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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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주민카드는 철밥통(한겨레, 06021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46
조회
250

전자주민카드는 철밥통


야! 한국사회



주민증을 바꾼다고 한다. 위·변조 방지를 명분으로 플라스틱 재질로 바꾼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대형 국책사업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위·변조 방지에다 국민편익 중심의 다양한 부가서비스 기능도 제공한단다.
새 주민증 사업의 핵심은 1998년 정권교체로 포기했던 전자주민카드를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전자주민카드는 집적회로(IC) 칩이 내장된 스마트카드이다. 전자주민카드가 도입되면 지하철 무임승차 절차의 간소화로 경로, 장애인, 국가유공자 복지 서비스가 증진되고, 도서지역 여객운임 할인을 통한 지역주민 우대 서비스를 실질화하고, 도서대출 등 공공시설물 이용 서비스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건강보험증, 교통카드, 신용카드 등 공공-민간 서비스와도 연계되어 ‘e- 편한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행정자치부의 설명이다.


지난주 행자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전자주민카드의 필요와 편리를 역설한 한국조폐공사 컨소시엄은 삼성에스디에스 등 대기업이 두루 참여한 업자들의 모임이다. 효용을 과장하기 위해 행자부가 진행한 연구용역의 시행자 역시 그들이다. 사업추진만을 학수고대하는 업자들에게 1억원이 넘는 연구용역비를 선뜻 건네주는 행자부의 내공이 놀랍다.


불편을 호소하는 국민이 없는데도 행자부는 지금의 주민증은 불편하고 위험한 것 투성이고, 새 주민증을 만들어야 편리하고 안전해진단다. 낯빛도 바꾸지 않고,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관료들이 대형 국책사업을 놓칠 리가 없다. 몇조원이 들어갈 사업, 신규발급과 재발급을 포함하면 해마다 200만장쯤은 다시 찍어야 하니, 끊임없이 매출을 일으키는 신통한 요술방망이를 잡은 셈이다.


10년 전 시민사회가 전자주민카드 도입을 반대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관료들과 업자의 요술방망이가 국민에게는 몽둥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카드를 확인하기 위해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의 다양한 정보를 전자적으로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의미한다. 지하철·버스를 타든, 금융거래를 하든, 등본 한통을 떼든, 국가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지 언제나 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감시와 통제의 일상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통합된 데이터베이스가 유출될 때의 위험도 치명적이다.


편리성이 강조되는 이면에는 숱한 불편함이 숨어 있다. 단 한 장의 카드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그 카드를 잃어버리게 되면 사람 구실이 어려워진다. 이미 시행 중인 경로우대, 도서지역주민 할인, 도서대출 등을 천연덕스럽게 전자주민카드와 연계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지금의 주민증, 주민번호, 지문날인 제도 자체도 반인권적인데 전자주민카드까지 도입하려는 저들의 도발은 무섭기까지 하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관료와 업자의 유착이 풍기는 냄새가 고약한데도 어떤 신문은 똑똑한 주민증이 나온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인권 침해, 예산 낭비, 비효율 등의 비판에도 관료들이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사안은 한둘이 아니다. 때만 되면 들고 나오는 국정원의 테러방지법이 대표적이다. 염치도 없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세상의 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퇴보를 막기 위해 싸워야 한다. 새로운 의제와 대안을 만들기는커녕 철없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방을 치워야 하는 것처럼 관료들의 행패를 따라가기도 바쁘다. 이게 노무현 정권에서 인권운동가의 역할이다. 심히 불쾌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