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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탄핵을 위한 총선이다(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3-19 10:58
조회
106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1. 윤석열의 권력과 자유


윤석열은 과연 이상한 인간인가? 상식을 갖춘 자라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괴이한 자인가? 심지어, 인간의 얼굴에 뱀의 몸통을 한 스핑크스처럼 괴물인가?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좀 더 의지가 강할 뿐이다. 그 강한 의지가 철저히 권력을 향해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정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오로지 권력만을 좋아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정신분석학적으로 역시 권력 지향형으로 추정되는 그의 아버지 탓이라고는 하지만, 어쨌건 흔히 권력을 얻는 지름길이라 여기는 사법 고시에 기필코 합격하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아홉 번이나 도전했다는 전대미문의 사실에서 이를 확인하게 된다. 결과론적인 진단임을 피할 수는 없지만, 기어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는 데서 이를 재확인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오로지 권력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돈은 권력을 위해 필요할 뿐이다. 억만금을 주더라도 그는 거머쥔 권력을 내놓지 않을 인물이다. 항간에 떠도는 “권력은 부자 사이에서도 나눌 수 없다.”라는 말을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생각하지 않고, 그거야말로 천상천하의 진리임을 철석같이 믿는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가 말한 것처럼 “토론의 대상이 되는 권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은 예외 없이 권력의 화신이 아니더냐, 하는 말을 동어반복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하거나, 우주적인 철리를 깨달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거나, 예술과 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치거나, 과학적인 이치를 깨닫거나 이를 기반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함으로써, 설사 그들이 성인으로 또는 천재로 추앙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내심으로는 권력을 추구하였으나 현실적으로 권력을 얻을 길이 없음을 알아 다른 쪽에서나마 권력을 얻어보리라 하여 엉뚱한 길을 찾아 밟아간 자들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결국에는 권력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라 여기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윤석열은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권력은 절대적 진리다.”라는 걸 믿는 인물이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은 권력을 얻기 위한 질 좋은 수단일 뿐이고, 도덕과 정의는 권력을 얻는 데 참으로 좋은 수단일 뿐이긴 하지만 그 질이 너무나 좋아 수단으로 쓰기에는 위험한 구석이 있다고 여긴다. 그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권력을 위한 수단은 자유다. 한마디로 그는 자유의 전사다. 그는 수시로 자유를 외친다. 하지만 그 자유의 정체와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지는 않는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가 생각하는 자유를 나열하면 이렇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라도 활용할 수 있는 자유, 확보한 만큼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자유, 더 많은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필요에 따라 때로는 한껏 아첨하고 때로는 강력하게 협박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권력을 편드는 자들을 끌어모아 활용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 자신이 거머쥔 권력을 조금이라도 좀 먹으려는 자라면 누구나 벼랑 끝까지 쫓아가 몰아붙여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자유,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한 모두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로 여길 수 있는 자유, 자기보다 분명히 강한 자라면 위대한 자라고 여긴 나머지 그 앞에서 납작 엎드려 고개 숙여 그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받기를 앙망할 수 있는 자유, 항간에 떠도는 합리를 추구하는 지성이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양심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위선적이고 천하에 몹쓸 쓰레기 같은 자라고 여길 수 있는 자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으려 하거나 행복을 얻으려는 다른 사람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에 관한 말에서 행복을 권력으로 대체해서 해석할 수 있는 자유, 그래서 남의 권력을 빼앗거나 방해하지 않고 나의 권력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존 스튜어트 밀이야말로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임에 틀림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유,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는데 무슨 간섭이냐고 내놓고 떠들 수 있는 표현과 실행의 자유 등등.


요컨대 윤석열은 “인생은 권력 투쟁의 과정이고 산물이다.”라는 제1 명제와 “자유는 근본적으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모든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자유다.”라는 제2 명제를 굳건히 믿는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를 믿는다고 해서 이상한가? 철학자 스피노자는 “각각의 사물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한에서 자신의 존재 안에 남아 있으려고 한다.”라는 이른바 코나투스(conatus)를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존재 안에 남아 있으려 한다는 건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면 더욱 강하게 유지하려는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남들을 적대적으로 이용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의 본성으로 보자면, 권력을 진리로 삼고, 권력을 위한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여긴다고 해서 윤석열을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과연 그러한가?


2. 윤석열의 우둔한 권력의지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딜레마가 있다. 인간들이 신(神)을 창안하고 절대권력을 그 핵심적인 특성으로 삼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권력은 무한할뿐더러 한 인간에게서 생겨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인간이 거머쥘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쉽게 말하듯이,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끝없이 권력의 노예가 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헌법에 명시해 놓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어리석게도 권력이 자신에게서 생겨나고 따라서 권력을 자기가 마음대로 휘둘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여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기에, 이렇게 아예 헌법에 명기해 못 박아 놓은 것이다.


