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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투표율 100%를 꿈꿉니다(박록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4-03 14:19
조회
199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투표는 권리일까요, 의무일까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문입니다. 헌법 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밝혔습니다. 공직선거법 등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적 요건, 만 18세 이상의 연령 요건을 충족한 경우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에 대한 선거권 자격이 있음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요. 투표는 헌법적 권리일 뿐 아니라 누가 이 공동체의 주인인지 확인시켜주는 절차적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벌칙이 있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물론, 유럽의 벨기에, 그리스를 비롯해 호주, 브라질, 싱가폴 등 여러 나라에서 투표를 의무화한 곳도 있긴 합니다.


헌법에서 가장 먼저 규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입니다. 중학교 1학년 사회탐구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이니 모르는 분이 거의 없을 터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의 정신과 원칙이 일상적으로 실천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선거권임 또한 명백합니다.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여타 다른 권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권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두 차례의 선거만 돌아보겠습니다.


4년 전인 2020년 4월 21대 총선 때 4399만 4247명 유권자 중 2912만 7637명이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66.2%로 2016년 20대 총선 때(58.0%)보다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1486만 6610명은 아마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헌법적 권리 행사를 포기했습니다. 지역구 253석 중 특정 정당 쏠림 현상이 일상화한 영호남 등 지역을 제외한 서울권 충청권 등에서 투표권을 포기한 이들의 숫자보다 더 큰 표차를 드러낸 지역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등 범민주당의 의석수가 183석에 이르는 매머드 정당이 탄생하게 됐죠.


이보다 더 가까운 2022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 4419만 7692명 중 3406만 7853명이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0.73%p, 24만 7077명의 유권자의 투표가 당락을 갈랐습니다. 기가 막힐 만큼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바뀌었으니 당선자에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는 자신의 덕이라는 뿌듯함을 가질 만했고, 낙선자에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는 분통함을 삼켜야 했을 것입니다. 1012만 9839명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당선자를 지지했으면서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렸겠지요. 낙선자를 지지했지만 투표권 행사를 포기한 유권자들은 땅을 치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일 테고요.


선거 이후의 모습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사소한 차이로 결과는 바뀌지만,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압수수색이 횡행하며 언론 자유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 복판 159명 청춘들의 애꿎은 죽음과 남은 이들의 사무치는 원통함에도 제대로 책임감을 갖는 이가 없습니다. 잘못된 명령으로 숨을 거둔 해병 사망사고 조사 결과를 대통령실이 나서서 뒤집으려 한 혐의가 짙습니다. 대통령이 2년 동안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으며 ‘반(反)정치의 정치’를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더욱 극심해지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기득권 집단으로서 의사에 대한 국민의 반감에 기대서 별 계획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은 또다른 반(反)정치겠지요.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뒤집으며 국회의 역할과 기능을 무시하는 편법 정치와 더불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일상다반사로 쓰는 것은 견제와 감시를 취지 삼은 헌법 체제를 부정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예 본인의 배우자와 가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에는 아연질색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식민지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대통령이 부정하며 삼권분립을 무너뜨린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입니다. 이를 비롯해 외교 안보에서 실질적 국익에 대한 도모가 아닌 극단적 갈등의 한 축을 자임하며 냉전적 대결의 장으로 온 나라를 몰고 들어갔습니다. 한반도는 언제 포탄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는 또다른 세계의 화약고로 바뀌어가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야당이 잘한 것도 아니지요. 183석의 거대 야당이 지난 4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면 역시 한숨만 나옵니다. 입법권력은 있었지만 정부가 국회를 무시하고 야당 대표를 탄압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변명하는 것으로 결코 면책할 수 없습니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동시에 갖던 2년 동안 보여준 불완전하고 무계획한 각종 정책과 입법은 우리 사회의 진전에 별 기여가 없었습니다.


오는 10일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습니다. 2028년 4월까지 우리의 민생과 국가경제, 외교안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지고 입법 활동에 나설 254명의 지역구 국회의원과 46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선출됩니다.


누군가는 ‘네가 뭔데 가르치려 드느냐’고 기분이 나빠지실 수도 있고, 투표의 권리를 의무처럼 만든다고 생각하며 불편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시민의 윤리적 책임 정도로 이상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그 놈이 그놈’과 같은 인식을 가질 정도로 투표의 효능감이 없고,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뿌리 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표권은 단순한 개인의 권리만은 아닙니다. 행정권력, 입법권력을 대리할 이들을 뽑음으로써 공동체의 운명이, 우리의 삶과 나의 삶이 바뀔 수 있는 중차대한 결정의 첫 시작입니다. 지지정당이 어디든 한 명도 빠짐없이 투표합시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일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확신합니다. 22대 총선, 투표율 100%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