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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거짓말 잡아내기 1: 언어적 징후(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4-09 14:21
조회
227
이윤 / 경찰관


프로파일링을 다룬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FBI 행동분석팀 기드온이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The truth will set you free: 요한복음 8장 32절)라고 혼잣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본 후로 나는 간혹 잘못된 일을 해명 또는 수습해야 할 때 불리한 내용을 숨기거나 변명하고 싶은 유혹이 있어도 위 문장을 되뇌며 사건의 전모를 사실 그대로 드러내곤 했다. 행복은 자유에서 나오고, 자유는 진실에서 나온다.


정치의 계절이 왔다. 여러 매체에서 정치인들이 말을 늘어놓고 있다. 누구 말이 옳은지, 누굴 믿어야 하는지 듣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요즘은 과거의 언행과 글이 디지털 자료로 저장되어 거짓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걸 찾아서 비교‧판단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100% 정확하진 않지만 알아두면 재미있는 손쉬운 거짓말 탐지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범죄 용의자 신문기법인 미국의 리드테크닉(Reid technique)은 행동분석 징후를 알려준다. 이 방법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고 그저 오랜 실무적 경험의 결과물에 가깝다. 따라서 이 징후가 발견된다고 하여 모두 거짓말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거짓여부 확인이 필요한 곳을 알려주는 단서로 활용하면 좋다. TV에 정치인이 나와 토론하거나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징후들을 하나씩 적용하여 거짓말을 찾아내는 것도 탐정놀이처럼 은근히 재미있다.


리드테크닉 행동분석 징후에는 언어적, 준언어적, 비언어적 징후가 있는데, 이번에는 언어적 징후를 소개한다. 언어적 징후는 진술자가 말하는 ‘내용’에서 드러나는 거짓 징후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긴장 최소화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1. 부적절한 답변


질문자가 요구하는 답이 아닌 적절하지 않은 답변을 함으로써 ‘대답은 했다’는 명분도 취하고, 진실을 숨기는 이득도 챙기는 전략이다. 이때 부적절한 답변에는 부분적으로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에 거짓으로 말할 때의 긴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난주 수요일에 A에게서 사과상자를 받았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그날 A를 만난 적도 없어요.”라고 한다면 부적절한 답변이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저는 그날 사과상자를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A가 아닌 제삼자를 통해서 사과상자를 받은 사람이라면 위 답변처럼 A를 만나지 않았다는 진실 뒤에 거짓을 숨겨, 듣는 이로 하여금 ‘A를 만나지 않았으니 사과상자도 받지 않았구나’라고 해석하기를 바라는 답변을 한다. 질문자가 부적절한 답변임을 알아챘다면 그것이 부적절한 답변임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다시 질문함으로써 진실을 구할 수 있다. “저는 그날 당신이 A를 만났는지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사과상자를 받았는지 물어본 것인데 당신은 그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다시 묻겠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어떤 방법으로든 A가 주는 사과상자를 받았나요?”


2. 불필요한 답변


질문이 있으니 대답은 해야 하지만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 자체에서 발각될 우려도 있고, 앞으로 눈더미처럼 커질 거짓말을 계속 기억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래서 질문자가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는 대신 불필요한 답변을 하는 전략을 쓴다. 예를 들면 “지난주 수요일에 A에게서 사과상자를 받았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A와 그다지 친하지 않습니다. A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도 늘 저를 만나면 뭔가 부탁을 하곤 해서 저는 참 불편합니다. 그날도 A가 저에게 사업 관련 부탁을 했지만 저는 A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불필요한 TMI 답변이다. 이때에도 그 답변이 불필요한 내용에 대한 것임을 지적하고 다시 한번 반복해서 질문할 필요가 있다.


3. 생략


생략이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건너뛰어 말하지 않는 것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새로운 사실을 첨가할 필요도 없고, 이전에 말한 사실과 비교하거나 앞뒤가 모순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없으니 긴장도 적다. 그러나 생략은 단답형의 구체적 질문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지난주 수요일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세요.”와 같은 개방형 질문에 대한 긴 답변에서 잘 나타난다. 생략이 의심되는 단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소개해 드리겠다.


우리 뇌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주어진 정보만으로 무의식적 추론에 의한 빠른 결정을 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속기 쉽다. 귀찮고 힘들더라도 주의깊게 청취하고 하나씩 따져가며 분석해야 진실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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