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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추억들(윤영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6-24 15:26
조회
730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내 지난날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 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효지초등학교에 우리 8남매가 모두 수학했는데, 맏형이 1회 졸업생이고 3, 4년 사이로 선후배가 되고, 조카까지도 이어간 광주효덕초등학교다. 당시에 오랜 선생님께서 우리 8남매와 조카들까지 담임을 맡아 주셨기에 많은 추억을 안긴 모교였었다.


 70년이나 정들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모교를 우리 형제자매는 자주 찾는다. 오랜 세월이기에 모교 주변들이 많이 변해있었다. 학교에 인접한 도로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늘어났고, 초기에 하루에 4차례 증기기관차가 다녔는데 오래전에 중단되었다. 교실이 단층에 6학급이었는데, 이제는 60학급으로 4층의 교사가 신축되었다. 재학생도 10배나 증가해 빛고을에서 대단히 크고, 모범적인 초등학교로 발전되고 있었다.


 내 학창시절에는 광주의 변두리로 잘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학교주변에 신규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살기 좋은 전원마을로 소문이 나면서부터 위상이 달라졌다. 시내 중심 유명세의 그 어느 학교보다 우수 모범학교로 변해 있었다. 광주시의 중심가 학생들이 전학을 해오고, 경쟁이 센 일류 학교가 되어 있었다. 특히 중학교 진학률이 높고,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도 발전된 모교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되어 어느 사이 이름난 학교가 되었다.


 내가 재학 중에 공부하던 그때의 교사와 운동장의 터도 확장되어 지금은 3동의 교사가 늘어났다. 당시 운동장과 교사 주변에 작은 나무들도 이제는 엄청 큰 나무가 되었다. 교목이었던 히아시스 나무도 교사 한 가운데 우뚝 자라나고 있었다. 그때에는 나무들이 내 품안에 쏙 들어왔었는데 이제는 큰 나무로 우뚝 서 있었다. 또한 교사 외에도 대형 강당과 연구실과 실험실도 신축되어 계속 발전하는 학교가 되었다.


 모교는 무등산자락에서 남쪽으로는 태봉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금당산이 있었다. 제일 높은 산은 해발 6백 미터의 옥녀봉이었는데, 학창시절 자주 오른 봉우리로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 때는 너무 높아서 오르기가 쉽지 않았었는데도, 자주 오르내렸다. 산위에서 바라보면, 광주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세월이 흘러서 산에 올라가 보니, 그리 높지도 않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높게만 보였을까? 아마도 어린 마음의 눈높이였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한 세대 전부터 총동문회에서 가끔 모교를 빛낸 동문에 상을 주었는데 나도 받았었다. 모범 동문으로 거듭나고 모교에 도움을 주는 일을 이어가라는 뜻이었다. 허나 일들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내가 펴낸 저서와 어린이 도서를 특별 기증하였다. 3년 전에도 모교를 찾아 제16회 졸업생이라 인사하고, 그간 뜻 한 바 생각을 전했다. 비록 작은 성의지만 모교 발전과 후배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참여하겠다고 하니,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반가워하시었다.


 그동안 총동문회에서 장학금 명목으로 졸업생에게 표창을 해 왔는데 끊겼다며 반가워하였다. 예절바른 효행학생에게 효행장학금을 수여하는데 선발은 학교에 일임했다. 교장선생님은 어느 사이 나의 재학 6년간 학교생활기록표를 보셨는지, 성적도 우수해 모범상을 자주 받았고 학예회서 독창을 하고 시군 음악경연대회에서 독창과 합창으로 입상을 한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졸업식 날에 직접표창과 축하노래까지 부탁하였다. 피아노 반주는 음악선생이 맡아주시겠다고 했다.


 몇 년 전 모교의 졸업식 날에 식장에서는 졸업생과 재학생대표 5백여 명에 내외 귀빈과 졸업생가족 등 1천여 명이 참석했었다. 강당이 꽉 차니 밖에서 졸업식 광경을 지켜보는 학부형들도 있었다. 내 순서에 먼저, 교장선생님은 특별히 효행장학생 표창과 축하와 노래까지 불러주실 모교 16회 선배 졸업생이라고 소개를 하시었다. 그동안 졸업식에 정식으로 자주 없었던 순서였다.


