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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부정시험 사태, 고등학생들을 잡아 가두는 것만이 능사인가(CBS-R [시사자키] 칼럼, 04.11.2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3:52
조회
261

수능 부정시험 사태, 고등학생들을 잡아 가두는 것만이 능사인가


수능 부정시험사태의 파장이 보통이 아닙니다. 벌써 제 3의 조직까지 밝혀져 지금까지 185명이 적발되었고, 이 가운데 고등학생 14명을 포함한 16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집행되거나 청구되었고, 나머지 169명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가 진행중입니다.


수능 시험 후 2주가 지났지만, 사태가 진전되기는커녕, 도대체 이번 사태의 끝이 어디일지 모를 정도로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된 사안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원칙이 쉽게 무시되고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또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구속된 14명의 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이 고등학생들에 대해 형사소송법이 정확이 적용되었는지 의문입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본 대목입니다. 언론보도에 의존한 정도이긴 하지만, 그 학생들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는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일정한 주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다 드러난 일이기 때문에 증거를 인멸할 수도 없고, 도망할 염려도 많지 않습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미성년자이고, 한결같이 초범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인신구속은 매우 신중했어야 합니다. 물론 이들이 형법 제 9조의 규정에 따라 만 14세가 넘었으니 형사미성년자는 아니지만, 선거권도 없고 여전히 부모의 보호아래 있는 고등학생 신분이라는 점이 충분히 감안되었어야 합니다. 조직적으로 컨닝을 해야할만큼 중요한 수능에서 0점 처리가 되고, 학교에서는 제적되고, 3년 동안 수능에 응시조차 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은 나이가 되어 군대를 제대한 다음에나 수능에 응시할 수 있게 된 그 친구들은 구속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른바 컨닝이라 부르는 부정행위가 이미 만연되어 있으니 학생들을 무조건 선처하자는 것도 아니고 왜곡된 입시만능풍조와 잘못된 교육여건만을 탓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자기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묻는 것이 꼭 구속이어야 하는지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형사사건에서 불구속이 원칙인만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밝혀진 죄에 대해서는 나중에 법원의 판단에 따라 그 죄를 물으면 그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경찰의 태도입니다. 경찰은 이미 수능 전날 핸드폰 번호와 구체적인 부정행위 방법까지 제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능 당일 아침에 검거를 위해 교육청에 협조를 요청한 것말고는 범죄예방을 위해서는 어떠한 활동도 벌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범죄의 예방은 범죄의 진압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경찰의 직무입니다. 적극적으로 범죄를 예방하지 않은 것은 빼고 보태고 할 것 없이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최선을 다해 사전에 막기 위해 노력했어야 합니다.


그것 말고도 이상한 것은 다른 시험과 왜 이렇게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경찰청에서 운용하는 운전면허 학과시험의 경우,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었다고 해서 구속수사를 받은 경우는 여태까지 한번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정행위가 발각되면 몇 년 동안 시험을 보지 못한다든지 하는 결격기간을 두지도 않고, 그저 훈방조치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른 것은 수능이 운전면허시험보다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국민의 관심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법치주의에 의한 법의 지배 보다는 자의적인 법적용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요. 또 다른 피해자에 불과한 어린 학생들을 감옥에 가둬놓고 우리 사회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