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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라는 화두(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8-26 16:27
조회
170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단상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입장하는 줄이 길었다. 영화관에 발을 들이기 위해선 마주한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문과 문 사이는 한 사람이 서 있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이 공간을 무사히 통과해야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사이 공간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손을 소독하고 나서야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절차로는 흡사 멸균실로 들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정작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한 줄은 거리두기를 하지 못하고 서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 웃지 못 할 풍경은 코로나가 바꿔놓은 일상이다. 두 개의 문은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극장 측의 눈물겨운 자구책이지 싶다.


 극장가가 어려움을 맞고 있는 이때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일본 제국주의와, 여기서 파생한 전범기업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일본인들을 조명한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제목부터 무척 비장한 이 영화는 역사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성찰적 시각을 담았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사회를 위정자와 여러 다양한 층위의 시민들로 구별해보지 않고, 뭉뚱그려 보고 있는 ‘반일’의 시각에서 보자면 일본사회 내부의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는 큰 충격과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물론 한일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사회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사회 연대는 있어왔지만, 반성을 촉구하며 결행한 것이 미쓰비시중공업, 미쓰이물산, 대성건설 등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연속폭파사건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1974년부터 75년까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늑대부대’와 ‘대지의 엄니부대’, ‘전갈부대’에 의한 아홉 차례의 연속 폭파사건으로 일본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사회에서 ‘늑대’라는 말은 금기어라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당시 일본사회가 얼마나 큰 충격에 휩싸였는지 짐작할 만 하다. 단지 형식적 과격함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제국주의와 전쟁 책임에 대한 반성 없는 자국민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반일’을 외친 그들의 목소리가 일본 사회를 흔들어 깨웠다. 방식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들의 동기와 용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영화를 만든 김미례 감독도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며 수없이 고심한 대목이었을 것이다.



사진출처 -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예고편


그들을 정당화시키려고 하는가? - 모른다.
그들의 폭력을 지지하는가? - 모른다.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가? - 모른다.


- 김미례 감독,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온 심정이 딱 그랬다. 대의와 명분은 충분했으나 폭력은 지지할 수 없다. 허나 그들의 방식이 이 사건을 주목하도록 만든 이유였으니 이 폭력을 지지해야 하는가, 지지해서는 안 되는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부대원들과 그 지지자들이다. 감독은 부대원의 성찰적 삶의 발원이 된 일본 내부 식민지 홋카이도의 아이누 모시리와 오키나와의 역사를 조명하고, 60년대 베트남전쟁 반전운동과 아시아에 대한 전쟁책임을 지적한 전공투(全共鬪) 세대였던 그들과 거기서 파생된 운동이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잔당으로 오해받아 형을 받고 옥살이까지 했던 무장전선의 지지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공투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일본사회에 던진 폭탄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해의 역사를 성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가해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베트남전쟁을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가해와 피해라는 말의 사용조차 어렵기만 하다.


 가해와 피해는 한 사람 안에 존재하고, 한 사회 안에 존재하고, 한 나라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는 여태껏, ‘가해’와 ‘피해’라는 단순화된 언어 사이에 수없이 존재하는 언어들을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데 있어 쉽사리 ‘가해’와 ‘피해’를 꺼내지 못하는 이유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명징하지 않은 단상을 이어가 본다. 화두는 ‘모른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