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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취자 보호법, 왜 만드나?(CBS-R [시사자키] 칼럼, 04.12.2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3:55
조회
429

주취자 보호법, 왜 만드나?


지난주 목요일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서재관 의원과 경찰청이 공동주최한 ‘주취자 보호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서재관 의원이 총선 직전까지 고위 간부로 경찰청의 주요요직을 거친 인사란 점을 감안하면, 결국 경찰청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주취자 보호법(안)’은 술에 취한 사람을 보호하는 한편, 제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법의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찰의 주장대로, 일부 시민들이 잘못된 음주문화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꼭 이런 특별한 법률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그것도 보건복지부가 아닌 경찰청의 주도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주취자보호법은 제 3 조에 “모든 국민은 음주로 인하여 야기되는 해악을 인식하고 음주를 강요하는 등의 행위를 자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법률이 갖춰야할 기본을 넘어선 것이고, 주권자인 국민을 전부 초등학생 취급하는 오만한 조항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만하고 잘못된 법조항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술에 취한 사람을 가족, 친지나 연고자에게 통지하여 인계하거나, 건강에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보건의료기관에 구호를 요청하거나,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는 주취자보호법이 말하는 ‘보호’의 차원에서 진행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술에 취한 사람이 소란행위를 하는 경우에 경찰관서에서 최장 24시간 동안 보호하도록 한 규정입니다. 법률은 이에 대해 “경찰공무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소란행위가 계속되어 그 위험이 존속하고 있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 경찰관서에 보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결국 이는 경찰관이 판단할 때는 얼마든지 경찰서에 가둬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에도 그냥 가둬두는 것만이 아니라, ‘필요한 한도 내에서’는 수갑, 진정의(鎭靜衣), 혁대 등의 보호장구를 사용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행 법률로도 술에 취한 사람에 대한 보호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경찰청이 이런 법률을 새로 만들려는 이유는 보호할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벌할 만큼 잘못도 크지 않은, 이른바 “술먹고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갖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취자보호법이 말하는 소란 등의 범죄는 경범죄 처벌법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고, 술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처벌받을 만큼의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처벌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경찰관이 술에 취했다고 판단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법원의 영장없이 24시간이나 구금한다면, 도처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주취자보호법은 그 자체로도 헌법의 근간을 허무는 반인권 악법입니다.


음주로 인한 폐해는 이런 식의 물리력 동원과 반인권적인 강제구금으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술로 인한 폐해를 막고자 한다면 경찰청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문화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 등에서 그 폐해를 알리는 범국민 캠페인을 전개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경찰청은 지금이라도 주취자보호법의 제정 노력을 중단하여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덕규 국회부의장, 이용희 국회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 등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지난주 열린 공청회에서 앞다퉈 축사와 격려사를 했던 것은 최소한의 인권의식도 결여한 잘못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