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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지역화폐 전성시대, 언제까지일까?(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31 17:20
조회
931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지난 2012년에 시작해서 전 세계적인 지역화폐 모범도시로 일컬어지던 영국 브리스톨시의 지역화폐 브리스톨 파운드가 얼마 전부터 유통을 중단했다.


 브리스톨 파운드가 미친 영향은 컸다. 특히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검토할 때 항상 거론되던 사례였다. 기존 법정화폐와 동일한 가치로 환전이 가능하면서도 공동체 경제를 지키기 위한 목표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적지 않았다. 시가 지원을 하되 운영은 민간영역이 담당하는 시스템은 지역화폐의 대안이 될 만했다.


 하지만 가맹점 관리 및 운영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코로나19 시국이라는 대외변수도 있었지만, 정책 또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재정에서 파열음이 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구글


 우리나라도 이미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미도입 지역을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여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어쩌면 예고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지역화폐의 특징은 지자체가 적극 나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민간의 공동체형 지역화폐와 별도의 트랙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에서 먼저 시작된 지역사랑상품권은 2018년까지 60여개 남짓한 지자체에서만 운영되고 있었다. 명색만 유지할 뿐 사실상 유통이 안 되는 지역화폐도 많았다.


 그러나 2019년 정부가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이를 타개할 정책을 찾다가 지역화폐 활성화에 눈을 돌리면서 불과 2년여 만에 지역화폐 전성시대란 기사제목이 붙을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불붙기도 했는데, 이와 별개로 이렇게 지역화폐가 활황을 누리는 것은 유통촉진을 위한 ‘인센티브’ 때문이라는 의견에 반론이 없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에서는 못 쓰고 지역 골목상권에서만 쓸 수 있는 불편한 돈이기 때문에 재정을 들여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인센티브의 규모가 이제 ‘10% 할인’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것이 폭발적인 성장의 견인차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높이 날수록 떨어질 때 더 아프다.


 정부는 2019년 지역화폐 활성화 방침을 세우고 첫해에는 전국 지역화폐 발행액 목표 2조원을 수립했다. 2년 뒤인 2021년엔 15조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10% 인센티브의 8할이 정부재정이다.


 정부는 애초 4년간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원을 예고했다. 2022년까지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역화폐가 이미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변수도 크다. 어쨌건 언제까지 인센티브를 정부 재정으로 이어갈 수는 없다.


 만일 정부 재정지원이 끊어지게 된다면 각 지자체의 지역화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시흥시청 지역화폐팀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전화내용이 있다. ‘10% 언제까지 해요?’ 어제는 이런 전화도 받았다. ‘10% 안 하면 누가 지역화폐 사용해요.’


 ‘원래부터 소비쿠폰이었어’라고 지역화폐의 역할을 규정하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으면 할 말이 없다. 지역화폐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지역 내 사회자산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은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마도 10%의 유혹이 없어진다면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는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이제라도 달콤한 인센티브 없이도 굴러가는 지역화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공동체 경제의 선순환을 위한 지역화폐 사용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고 싸운다. 지난 30여 년간 별다른 지원 없이 공동체형 지역화폐를 일구기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면구스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와중에 공문 하나가 떨어졌다. ‘지역 차원의 4차 산업에 대응하고자 새로운 산업기회 창출, 사회적 취약계층 포용, 지역 현안 효과적 해결 등을 위한 지능 정보화 기술 기반의 지역화폐 활성화 우수사례 평가…’ 읽기도 숨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