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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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인신보호법 제정 움직임(cbs-r '시사자키' 칼럼, 04.11.1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3:50
조회
229

의미있는 인신보호법 제정 움직임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길을 잃은 아이를 데려다가 학교도 보내지 않고 수십년 동안 강제노역을 시켰다든지, 부랑인 수용시설 등에 노숙자들이나 멀쩡하게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강제노역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또는 가족끼리 재산 다툼을 하다가 아내가 남편을 또는 자식이 부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수십년 동안 섬에서 강제노역을 했다든지, 군산의 성매매 여성들이 쇠창찰에 갇혀 살아서 화재가 나도 몸을 피하지 못해서 참사를 당했다든지, 또는 충남의 양지마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가끔 언론의 보도나 인권단체의 추적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충격과 분노를 느끼며, 어떻게 21세기에도 그런 인권의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는가에 놀라곤 합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실상 노예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끊임없이 학대당하고 있고,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고 문제가 커지는 경우에는 그만큼 문제의 해결도 쉬워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론에 밀린 경찰과 검찰이나 자치단체들이 갑자기 자기 역할을 찾아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오히려 빙산의 일각이라고 합니다.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어제 국회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주최한 이날 공청회는 이름도 생소한 “인신보호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였습니다.


그 개념은 이렇습니다. 형사사건으로 구속되는 경우에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구속여부의 정당성을 다지는 ‘구속적부심사’를 하는데, 이러한 원칙이 형사사건이 아닌 민사구금 또는 민간구금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를 법원의 통제를 통해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신보호법이 너무도 생소한 것이지만, 이미 독일과 일본은 같은 법률이 시행중에 있다고 합니다. 또한 1962년 개정된 제 3공화국 헌법도 10조에 “누구든지 체포. 구금을 받은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 가진다. 사인으로부터 신체의 자유의 불법한 침해를 받을 때에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구제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도 민사구금 또는 민간구금에 대해 규정하고 있었지만, 유신헌법으로 이런 조항은 헌법에서 아예 사라져버렸고, 관련법도 없는 상태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대한 실효성있는 국가 차원의 대책은 마련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논의를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 입법까지는 더 많은 논의와 보완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 활동 중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에 대해서도 국회가 화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파행과 정쟁이 판치는 국회에서 언론의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안이지만, 불법 부당하게 갇힌 사람들을 위한 의미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이 법률이 발달장애아를 둔 엄마이기에 매일처럼 애를 잃어버리고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야 하는 한 국회의원의 솔직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합니다.


장애아를 둔 엄마의 마음, 중소기업을 하는 경영인의 마음, 비정규직 처지에 놓인 노동자의 마음, 어디도 취직할 곳이 없는 젊은이의 마음으로 입법 활동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주일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한 사람이 무려 23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공인중개사가 되어 부동산업을 시작한다고 당장 먹고살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도 23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거기에라도 기대려고 올인을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국민의 마음이고, 그래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