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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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한다(CBS [시사자키] 칼럼, 04.11.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3:47
조회
223

테러방지법으로는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최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국가테러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두는 ‘국가 대테러활동 및 테러행위에 의한 피해자 보상에 관한 법률’을 만들겠다면서 다시 ‘테러방지법’ 제정을 들고 나왔습니다. 정부 여당이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법률의 이름에 ‘피해자 보상’을 집어 넣어 그 성격을 중화시키고, 대테러센터를 국가정보원이 아닌 국무총리 산하에 두기로 하는 등의 약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법률은 여당의 핵심 당직자가 인정하듯이 이전부터 국정원에 의해 주도적으로 추진되었던 테러방지법이 분명합니다.


열린우리당은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자이툰 부대의 파병 때문에 테러의 위험이 커지기는 했는데, 테러대비를 위한 법적 체계가 미비하여 적극적으로 대테러활동을 벌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테러의 양상이 국제테러이기 때문에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국정원이 대테러활동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설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테러방지법 제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정부 여당의 설명은 매번 달랐습니다. 2001년에는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잘 치르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던 사람들이, 이라크 파병 이후에는 파병 때문에 필요하다고 했고, 김선일씨 피살사건이 생겼을 때는 제2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또 자이툰 부대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개최 직전에 테러방지법 제정이 무산되자, 정부 여당의 핵심 관계자들은 이젠 더 이상 법으 만들 동력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했습니다. 법을 만들 이유도 없다던 사람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끊임없이 법을 만들겠다고 하니 도대체 진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권력의 속성이 끊임없이 분출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일입니다.


제가 해도 너무하다고 말씀드린 것은 테러방지법이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시키기 위한 법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국정원이 지니고 있는 해외정보란 것이 얼만큼 믿을만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쓸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지금처럼 그 정보를 경찰이나 군에 제공함으로써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그만입니다. 특별한 입법이 필요한 상황은 아닙니다.


국정원은 대공, 보안을 갖고 각 부처에 대한 안정적 장악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공분야의 업무가 줄어들게 되자, 이제는 테러를 빌미로 각 부처에 대한 장악력을 지속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테러방지법의 입법에 대해 법무부, 국방부, 경찰청 등의 관련부처가 반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일입니다.


국정원은 비밀정보기관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예산도 인원도 모르는 비밀기관에게 너무 많은 힘이 쏠리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법안의 내용도 문제입니다. 일부 독소조항을 삭제하였다고는 하나, 군병력에 의한 불심검문과 보호조치 등을 시행령으로 돌려놓음으로써 약간의 눈속임을 하였고, 테러혐의자에 대해 영장없이 각종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것도 그대로입니다.


정부 여당은 테러방지법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법원의 판단이 아니라 비밀정보기관의 판단만으로 일반 시민이 테러용의자가 되고, 테러용의자가 되면 기본권이 함부로 제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법에 대해 인권단체가 우려하는 핵심적 내용입니다.


또한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이 과거 정권과 다르기 때문에 국정원에 의한 인권침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만 믿고 오남용과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높은 법률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법률은 그렇게 함부로 만들어져서는 안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새로운 법률이 아니라, 이라크 파병 철회를 통해 테러의 근본원인을 제거해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