 장내 외의 큰 박수를 받고 등단하여 간단한 인사를 “내 사랑하고 그리운 효덕초교는 우리 8남매가 총동문이고 내 생애에 많은 추억을 남긴 모교이기에 이렇게 달려왔다” 하고 “60년 전에 학예회 때마다 불렀던 독창을 오늘 후배들에게 들려주려니 감회가 깊다”고 해, 장내에 큰 박수를 받고 식장을 떠나왔다. 지난 모교와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펼쳐지고 있어 감회가 깊었다.


 내 만 7살에 아버지를 따라 입학식에 참석해서 교훈이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였다.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배움에 대한 문구였다. 그리고 1학년 2학기 겨울방학 전, 어느 날 폭풍과 폭설이 몰아쳐, 그만 등교를 하지 못했었다. 오후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학교로 불러 교실에 갔다. “아니 이런 정도의 날씨에 학교를 결석하다니! 책상위에 올라가 손을 들라”는 벌을 내렸다. 무려 2시간을 손을 들고 섰었는데 “배움을 게을리 하면 장래가 없다”며 호통도 치셨다. 나는 울면서 자괴하고 다짐하였다. 배움에서 결석이란 절대 자제했던 기억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리고 나에게 크나큰 충격은 1학년 때, 22살의 맏형이 건준에 가입했다가 붙잡혀 조직을 불지 않는다고 재판도 없이 총살을 당한 사실이다. 똑똑한 형을 잃고 방황하였던 어린 시절이었다. 2학년에 올라가 6.25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와 둘째형이 부역자가 되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그때 맏형과 모교 1회 동문인 김종길 선생님이, 제자가 상처를 받을까봐 위로해 주셨다. 그때 전쟁과 평화에 마음이 깊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나에게 슬픔만이 아닌 기쁨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줄곧 우등상을 탔다. 학예회 독창과 합창경연에서 입상하고 소풍가면 노래를 불러 상을 탄 공책과 연필이 쓰고도 남았다. 입학 전에 서당에 다녀 습자부장이 되고, 개교기념 글짓기에 뽑혀 전체 조회에서 낭독도 하였었다. 그리고 총학생회장이 되어 전교 전체 조회에서 쩌렁쩌렁한 구령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또한 비록 가난했지만 야간으로 진학을 계속해 공부를 이어갔다.


 당시에 어린 마음에도 우리가정의 형편으로는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배워야 산다,’ 좌우명으로 신문배달을 하며 야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야간대학에 진학해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그리고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여 제대말년에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주는 죽음과 공포와 삶의 아픔을 느끼면서 용케도 무사히 귀국하였다. 만기 제대를 한 후에 부족한 공부를 위해 서울대학교에 근무하면서 공부를 이어갔다.


 내가 서울대에 근무했던 시기는 분단국가의 민주화가 절실히 요구되었던 80년대 초였다. 당시 서울대 법대는 민주화의 불길을 당기는 촛불의 근원이었다. 나는 서울법대와 연구소 교직원으로 재직하면서도 열렬한 학생들의 정의의 깃발에 동화되었다. 끝없는 법대생들의 항전에 동화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이 민주화의 길이었다. 박종철을 비롯한 많은 정의 학생들의 죽음은 결국 민주화의 길이었다.



문경새재에서 본 백두대간
사진 출처 - 한겨레


 서울대 정년을 하고 자유로운 평화통일 운동가로서 분단조국의 평화통일 대열에 함께 하였다. 너무도 긴 분단 76년, 이제는 우리 8천만 동포들과 함께 평화통일이라는 그 길을 용기 있게 가는 길이 정도임을 알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분단조국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비록 팔순의 노구로 힘이 달리겠지만 그 대열에 당당히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삼천리금수강산에 평화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매진할 것이다.


*필자 : 작가[소설. 수필. 서예] 칼럼니스트, (사)평화연대이사장, 한국작가회의 소설가
*한국서예, 초대작가, 한국전통서예, 초대작가, 한국미술관, 초대전, 서울미술관.초대작가전.
*저서: 소설집(못다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에세이(평화)고희문집(인연, 아름다운 만남), 수필선집(강물은 흐른다) 구암애창가곡(CD) 편저(평화의 삶을살다. 한반도 평화통일)
*<평화만들기>, 오마이뉴스, 통일신문기자, 공동선, 글의 세계, 실험수필, 문학의 강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