政)의 핵심을 함축하는 단어다. 연이은 인사 참패나 세월호로 인한 사회분열 등은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스런 불통의 산물들이다. 메르스에 대한 대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확진환자 발생 거의 2주 후에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통령의 때늦은 대처에 메르스 사태가 골든타임을 놓친 제2의 세월호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현재 인터넷에 난무하는 흉흉한 소문과 근거 없는 처방들 역시 기본적으로 정부의 뒤늦은 대응과 정보통제에 기인한다. 메르스의 위험에 먼저 반응한 여론과 소통해 초반부터 기민하게 대응하고 정확한 정보와 행동수칙을 제공했더라면 바이러스의 전파도, 공포의 확산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월호부터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이번 정부는 유독 유언비어와 괴담에 민감하고 엄격하다. 바이러스를 잡기 전에 유언비어 유포자부터 잡으려 한다. 하지만 정상적이고 건강한 소통이 가능할 때 사람들은 유언비어와 루머에 집착하지 않는다. 유언비어와 괴담 자체가 정부의 불통과 무능의 결과이다. 메르스가 정상적이고 건강한 면역체계를 갖춘 사람에게는 그저 독한 감기 정도로 지나갈 수 있는 것처럼, 유언비어와 괴담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소통시스템 속에서는 한갓 지나가는 이야기로 금새 사라진다. 이 정권이 소통의 얼굴 뒤에 숨긴 자신의 불통을 철저히 성찰하지 않는 한, 바이러스보다 먼저 공포와 불신이 우리를 감염시키고 무너뜨릴 것이다. 울리히 벡이 말했듯이, 각종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테러 같은 재난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그 ‘재난의 상상적 효과’, 즉 공포와 불신의 확산과 그로 인한 진정한 소통과 신뢰의 붕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