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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이야기(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4-14 10:19
조회
479

석미화/ 평화활동가


 내게 4월은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달이다. 해마다 4월이 되면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4월을 위해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4월에 베트남전쟁 한국군 피해자를 만나고, 4월에 피켓을 든다. 언제나 4월은 바빴다. 4월을 중심으로 1년이 돌아왔다.


 왜 베트남전쟁을 4월에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야 베트남전쟁이 4월 30일에 끝났으니까. 하지만 왜 베트남전쟁을 기억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그 전쟁을 왜 4월 30일에 기억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난 다시 반문하게 될 것이다. 그럼 언제로 기억하는 게 좋을까요? 이건 절대로 시비를 걸거나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정말 진지하게 우리가 이 전쟁을 기억하는 날을 언제로 하면 좋을지 묻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이 치렀던 두 개의 전쟁,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대개의 나라가 전쟁이 끝난 날을 기억하는데 비해 한국전쟁은 발발일로 기억되고 있다. 또 하나의 전쟁, 베트남전쟁은 기억하기 위한 ‘날’이 없다. 이 전쟁을 추념해야 할지 기념해야 할지, 적어도 현재 국가의 기억 안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다. 어쨌거나 국가보훈처가 예우하는 보훈 대상 중 참전유공자는 이 두 개의 전쟁 참전자를 대상으로 한다. 유공의 범위에는 포함이 되었지만 6.25전쟁이 각각의 수많은 전투와 참전자에 대한 추도식과 위령제가 열리는 것에 비하면 베트남전쟁 관련된 국가의 공식적인 ‘날’은 없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대부분의 무관심 속에서 이 전쟁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가해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시민사회와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기억. 그리고 4월의 현장에서 ‘성찰’과 ‘기념’의 기억이 부딪힐 때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만날 수 없는 각자의 주장 속에 때로는 그들의 소리에 귀를 닫고 행사를 열어야 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다. 참전군인들은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고발하는 전시장 앞에 천막을 치고 항의 농성을 했고, 분노를 담은 현수막을 달았다. 광주에서는 그들 여러 명과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설득을 해야 했는데, 난 그냥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수차례의 경험 속에서 분노한 그들의 주장과 내 이야기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력감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하기에는 자기변명이라 느껴졌다. 참전군인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점점 고민이 깊어졌다.


 운동의 과제와 고민 속에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에 대한 연구>(2021, NPO지원센터, 하단 링크 참조)를 펴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참전군인’과 ‘평화 활동’이라는 말은 썩 어울리거나 관련 있는 단어가 아니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과 그들의 생각을 알리고 싶었고, 그 가능성을 통해 참전군인과 평화 활동의 동료로 만날 것을 제안했다. 모든 집단이 그 안에 다양성을 가지고 있듯 참전 단체로 대표될 수 없는 그들 사이의 다양성에 주목하였으며 우리가 참전군인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성찰하고자 했다. 그리고 참전군인을 역사적 사건에 대상화된 존재,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 고엽제나 PTSD와 같은 치료 대상으로서 ‘비운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 필자


 이 책에는 평화 활동을 하는 네 명의 참전군인 이야기를 담았다. 평화재향군인회 창립자이자 1965년 맹호부대 1진으로 월남에 간 전투소대장 표명렬, 1971년 맹호부대 포병 하사관으로 파병되어 귀국 직전 안케패스 전투에 참전한 김낙영, 1969년과 1971년 남들 한 번 가기도 힘든 월남전을 두 번이나 경험한 백마부대 전투병 양정석, 1967년 청룡부대 전투병으로 참전해 크게 부상당한 뒤 귀국한 상이군인 류진성. 그들이 겪은 참혹한 전장의 경험은 평화에 대한 깊은 성찰과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연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4월 말에는 웨비나를 준비하고 있다.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은 가능하다’는 결론을 맺고 있는 연구는 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모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그 실천을 위해 늘 4월이면 해왔던 활동을 올해는 좀 다르게 해보려 한다. 참전군인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촉구하는 활동에 나서는 것, 그들과 평화 활동의 동료가 되어 함께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모여 언젠가 참전군인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성명서가 나올 날을 기대하며, 그렇게 나의 4월은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며 흐른다.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에 대한 연구>
https://blog.naver.com/snpo2013/222599870490


(연구보고서 바로가기)
http://www.snpo.kr/data//file/npo_aca/1893498642_PR5WyjEL_01_ED999CEBA0A5ED96A5EC97B0_ECB0B8ECA084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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