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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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가 부른 죽음 [시민포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41
조회
284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남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청 최광식 차장의 비서 강 경위, 그는 유서를 통해 “검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말없는 죽은 자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검찰조사 대신 죽음을 선택한 것은 분명하다.


검찰수사와 관련하여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몇 년만 하더라도 금융감독원 국장,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박태영 전남지사, 이준원 파주시장,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 등 유력인사들이 검찰 조사를 전후해서 목숨을 끊었다. 꼭 유력인사들만이 아니다. 유력하지 않은 서민들의 죽음은 훨씬 많다. 당장 올 1월초만 하더라도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던 피의자 문모(25세)씨의 투신 자살을 비롯,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된 피의자 박모씨(45세)가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수사관 책상 위에 있던 문구용 칼로 여러차례 복부를 그어 자해하기도 했다. 사례는 끝이 없다. 검찰 수사가 죽음을 부르고 있다.


일부 언론 등은 검찰 수사를 받던 유력인사들의 잇단 죽음에 대해 ‘자살 신드롬’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도무지 말이 안되는 진단이다. 동방신기도 아닌 부산시장이 죽었다고 전남지사가 따라 죽는다는 것이 어떻게 말이 되는가. 검찰과 관련된 죽음은 검찰을 직시해야만 그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경찰관들이 강 경위 죽음을 계기로 슬픔과 분노, 특히 적개심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단순히 수사권 조정을 앞둔 양 기관의 힘겨루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문제다. 경찰이 검찰에 대해 이를 가는 것도 일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오락실 업자에게 뇌물을 받고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었다는 혐의로 2001년 구속된 옥천경찰서장, 역시 뇌물사건으로 2003년 구속된 안산경찰서장, 그리고 수지 김 사건과 관련하여 직권남용죄로 구속된 이무영 경찰청장 등은 검찰의 반부패 수사의 성과로 꼽혔지만,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무죄가 확정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무리한 수사에 대한 검찰의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검찰이 깊이 성찰했다는 정황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제도적 틀을 바꾸는 개혁없이 단지 성찰만으로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기소와 공소유지를 전담하는 준사법기관이면서도, 일선수사기관, 나아가 범죄 예방활동과 범죄 피해자 보호 등 개입하지 않는 일이 없고,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에다 명실상부한 수사권까지 지니고 만능화된 검찰은 자신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해왔고, 막강한 검찰에 맞선 저항이라고 해봐야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수사를 중단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장 현안이 된 윤상림 사건만 해도 그렇다. 아끼는 부하를 잃은 최광식 경찰청 차장이 “나를 소환하여 수사하라”고 저항하자, ‘중간수사발표’ 형식으로 꺼내 놓은 검찰의 수사결과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검찰은 윤상림의 계좌 추적을 통해 경찰관 10명, 판사 2명, 변호사 11명, 국회의원 1명, 사업가 19명이 돈거래를 했다고 밝혔다. 변호사 11명 중 2명은 돈거래가 있었을 당시 검사였다고 한다. 브로커가 경찰관에게 100만원을 쓰면 검사에게는 1천만원을 써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사건 해결의 모든 열쇠를 검사가 쥐고 있는데, 경찰관 10명과 돈거래를 하는 사람이 현직 검사와는 단 한명도 돈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주장은 참으로 믿기 힘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수사행태가 한둘인가. “도둑이야!”라고 소리친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를 기소하기는 했지만, X파일 때문에 기소된 삼성관계자는 하나도 없었다. 두산 형제의 난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기 힘든 것도 물론이다. 검찰권력의 전형적인 전횡사례들일 뿐이다.


고향을 찾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 경위는 죽음을 각오하고 쓴 유서를 통해 “더러운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기 싫다. 정말 난 검새들 앞에 가기 싫다. 검새 없는 세상으로 가자!”고 절규했다. 다시는 강 경위와 같은 단순 참고인이 검찰수사를 앞두고 죽음을 선택하는 참담한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당장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재미에 빠져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검찰 자신을 위해서도 검찰이 제 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경이 상호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검찰활동에 대한 민주·시민적 통제가 진행되지 않는 한 억울한 죽음의 행렬은 결코 막을 수 없다.