권력을 지니고서 지배하는 자는 자신의 권력에 예속되어 지배받는 자를 애용할 뿐 결단코 사랑하지 않는다. 권력관계만으로 일관하는 인간관계에서 토사구팽은 상례다. 하지만, 권력에 지배받는 자는 그 때문에 자기가 권력을 나누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자기가 권력에 지배받는다는 사실을 흔쾌히 여기지 않는다. 신이 인간들로부터 칭송을 받기 위해서는 권력 외에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모순되게도 신은 무한한 권력과 아울러 무한한 사랑을 갖춘 존재로 정의된다. 권력과 사랑은 모순 관계다. 신은 존재의 원리에 따라 모순을 충분히 감당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권력을 위해서는 그만큼 사랑을 저버릴 수밖에 없고, 사랑을 위해서는 그만큼 권력을 저버릴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권력과 사랑을 적절히 섞어 살고 있지만, 윤석열에게 사랑은 오로지 권력을 향한 것일 뿐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도 그는 자신에 대한 이 진단을 흔쾌히 승인할 것이다.


한 나라의 통치 권력을 거머쥔 대통령이 되려 하거나 된 자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외친다. 이는 자신이 권력을 추구해서 대통령이 되려는 게 아님을 선포하는 행위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명예도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위마저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내놓을 거라는 다짐을 내보이는 행위다.


윤석열 역시 대통령 취임사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맨 앞에 내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는 소명”을 운위했고, “반지성주의”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닥쳤고, 그래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역설하고,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바탕으로 한 “과학과 진실을 통해 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말을 한 지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전부 다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왜 그 말을 하는지는 알지만, 그 말이 진정 무슨 뜻인지를 모를 수가 있고, 모르고 하는 거짓말은 정작 거짓말이라 할 수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으로서는 참말일 수도 있다. 그라면 거머쥔 권력을 빼앗기지 않고 강화하기 위해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참말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그가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전부 다 거짓말이다. 다들 아는 일이어서 새삼 그 실질적인 증거를 일일이 들이댈 필요조차 없다. 대선 후보 시절 손바닥에 임금 ‘王’ 자를 뚜렷이 새기고 나와 그 무속적 반지성주의로써 온 국민을 창피하게 만든 때부터 이미 그 싹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에 관한 일련의 과정에 관해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지만,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을 꿈꾸는 당시에 한시도 그치지 않고 자행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권력의 발판인 검찰 조직을 거머쥐고서 그 사법적 위세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휘권자인 법무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마저 어쩔 줄 모를 정도로 한껏 자의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국민 모두의 비극이 순식간에 절정에 올랐다. 용산 대대통령실 이전에서부터 시작해 어이없이 이루어지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게다가 파괴적인 국정의 운영과 그 틈틈이 드러나고 생겨나는 갖은 부정과 부패의 이력들에서 이제 그의 통치를 반(反)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이고 반국가적이고 무엇보다 반(反)민생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반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기만의 권력과 자신의 권력을 위한 자기만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가 대통령이라는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자리에 올랐을 때 과연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가를 우리 국민은 물론 심지어 세계인 모두가 여실히 목격하는 중이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은 그가 권력을 추구하는 데 전혀 현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선출되기까지는 어떻든 나름 최대한의 요령을 발휘해 불행하게도 국민을 잘 속여 넘긴 셈이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누구나 그 어이없는 속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무자비한 권력욕을 무식하게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겉과 속이 함께 썩어들어가는 방식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취임 초기부터 <촛불 행동>의 시민들이 주말마다 거리에 나와 ‘윤석열 하야’을 외쳤고 급기야 ‘윤석열 탄핵’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3. 총선 민주 진영 대승리, 탄핵만이 답이다.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총선이다. 신생 정당인 <조국 혁신당>에서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총선 구호를 내걸었고, 대다수 국민이 이를 ‘윤석열 조기 탄핵’으로 읽고서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조국 혁신당>이 이른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4월 10일 심판의 날’ 총선 구호 역시 이재명 대표가 “이제 너희는 해고다.”라고 역설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윤석열 정권에 대한 ‘최후의 심판’과 그에 따른 ‘탄핵을 통한 조기 종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탄핵’은 그야말로 불행이다. 하지만 실현한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정말이지 어떻게 만들어 온 나라인가! 민주화를 위한 무수한 희생은 물론이고 그 와중에 죽으라고 열심히 일한 탓에 불과 2년 전만 해도 ‘자고 나니 선진국이다’라는 말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지 않았던가.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배우겠다고 형형색색의 많은 젊은이가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자고 나니 후진국이구나’ 하는 한탄이 들린다. 한국이 민주국가의 모범에서 독재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세계적인 진단이 나오고 있다. 속된 말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그런데 드디어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