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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도 성별이 있다(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8-26 16:22
조회
112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올 해는 유난히 길었던 장마와 폭우로 인해 한반도가 물바다가 되었다. 나와 남편의 고향은 웬만한 비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지역이었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남편 본가 동네에 자리한 커다란 저수지 둑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동네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대피처라고 마련한 곳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다행히 남편 여동생이 어머님과 함께 있어 어떻게든 무조건 탈출하라 권유하고, 내 남동생과 언니에게 부탁하여 나의 본가로 모셔놓고 바로 내려갔다. 그 지역은 시골이라 홀로 사는 여성노인들의 숫자가 더 많다. 소방차도 못 올라올 정도로 도로가 폭우로 유실된 상황에서, 할머니들이 홀로 걸어 나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장마와 폭우에 대처하는 국가안전행동지침 혹은 요령을 보면서 안전에 얼마나 취약한지, 국민 누구나 늑장대처와 책상머리 매뉴얼만 읊어대는 관료들을 보면서 분통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매뉴얼은 현장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항상 사건이 먼저이고 분석이 뒤따르는 것이 이치다. 그러나 이번의 대처는 과거의 분석결과-그것도 가상, 혹은 상상에 따른 지식관료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더 큰 재난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번 재난은 천재라기보다는 인재에 가깝다는 여론이 이는 이유다.


 제대로 된 대피처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방송을 통해 무조건 집을 나오게 하여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노인여성들을 위험천만한 장소에 모아놓고 마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붙잡아만 두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화가 났다. 소방관들 두 어 명만 올려 보냈다는 말, 그들도 어찌할 도리 없이 맥 놓고 있기만 하다는 말도 들렸다. 위기 상황을 대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노인여성들의 거동을 도와줄 도우미들을 파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도로유실을 이유로, 이 노인여성들을 불안한 장소에 묶어두기만 했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상황을 들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안전한 장소로 옮겨왔을 뿐이었다. 결국은 또 다시 모든 재난이나 위기는 가족들의 책임이 된다. 복지가 가족들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처럼.


 재난은 여성에게 더욱 더 취약하다. 아주대학교 이국종 교수가 재난과 응급상황에도 계급이 있다고 하듯 재난에도 성별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1991년 방글라데시 사이클론 나르기스에 의한 사망자 14만 명 중 90%가 여성
-2004년 동남아시아 쓰나미 희생자의 67%가 여성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성별 사망자 수는 대부분 연령대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많았고, 고령층의 여성사망자 수는 남성에 비해 압도적
-2014년 한국 세월호사건 당시 남학생은 전체의 27.3%가 생존했지만 여학생은 19%만이 생존
-2018년 제천 화재, 총 29명 사망, 여성 23명 사망
-2018년 종로여관 방화로 6명 사망, 여성 3명



사진 출처 - 뉴시스


 여성의 재난 불평등은 여성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낮은 경제적 지위와 연관이 있다. 여성인권이 높은 나라에서는 재난 시 사망자 비율이 여성과 남성이 비슷하다. 또한 여성은 긴급 상황에서 아이와 노약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신속한 피난이 어렵고 적절한 교통수단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한 가구에서 차량소유자는 대체로 남자인 경우가 많다. 또한 수영이나 달리기 같은 대피에 적합한 신체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체육시간에는 주로 피구 정도나 하고, 일상적으로도 여자아이에게는 체력훈련을 권하지 않는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치마나 하이힐처럼 대피에 불편한 의복을 착용해야 하는 등 단지 여성다워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조건에서 재난상황에서 탈출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도와줄 남성이 없으면 스스로를 구해내지 못하도록 구조화된 여성들의 억압. 이 억압은 가부장제 남성연대가 만들어낸 여성 인질화의 다른 이름이다. 가부장제를 탈출할 수 없도록 구조화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자력의 상실’이다.


 자연재해와 재난은 다르다. 또한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재난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부, 지식, 성 등 사회적 불평등의 요소와 일치한다. 슘페터는 재난을 성공적으로 복구하게 되면 재난은 ‘창조적 파괴’가 된다고 했다. 이번 재난의 복구과정에서 기업들의 돈을 불리거나 남성들을 기준으로 한 재난 대피 매뉴얼을 반복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사회적 불평등 요소들, 즉 계급, 지식권력, 성, 사회적 소수자들을 더욱 고려하는 복구의 과정과 대처 매뉴얼이 되어야 한다. 복구의 과정과 대처방법이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서 권력 없는 자들을 더 고려할 때 그나마 불평등 요소를 극복할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절반의 국민인 여성들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한 대처와 극복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난 상황에서 여성들의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높게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재난상황에서의 성별분리 통계도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야 하고, 이에 따른 분석을 통한 대처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확진 비율이 높게 나오고 있지만 왜 그런지는 나오지 않는다. 성별이 고려되는 재난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